‘88%’ 어정쩡한 재난지원금…갈등
법사위원장 두고 여야 갈등 예고…

뉴스를 접하다 보면 국회나 정치권이 1년 내내 갈등하고 반목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들 눈에는 국회가 일은 안하고 매일 싸움만 하는 헌법기관인 것처럼 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카톡방에 매일 같이 전해오는 내용들 대부분이 이땅에 같이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집단이나 사람들이라는 내용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 왜  안 된다고 할까?

미국이나 우리나라처럼 복수정당 체제인 나라는 여야가 싸우는게 당연한 것이다. 어떠한 하나의 사건 때문에 관계가 틀어져서 싸우는 게 아니라 그냥 여당과 야당은 존재 목적 자체가 서로를 견재하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여야가 싸우는 이유는 매번 다르긴 하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그냥 복수정당제 제도에서 여야의 존재 목적 때문이라고 보면 될 것 같긴 한데 지켜보는 입장에서 매번 불안하고 협의하지 않고 갈등만 야기 한다는 인식을 주는 것은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와 주위에 크고 작은 많은 집단과 모임이 존재하고 그 모임 단위에서 협의나 토론 등의 과정을 거쳐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사실상 국회나 작은 집단이나 절차만 다를 뿐 똑 같은 과정인 것이다.

방송에서 비쳐지는 여야간의 토론과정을 보면 의견이 부딪히는 경우에 중간의 입장에서 조정하고 대척점을 좁히려는 노력이 양측 모두로부터 외면받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걸 볼 수 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보면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의 접점을 찾아 공통분모를 늘리려는 노력이나 양보하는 모습을 좀처럼 찾기가 힘든 과정을 보게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참 의아하고 답답한 마음이지만 우리 모두 대부분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와 토론 문화가 정치권이나 방송 때문인지 모르지만 흑백 논리의 이분법에 너무 강하게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 복잡다기해져 가는 현대사회에서 갈등이 생기는 문제들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와 ‘다른’ 의견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틀린’ 것으로 단정하는 데 익숙해졌다. 흑백논리는 대립하는 입장을 고착시킬 뿐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지 못한다. ‘다름’을 ‘틀림’과 ‘나’으로 몰아가서 중용의 의견을 억누르면 타협의 여지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의 문제들은 흑과 백으로 칼같이 나눠지지 않는 회색지대에 속하는 것들이 더 많다. 최근에 결정된 일방통행 해제 결정과 같이 갈수록 늘어나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완전히 맞거나(백), 틀릴(흑) 가능성보다 보다 짙은 회색이냐 옅은 회색이냐가 훨씬 크고 많다.

우리 사회 건전한 상식의 회복을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관용의 회복이다. 다른 의견에 대한 포용과 경청 없이는 자기 확증 편향의 심화만 남게 된다. 정(正)에 대한 반(反)이 있어야 합(合)의 발전이 가능하다. 나는 정당하니까 상대방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우선 나부터 나와 다른 의견을 틀린 것으로 배격하지 않고 내 의견과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시작하자. 색의 스펙트럼이 넓고, 흑으로도 백으로도 갈 수 있는 융통성 있는 회색을 가진 자들이 많아지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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