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면 거리, 율곡사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카페 ‘백년 유자’의 외관과 야자수가 머무는 정원, 이곳은 홍장식(49, 오른쪽) 대표와 그의 조카 노병화(37) 씨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남면 거리, 율곡사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카페 ‘백년 유자’의 외관과 야자수가 머무는 정원, 이곳은 홍장식(49, 오른쪽) 대표와 그의 조카 노병화(37) 씨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영화 세트장 같은 ‘지족 구거리’ 같은 또 하나의 걷고 싶은 거리로 이미 충분한 곳, ‘남면사무소 일대의 (자칭)엄마길’이다. 마치 뭐라도 먹고 가라며 부르는듯한 목소리가 발길을 붙드는듯한 정다운 공기. 이곳엔 엄마가 차려준 듯한 오봉 밥상으로 유명한 ‘주란 식당’이 있고, 여전히 천 원짜리 두 장으로 마실 수 있는 다방 커피가 있다. 그뿐이랴. 소포장 선물로 엄마 품 같은 남해의 바다를 담아낸 ‘앵강 마켓’이 있으며, 그 무엇보다 율곡사 가는 길목을 지켜주는 보호수 팽나무가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온기가 머무는 이 길에 ‘백년 유자’라는 독특한 감성을 뽐내는 카페 하나가 지난 6월 18일 열었다. 주란 식당을 사이에 두고 왼쪽엔 ‘앵강 마켓’, 오른쪽엔 ‘백년 유자’가 있는 셈이다. 그 곁으로 수백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보호수가 지키고 있다. 지중해 바다를 연상시키는 지붕 색, 슬쩍 교토 감성이 머문 듯한 건축, 그러면서도 그 옛날 멋쟁이들이 주름 잡았던 경성의 분위기까지 한데 어우러진 카페 ‘백년 유자’를 구현해 낸 홍장식 대표를 만나봤다. <편집자 주>

삼동면 지족이 고향인 홍장식 대표는 1973년생으로 올해 마흔아홉이다. 남수중학교와 해양과학고를 나온 남해 사나이. 하지만 경상대 졸업 후 거의 10년은 외국에서 살면서 여행과 디자인 공부를 병행했다. 

이후엔 서울에 터를 잡았다. 지하철 역세권을 공략해 그만의 독특한 가방 디자인으로 사업을 시작해 성공을 거둔 홍장식 씨는 ‘마케팅의 귀재’로 통한다. 일명 ‘깔세’라고 해서 임대료 없이 월세만 내고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을 얻어 가방을 팔았다. 지하철역이니까 당연히 ‘싼 가방’을 팔겠거니 하는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몇십만 원에서 몇백만 원까지의 고가의 가방을 파는 역-전략을 썼고 그걸로 승승장구했다. 사십 대 중반의 나이에 이미 큰 성공을 거둔 셈. 허나 그 무렵 남해를 지키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고, 그게 계기가 되어 고향 남해로 발 딛게 됐다.

보물섬 남해에 와서 육촌 형님인 홍선표 형님께서 아들과 함께 만든 ‘남해 유자빵’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훌륭한 유자빵을 개발하고도 스무 살 차이가 나는 형님이 판매 방법을 두고 고심하는 걸 보고는 홍장식 대표는 “형님, 길에서 그렇게 팔지 마시고 가치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도록 가게를 내고, 시설 설비해서 한번 제대로 해봅시다”라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홍선표 회장은 외려 “서울 안 지겹나. 네가 남해에 와서 직접 해 보라”며 역으로 제안했다. 그렇게 도맡아 운영하게 된 게 창선면의 1호 카페 ‘남해 유자빵’ 카페였다. 

사실 홍장식 대표가 남해에 처음 내려올 때만 해도 “한 2년 고향 남해에서 쉬어간다는 생각으로 가서 돕자”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네 식구 모두가 남해에 뿌리를 내려 창선초 6학년, 창선중 2학년생으로 생활하는 두 아들과 사랑하는 아내까지 다 함께다.

2017년 2월 남해에 내려와 이제 4년 차에 접어든 그가 본인의 컨셉이 오롯이 반영된 두 번째 도전인 카페 ‘백년 유자 1호점’을 열기까지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당신이 좋아하게 될, 남해에서 온 유자 ‘백년 유자’
훼손되지 않은 ‘남해’의 매력 활용해 떠난 젊은이들을 돌아오게 하고파

창선면의 ‘남해유자빵’ 카페를 운영하면서 단순히 형님네 3천 평의 유자를 넘어, 남해 방방곡곡 전역의 유자를 유통해내는 꿈을 꾸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판매하는 유자원액 500m 한 병을 얻기 위해선 유자 20개를 착즙 해야 가능하다고. 

홍장식 대표는 ‘유자청’이 아닌 ‘유자원액’에 집중한다. 원액은 유자 소비도 상당할 뿐 아니라 ‘유자 에이드. 유자 주스, 유자 칵테일, 유자차’ 등 활용도도 높은 데다 냉동하면 1년간 신선하게 유지할 수 있으며, 비타민 파괴 또한 없어 선물로도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유자가 명성을 떨쳤을 무렵의 남해 인구는 8만 명, 지금의 남해 인구는 4만 명…고령화로 힘든 유자 생산을 할 인력이 부족해 유자 생산량도 줄고 농가 또한 갈수록 영세해진 실정이다. 인구가 줄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떠난 것이라고 본다. 다시 그들을 돌아오게 하고 싶다. 유자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힘줘 말한다. 그런 고민에서 시작한 게 남면의 ‘백년 유자’. 이름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 유자 농사지은 지 50년이 넘었으나 앞으로도 50년은 더 해 나갈 유자 농사이고, 더불어 더 많은 청년을 유입할 수 있다면 앞으로 100년을 더 이어갈 수 있을 거란 희망에서 ‘백년 유자’라고 지었단다.

서울에서 번 종잣돈을 남해에 씨앗으로 심고, 인생의 팔 할을 채워 준 여행 감성에서 느끼고 배운 영감을 이 거리에 어울리게끔 자연스레 편집해 지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여행자들의 달콤한 이야기가 좋다는 홍장식 대표. 카페 ‘백년 유자’의 특징은 ‘웰컴 드링크’로 반긴다는 점. 손님이 들어오자마자 주문하기 전, 먼저 환영의 의미로 음료를 시음하게 하는 건 그가 지닌 전매특허의 환영 인사다.

그는 “상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서비스를 파는 사람이 생각한다. 카페를 찾는 사람의 99%는 서울에서 각박하게 살다가 이 아름다운 남해로 여행을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미 웃을 준비가 돼 있고 행복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친절하게 다가가 ‘웰컴 드링크’를 준다고 하면 그 자체로 기분이 상승된다. 기분을 좋게 올리는 것, 그게 모든 일의 첫 시작”이라고 말한다.

끝으로 홍장식 대표는 “훼손되지 않은 관광, 자연이 남해가 가진 가장 큰 힘인 것 같다. 특히 여수나 거제를 답습하지 않고 바닷가 쪽의 건물의 층구 제한을 둔 건 정말 현명한 결정이다. ‘바다 뷰’를 보존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른다. 구불구불한 길이 주는 매력을 더 많은 이들이 공감했으면 좋겠다”며 “해안도로 따라가면서 소소한 것을 찾아가는 재미, 정자에 앉은 할머니께 인사하는 재미를 아는 사람이 여행자가 아닐까 싶다. 별거 없다. 정자에 앉아계신 할머니가 보이면 세상 가장 큰 소리로 인사하는 거다. 그러면 그분은 내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게 손을 흔들어 주신다. ‘저 애가 누구지’ 궁금해하면서 말이다(웃음). 평생 여행자로 사는 기쁨이란 이런 것이다. 남해 사는 우리부터 이런 여유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비타민 가득한 유자 에이드를 권한다.

(※남해군 남면 남서대로 768, 영업시간 AM 10:00~PM 6:00 ☎055-867-6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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