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연 설천면장
박정연 설천면장

달콤한 게으름으로 시작하는 주말. 아침을 열어주는 지저귀는 새소리, 저녁노을, 나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어스름 저녁의 풀벌레 울음소리, 달빛 산책(moon walk), 이름 모를 마을의 길모퉁이에서 만난 퇴색한 추억의 낙서들… 내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입니다. 비록, 특별함이 없는 일상 속에서도, 언제나 우리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하루를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 그러한 소소한 감동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것같은 전율이 나의 몸을 타고 흔들어 놓습니다. 

“하루하루가 다르지만, 모든 날들이 아름다운 날들이기에, 목적이 이끄는 삶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이 목적이 되는 삶을 살아가라고. 거창한 인생이 아니어도 주어진 일상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채워 나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리라. 또한 인생은 매 순간 순간이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기에 어디로 향할지 망각하지 않으면 된다.” 올해 초 힘들고 지친 나의 영혼을 다독여 준 영화 ‘Soul’의 명대사가 묵직하게 가슴을 파고듭니다. 

6월의 첫 절기인 망종을 지나자 모내기를 끝낸 들판은 건강한 생명력으로 살아 숨쉬는 듯합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소품은 프랑스 자수 작업을 마치고 남은 짜투리 린넨 원단을 활용하여 가슴 한 켠에 웅크리고 있는 소울(soul) 아이템, 브로치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누구나 엄마의 소품에 대한 감성과 추억거리 하나씩은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내게 있어 잊혀지지 않는 엄마의 소품 중 아련한 추억의 한 조각은 바로, 브로치였습니다. 브로치를 만드는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단순한 소품이 맺어준 모녀지간의 추억 여행을 떠나는 설렘을 선물 받은 시간이었습니다. 

브로치
브로치

또한 희미하게나마 엄마의 과거 모습을 떠올려가며 내 영혼에 울림을 안겨 준 보석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브로치는 은은하게 자신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작지만 의미를 품고 있는 액세서리입니다. 심심하고 무미건조한 패션에 온기와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소품이자 그 사람의 이미지와 감성을 대변하는 액세서리입니다. 

저는 프랑스 자수를 접하면서 엄마가 아끼던 장신구 중의 하나였던 브로치가 지금 이 순간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내게 감성의 소재로 빚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진한 감색의 비즈와 스팽글의 황홀한 조화(Mariage)인 엄마가 애정하는 소품 브로치. 외출할 때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이 당신의 브로치를 꽂고 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활동사진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이번 브로치 만들기 작업은 투박하고 거친 헤리스 트위드 울과 헴프 린넨 원단 위에 부드러운 실크리본으로 조화롭게 구성해보았습니다. 폴디드 스티치로 우아하게 장미꽃잎을 만들고, 개더스티치를 곁들여 풍성한 주름을 표현했습니다. 너무 사랑스러워 보기만 해도 만져보고 싶은 작은 꽃과 꽃잎은 몬타노 넛으로 앙증맞게 수를 놓고 루프스티치로 넝쿨을 두르고 나니 작은 장미정원이 완성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5월 제가 만든 브로치를 엄마에게 선물해 드렸습니다. 엄마는 사양하시는듯 하면서도 애틋한 눈빛으로 브로치를 계속 만지작거리며 회상에 잠기신 듯 혼자말씀으로 “참 사랑스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마주하고 있자니 뭉클한 가슴을 애써 숨긴 채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며 자책하는 모습이 너무도 어리석게 여겨졌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엄마는 여전히 소녀감성을 품고 계셨습니다.

나는 왜 여태까지 엄마의 감성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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