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과 내 친구(1)
금강경과 내 친구(1)
  • 김순영 기자
  • 승인 2021.07.2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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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경전 중 『금강경』이 있다. 금강(金剛)은 아주 단단한 쇠를 말한다. 또 다르게 해석하면 다이아몬드이다. 서양에서는 『금강경』을 『다이아몬드 수트라』(The Diamond Sutra, 에드워드 콘체[Edward Conze, 1904~1979] 번역)라고 한다. 

다이아몬드는 광석 중 제일 단단한 물질이다. 그리고 귀하다. 귀하면 당연히 가치가 있고 값이 비싸다. 부처님 경전의 제목을 가장 귀하고 가장 단단한 다이아몬드로 정했으니, 그 내용이 얼마나 귀중한 말씀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금강경』은 우리나라 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이기도 하다.

『금강경』을 읽어보면 그 뜻을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금강경』에는 사구게(四句偈)라는 시(詩)적인 좋은 구절도 있지만, 나에게 충격을 준 구절이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이다.

我皆令入無餘涅槃而滅度之 (아개영입무여열반이멸도지)
“내가 다 남김없이 온전한 열반으로 들게 멸도하리라” (중략……)
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得滅度者 (무량무수무변중생 실무중생득멸도자)
“수많은 중생을 내가 멸도한다 하였으나, 실제로 멸도를 얻은 중생은 아무도 없다.”
何以故, 若菩薩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하이고, 약보살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즉비보살)

“왜냐하면, 보살이 아상이나 인상이나 중생상이나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는 뜻은, 나라는 생각, 사람이라는 생각, 살아있다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 긴 말이 쉬운 듯 하면서도 어려워 한참을 생각하다가 간단하게 ‘내가 난데라고 하는 교만심’으로 줄이니 쉽게 이해가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많은 사람을 가르쳤으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유를 살펴보니 모든 보살이 ‘나라고 하는 교만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교만심을 가지고 있으니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쉽게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귀에 들어오지 않은데 어찌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며, 멸도에 이를 수가 있겠는가.

교만(驕慢)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도 귀에 들리지 않는 어리석은(愚癡) 행위이듯이, 인간관계에서도 가장 큰 독(毒)이다. 교만은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교만은 결국 신뢰를 잃어 인간관계를 소원(疏遠)하게 만드는 것이다. 

교만의 반대는 겸손(謙遜)이다. 겸손은 첫째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사람이 잘나도 잘난 체하면 남들이 싫어한다. 둘째 상대를 존중한다.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 주고 받들어 주면 싫어 할 사람이 없다. 가식이 있어서는 안된다. 진실해야 한다. 이렇게 자신을 낮추고 항상 상대를 존중하면 상대가 신뢰한다. 결국 겸손은 모든 사람이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미덕이다. 

나에게는 겸손의 미덕을 잘 갖추고 있는 자랑스러운 친구가 있다. 건설업을 경영하는 이소영(李昭永) 회장이다. 그는 나와 고추 친구이다. 

남해 시골에서 태어나 초동(草童)으로 같이 자라서 칠십이 넘는 지금까지도 친한 친구이다. 그 친구는 항상 남의 의견을 먼저 들어 보고, 자신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상대를 무시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고집하지 않는다. 항상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오랜 세월 지내오면서 아무리 봐도 그에게는 ‘나라고 하는 교만심’은 찾아볼 수 없다. 반대로 오로지 겸손이 몸에 베인 사람이다. 그의 겸손이 그의 사업에도 많은 영항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어찌 보면 그의 사업 기본이 겸손이 아닌가 싶다.

그는 1992년 6월 삼지건설(주)를 설립하였다. 사훈은 ‘장인 정신’이다. 의뢰를 받아 실시하는 공사가 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술을 익히고, 성실히 일하는 장인정신을 가지도록 사훈을 정한 것이다. 작은 회사지만 직원들과 일치단결하여 열심히 회사를 운영하였다. 거래처도 늘어 가고, 수입금액도 늘어 갔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다. 회사가 순조롭게 발전해 가던 중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1995년 국내에서 ‘삼익아파트’로 이름이 나 있는 삼익(三益)건설회사가 부도가 난 것이다. 그때는 어음거래도 많은 때이다. 공사가 끝나 공사대금조로 삼익건설로부터 받은 어음이 종잇조각이 되었다. 무려 금액이 10억여 원이다. 그 당시의 화폐가치로 엄청나게 큰 금액이다.

그 뿐만 아니었다. 1997년 IMF가 터졌다. 공사를 맡아 하던 거래처 여러 곳에서 부도가 발생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증을 섰던 친구의 회사도 부도가 난 것이다. 자신의 회사에서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어려움도 큰데다가 친구회사의 거래처에서 압류가 들어오니 손발을 완전히 묶는 형국이었다. 회사는 실로 존폐의 위기에 몰렸다. 친구는 실의에 빠져 모든 걸 포기하려는 생각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희망이 있었다. 직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평소 회사를 위해 직원들 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장님, 직원을 가족처럼 아끼는 사장님을 생각 한 직원들이 어떤 일이 있어도 회사를 살려 보자고 결의를 한 것이다. 직원들은 봉급도 반납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본 내 친구는 한 달 한 달 월급으로 살아가는 직원들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월급도 받지 않고 일하겠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직원들의 월급은 꼭 챙겨 주겠다고 다짐하며 일어서 뛰기 시작했다.
 

(고연 장학재단) 창립총회에서 친구 이소영(가운데) 삼지건설(주) 회장과 함께
(고연 장학재단) 창립총회에서 친구 이소영(가운데) 삼지건설(주) 회장과 함께
금강경
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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