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라는 말의 위력
“미안합니다”라는 말의 위력
  • 남해신문
  • 승인 2021.07.2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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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안을 두고 보는 관점이나 생각하는 바가 같을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이해가 상충하는 문제가 대두될 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이런 경우 대체로 자기 생각이 옳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격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도 순간마다 품는 감정이나 생각의 차이를 넘어 전혀 새로운 시도로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경우를 만날 때면 또 다른 희열을 느끼곤 합니다. 

이를테면 자신이 품고 있던 감정을 즉시 내려놓고 다른 차원의 감정을 여과 없이 수용하거나 받아들이는 경우입니다. 자신이 주장하던 관점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떤 동기를 통하여 그러한 마음을 지니게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그의 도량은 많은 분의 사표(師表)가 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이런 기운을 예지나 한 듯 또 다른 차원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남긴 위력은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날씨임에도 필자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 점심이나 같이하자며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장마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외출이 부자연스러워진 가운데 그래도 오랜만에 점심이나 같이하자는 지인의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부자연스러워지고 대인관계의 실마리가 될 정(情)마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그만큼 컸다고나 할까요, 모처럼의 만남에 고무된 일행은 지인의 차를 타고 약속된 음식점이 있는 서면으로 향하였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특히 거리 두기나 다인 집합금지의 수칙이 남해에서도 예외 없이 철저히 해야 한다는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남면과 서면을 잇는 갈림길에 이르렀을 무렵입니다. 아까부터 뒤따라오던 검은색 승용차가 휭하니 앞을 가로질러 우리가 탄 차 앞에 급정거하듯 서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 일행이 급작스러운 그의 행보에 당황해하는 순간, 건장한 중년의 사내가 차에서 내리더니 매우 화가 난 표정으로 다가와 운전석 창문을 내리라며 손가락을 위아래로 흔들며 다그칩니다. 그의 분노에 찬 기세에다 일그러진 표정이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다분히 위압적인 분위기를 맞닥뜨리니 향후 전개될 일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칩니다. 이런 경우 누가 잘못했는지 시비를 가리다 서로가 주장하는 합리적 근거를 빌미로 고성이 오가기도 할 것입니다. 상대가 욕설하며 다가오는 그 순간, 이에 맞대응해 시비를 일으키리라는 예상마저 감지할 분위기였습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모습임에도 운전석에 앉은 지인은 창문을 내리고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십니까? 라고 되묻습니다. 다짜고짜 항의하는 그분이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얼핏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아마 그분이 원하는 대로 이행하지 못한 탓도 있었을 것이고 만약 실수가 있었다면 우리가 탄 차가 예의에 어긋난 행보를 보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꼭 저렇게 욕설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니 향후 전개될 일들이 암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때 조용히 듣고만 있던 지인은 아주 상냥한 말투로 아! 그렇습니까? 이거 정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3번을 연거푸 미안하다며 정중하게 사과의 말을 건넸습니다. 욕설로 항변하는 그 사내에게 오히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로 응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그토록 거칠게 항변하던 그 사내, 따뜻한 말에 동화가 된 듯 잠시 긴 한숨을 내쉬더니 “내가 욕을 해서 도로 미안합니다. 오늘 하루 좋은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대를 하며 돌아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언사가 갑자기 바뀐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했지만 이내 우리 일행이 탄 차를 운전하던 지인의 따뜻한 말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미안합니다, 라는 말 한마디가 새삼 그의 감정을 바꿀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니. 요즈음처럼 말로 인하여 시비가 끊이지 않는 세상에 온유한 말,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대한지 그 실체를 온전히 경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혹자들은 이런 사례는 흔히 있는 일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분명 기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적은 열정으로 성취하는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말 한마디라도 상대의 관점을 변화시킬 정도라면 이것은 분명히 기적 중에서도 아주 큰 기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그 생각이 형성될 오감(다섯 감각- 눈, 코, 입, 귀, 혀)은 물론이고 잠재된 욕구를 대변할 무의식이나 과거 경험이 빌미가 된 감정마저도 변화시킬 심력(心力)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점에서 자신을 우뚝 세울 중심은 성품과 마음에 있고 바른말에 있다는 이치에 견주어 말로서 드러낸 믿을 신(信)자의 자구도 사람의 말이라는 뜻을 고려한다면 이 의미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말을 한다는 것은 잠재된 성품이 드러나는 것이요, 이 성품의 일단이 어느 순간 어떤 감정하에서도 안정적이거나 다른 사람의 감정마저 순화시킬 정도라면 그 사람은 이미 성인의 반열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단 한마디라도 말의 감정이나 기운 따라 전개될 에너지마저도 지구 전체 생명에게 유익하게 작용하리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미안하다는 말에 감동한 길을 안내하는 새들의 노랫소리마저 유쾌하였고 그 말에 동화된 음식마저 제맛이 돋아나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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