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족발집이었는데 어느 날 보니 근사한 양식당으로 바뀌어 있었다. 읍 북변리에 자리한 양식당 ‘글로이(GLOY)’. 남(Gentlemen), 녀(Lady), 노(Old), 소(Young) 누구나 좋아하는 양식당으로 기억되고 싶어 긴 고민 끝에 지었다는 가게 이름답게 5월 18일 오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입소문으로 제법 단골이 많다. 코로나19시국에도 오픈한 가게라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야무지게 말아 올린 머릿칼에서도 느껴지듯 다부져 보이는 아가씨 혼자서 운영하는 양식당인 ‘글로이’의 주메뉴는 파스타와 함박스테이크, 주인장 이혜정 씨(33)는 올해 1월 1일 자로 남해군에 귀촌한 청년이다.

워킹비자 대신 선택한 남해 창업, ‘내 가게를 여는 환희’
울산에서 나고 자랐으며 남해에 오기 직전까지는 서울에서 파스타 가게를 운영했다는 이혜정 쉐프. 그녀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워킹홀리데이를 가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워킹 비자를 받고 비행기 티켓까지 다 끊어둔 상태였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서울의 집과 가게는 정리한 상황이었기에 어디로든 떠나야 했다. 문득 3년 전에 낚시가 좋아 남해로 귀촌한 부모님이 떠올랐다. 

이동 신전마을에 살면서 삶의 만족도가 확 올랐다는 엄마를 보러 1월 1일 남해로 왔다. 그리고는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다. 

서울에서 파스타집을 열었던 경험을 살려 이곳 남해에서 기본기에 충실한 양식당을 열어보자는 것. 결심하고 3개월 정도 가게 자리를 찾고 또 찾았다. 
그렇게 해서 운 좋게 만난 지금의 공간. 뭐든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는 걸 무척 즐기는 타입인 주인장 혜정 씨는 벽면 미장도 셀프, 페인트칠도 셀프, 뭐든 혼자의 힘으로 해 나가면서 내부를 꾸몄다. 
 
 

요리는 나의 힘…늦어도 제대로 된 음식을 내드리자
4가지 종류의 구운 버섯이 곁들여진 ‘버섯 파스타’, 여름이면 더 반짝이는 가지를 활용한 ‘가지토마토 파스타’, 사골 끓이듯 정성으로 달인 수제소스와 먹음직한 구운 야채가 데코레이션된 데다 옵션으로 스크럼블 에그가 한 가득인 ‘함박스테이크’, 이것은 치킨인가 치즈인가 분간되지 않을 정도의 진득한 고소함을 자랑하는 ‘치킨크림리조토’ 등 다양한 매력을 한 테이블에 만날 수 있는 양식당 글로이.

바보 같은 질문일지 모르지만 그녀는 어떻게 요리에 빠지게 되었을까? “저는 이 일이 정말 좋거든요. 진짜 천직이에요. 너무 좋아서 하는 요리이기에 아마 다시 태어나도 요리를 하지 않을까”라며 “늘 입버릇처럼 어디든 내 가게만 있으면 난 최선을 다해 꼼수 쓰지 않고 건강한 음식을 선보일 자신이 있다고 말해왔다”고. 그런 의미에서 자기 가게를 가진 “지금이 꿈을 이룬 듯 참 기쁜 나날”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께서 오랫동안 한식당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대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의 식사를 챙기는 건 혜정 씨의 몫이었고 그 계기로 자연스레 한식, 양식 다 친해졌다고 한다. 그중 양식을 전공하게 된 배경에는 본인의 ‘장’도 한몫했다고. 

“장이 정말 약해서 조미료에 강하게 반응한다. 양식의 경우 신선하고 좋은 재료로 소스 등 기본양념까지 모두 손수 만들어서 제공할 수 있다 보니 외려 꼼수 부리지 않는 음식이란 믿음이 컸다. 아시다시피 파스타가 은근 예민한 음식이지 않나. ‘워라밸’을 꿈꾸며 이틀을 휴무로 내걸었지만 사실상 그중 하루는 무조건 토마토소스나 함박소스 등 장시간 공들여야 하는 재료 준비에 오롯이 시간을 쓰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졸업 후 무작정 상경한 서울에서 만난 좋은 쉐프 덕분에 “늦더라도 제대로 된 음식, 맛있는 음식을 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철칙으로 품고 오늘도 불 앞에 선다고.

1인 식당, 체력이 중요하기에 등산하는 쉐프…남해의 매력은 ‘산’
낯선 곳에서 식당을 여는 데 대한 두려움보다, 자신의 체력이 따라줄까 하는 걱정이 더 크다는 이혜정 쉐프. 그래서 체력을 기르기 위해 서울 살 때는 주로 라이딩을 통해 하체 근력을 키웠다고 한다. 

남해에서는 “확실히 자연이 좋다. ‘자연, 자연’ 하는 자연스런 매력에 흠씬 빠져든다. 본래 산을 좋아했는데 여기서 안 가본 산이 없을 정도로 휴무일 중 하루는 꼭 시간 내 등산을 하곤 한다. 가장 쉬운 성취감을 느끼게 되는 게 등산인 것 같다. 정상까지 오르면 되니까. 다른 건 다 양보해도 등산 만큼은 양보가 싫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고자 홀로 등산한다. 얼마나 자유로운지, 제 마음을 다잡는 데도 무척 좋다”고 말했다.

다양하면서도 건강한 양식의 세계를 충분히 보여주는 ‘글로이’가 되고자 제철 메뉴와 몇 달 주기의 메뉴 교체 등을 고민하는 그녀에게 남해는 “살아봐도 좋은 곳,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곳”이란다. 

이어 “많은 이들이 남해에 없는 걸 주로 말하던데 오히려 뭐가 없기에 뭐든 할 수 있는 곳 같다. 젊은 사람들이 즐겨 갈 옷가게가 없다고 하기보다 그런 옷가게를 열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 사업아이템이 무궁무진한 곳이 어쩌면 남해일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강점을 분명하게 알고 그 길을 열어가는 데 있어 즐거운 전력 질주를 할 줄 아는 청년, 이혜정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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