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리만치 거닐면 마음이 포근해지는 거리가 있다. 옛 영화가 머문 거리, 독일마을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다랭이마을만큼 치명적이진 않지만 그저 걷다 보면, 괜히 다시 걷고 싶어지는 그런 거리. 삼동면 지족 구거리의 풍경이 아닐까. 

삼동면사무소를 중심으로 원조 멸치쌈밥집이 자리하고 있고, 하동균 중화요리, 화원반점, 지족반점까지 기본 이상은 하고도 남기에 어딜 가도 실패하기 어려운 식당들. 거기다 유미옥과 마루옥, 금복식당, 고궁명가 등 다양한 식당 사이 사이에 꽃이 주는 위안을 잘 표현해주는 체험 맛집, 기념품 맛집인 ‘플로마리’, 독립출판서적과 주인장의 안목이 반영된 다양한 셀렉(select, 선택하다, 엄선된)이 돋보이는 작은 쉼터 ‘아마도 책방’이 머무는 공간으로 반겨준다.

감성적이고 독특한 미지의 그림책에서 튀어나왔을 법한 지붕이 인상적인 ‘초록스토어’는 또 어떤가.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족 구거리를 온화한 빛으로 잔잔히 지켜온 이들 상점들 사이로 최근 새로운 이웃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지족시장의 새 이름 창창시장… 그 속에 빛나는 ‘홀리데이 과자점’
직장동료 둘, 서울서 귀촌한 두 남자가 만든 ‘팥파이스’ 카페

지족시장은 자그마한 어시장이다. 최근 ‘창창시장’이란 이름으로 시장 내부가 깨끗하게 정비되었다. 간판들도 귀엽고 정감있게 바뀌었다. 그곳에 들어선 ‘창창시장 커뮤니티 센터’ 총 2층 건물 중 1층에는 상주면에 사는 이성경 씨가 ‘홀리데이(holeeyday) 과자점’을 차렸다. 크로칸트 아몬드 휘낭시에와 무화과 휘낭시에, 얼그레이 마들렌 등 일순간 우리를 순정영화 속으로 곧장 데려다줄 것만 같은, 기분 좋아지는 과자들이 반겨준다.

복작복작 아담한 시장을 나와 다시 메인 스트리트로 나오면 여행객이 꼭 들르는 초록스토어와 고궁명가가 보인다. 고궁명가 옆 예전 파스타 집으로 이름을 떨쳤던 자리에 새로운 파이 가게가 생겼다.
‘팥파이스(pod.pies)’. 작명 센스가 엿보이는 이 가게는 ‘팥’이 주인공인 가게다. 한 조각에 3천 원 하는 ‘팥파이’가 주메뉴다. 국내산 팥과 유기농 밀가루로 만드는 팥파이, 여름엔 팥빙수, 겨울엔 팥죽이 있는 컨셉이 꽤 신선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두 남자가 반겨준다. 안경찬, 김기세 두 사람은 서울에서 한 직장에서 일하던 절친한 직장동료로 여기 이 가게를 같이 매입하고 난생 처음 카페를 시작했다고 한다.
수줍음이 많다는 안경찬 씨는 팥파이를 굽는 등 식음료 관련 일을 도맡아 하고, 비교적 스스럼없는 김기세 씨가 손님 접객, 계산, 대화 등을 도맡아 하는 편이라고.

김기세 씨는 “저희 둘은 같은 직장에서 플랜트 관련 일을 했다. 이런 카페를 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었다. 그래서 가게를 결정하고도 열기까지 오만가지 걱정을 다 했다. 다행히 이 거리가 너무나 포근하고 은근 여행자들도 있어서 그나마 마음이 조금은 놓인다”고 말했다.

안경찬 씨 또한 “남해에 대학교 선배가 있어 자주 여행을 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정이 든 것 같다. 특히 지족 구거리를 걸었을 때 쓰레기봉투 하나 없이 깨끗한 걸 보고 놀랐다. 남해사람들의 청결함, 자연 사랑에 반했던 것 같다. 서울의 거리는 상당히 오염돼 있다. 우리 두 사람이 서서히 자리 잡고,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해서 남은 가족들도 남해로 귀촌해 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개성 있는 두 카페를 지나 아마도 책방 쪽으로 걸어갔다. 맞은편의 ‘마루옥’ 옆에 인테리어공사를 하는 새 건물이 보였다. 주민에게 물어보니 ‘천연염색공방’이 이달 말 오픈 예정이라고 했다.

지족 구거리가 삼삼오오 꿈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이 바라는 소망이 이뤄지는 행복한 거리,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거리로 오래도록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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