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에 처음 내려왔을 때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나는 주변을 겉도는 생활을 했다. 김만중문학상 시상식은 몇 달 뒤였고, 그 사이 남해에 대해 좀 더 알자는 생각으로 이곳저곳 내키는 대로 다녔다.
그러다 읍내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모교인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교수로 계시다 퇴임한 김흥우 선생님이었다. 여행을 오셨나 싶었다. 선생님은 나를 읍내에 있는 ‘장미다방’으로 데려가셨다. 들어보니 몇 해 전에 남해탈공연예술촌 촌장으로 오셨다는 것이었다.
김흥우 선생님은 대학 때부터 알고 지냈다. 국문과 선배이기도 한데다 맡은 강좌를 우리 과 학생들이 많이 들었다.
선생님은 평생 세계를 다니면서 엄청난 양의 자료를 모았다. 세상의 각종 탈과, 관련된 공연 관련 자료를 수집하셨다. 우리나라 영화와 연극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시면서 관련 서적이나 포스터, 연극대본, 사진 등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퇴직한 뒤 이들 자료를 모교에 기증하고 자료관을 만들고자 애쓰셨는데, 일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몹시 안타까웠다.
그런데 덜컥 남해에서 재회했다. 마침 남해군에서 이들 자료의 가치를 알고 폐교를 리모델링해 연극 공연이 가능한 스튜디오와 함께 자료 전시를 겸한 ‘탈촌’을 열었다. 거기 촌장으로 오셨다는 것이었다.
그 후 나는 자주 탈촌을 찾아 선생님을 뵈었고, 이따금 읍내에서 만나면 장미다방에서 ‘그야말로 옛날식 커피’를 마시며 추억과 근황을 주고받았다.
선생님은 소탈하면서도 남의 어려움을 잘 챙겨주는 섬세함을 지녔다. 권위보다는 대화를 나누길 좋아하셨다. 손수 심은 무화과에 열매가 열리면 몇 개씩 따다 건네기도 하셨다. 그때 나는 무화과 맛을 제대로 알았다.
선생님은 탈촌 주변을 잘 살려 문화예술촌으로 일구고 싶어 하셨다. 미술관도 꾸미고 음악관이나 예술인촌도 만들어, 남해가 명실 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의 도시로 거듭나길 바라셨다. 선생님은 때로 그 청사진을 펼치시면서 남해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숨기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의 부음을 들었다. 3년 전 4월 1일이었다. 진주교대에서 한창 강의를 하고 있는데, 시인인 김현근 형님의 전화를 받았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만우절 농담이라 여겼다. 한동안 뵙진 못했지만, 골초인 것만 빼곤 건강한 분이셨다. 그런 분이 새벽 홀로 사시던 관사에서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탈촌 개관 10주년을 맞아 여러 행사와 ‘10년사’를 발간할 준비를 하셨던가 보다. 그 과로가 선생님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말씀만 하셨다면 얼마든지 와 도와드렸을 텐데, 진즉 찾아뵙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선생님은 떠났어도 탈촌은 여전히 움직여야 한다. 그분이 평생 모은 자료는 돈으로 살 수도 없고,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다. 여전히 선생님은 탈촌을 지켜보시면서 영원한 남해인으로 살아계실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뵐 선생님.
선생님이 꿈꾸셨던 예술촌이 꼭 성사되기를, 나도 작은 힘이나마 보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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