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줄끗기전수회관. 건물이 낙후되어 무상한 세월을 느끼게 한다
선구줄끗기전수회관. 건물이 낙후되어 무상한 세월을 느끼게 한다

 

초여름의 햇살이 화창하다 못해 따가울 정도로 쾌청한 월요일 오후 1시 35분, 남면 선구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선구는 어촌의 안온하면서도 서정적인 정취를 한껏 뽐냈다. 

선구는 남면에서도 제법 큰 마을이지만, 무엇보다 우리 남해에서는 유일한, 경남 무형문화재(제26호, 2003년 지정)인 선구줄끗기가 전승되어 의미가 크다. 세상이 광속으로 변하고 미래를 따라잡기에 다들 분주해도, 과거를 돌아보면서 우리의 오늘이 어디에서 왔는지 찬찬히 되새겨보는 일도 절실하다.

전화로 약속한 남해선구줄끗기보존회(회장 정군삼) 사무국장 박영수 님은 우연찮게 도착하자마자 만났다. 도로변에 있는 아름드리 팽나무(남해군 보호수 12-22-4-1) 그늘 아래 경운기 부품을 고치고 있는 분께 공공화장실을 물었는데, 연락하니 그 분이 사무국장이었다.

평소에는 생업에 열심이다가 길일이 되면 소매를 걷고 연희의 현장에서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 그런 이들의 열성과 품앗이가 우리 고유의 민속연희를 여전히 힘차게 맥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인사를 하니 삶을 끈끈하게 지탱하는 사람의 굳은살이 표정에서 느껴졌다.

남해선구줄끗기 공연 장면
남해선구줄끗기 공연 장면

줄끗기의 현황에 대해 묻자 하소연이 먼저 터져 나왔다.

“이 놈의 코로나 때문에 2년째 아무 활동도 못하고 있소. 보조금이 나와도 쓸 데가 없고, 무엇보다 사람이 있어야제. 줄끗기 공연을 하려면 줄잡아 300여 명의 인원이 필요합니다. 마을 주민이 60여 가구 되는데, 다 모여도 백 명이 안 돼요. 나이 드신 분은 많지, 두 시간 이어지는 공연에 힘이 부치는 분이 태반입니다. 남면 이장단이나 부녀회에서 도와주는데, 아무래도 서툴러 활기가 예전만 못합니다. 그마나 개점휴업이고……”.

형편은 대강 짐작했지만, 들어보니 상황은 훨씬 심각했다.

전수회관(남면로 1103번길 26)은 어디인지 물었다. 동네 가운데 있었는데, 코로나 여파 때문인지 어딘가 낡아 보였다. 나중에 만난 정군삼 회장도 답답함을 토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 줄끗기도 전국 여섯 개 단체와 함께 UNESCO 인류무형유산에 등재(2015년)되었는데, 군 밖에서 열리는 공연 행사에 참가하자니 비용이 턱없이 부족한 거예요. 박명세 씨와 내가 예능후보자인데, 얼마간 나오는 전수비를 모아 부족한 경비를 채웠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고, 지원도 원활하지 않아 결국 우리 보존회는 탈퇴하고 말았어요”.

남해의 자랑이 되어야 할 줄끗기가 비용에 허덕여 답보에 빠지다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더욱 심각한 일은 마을 주민들도 지쳐간다는 사실이었다. 두 분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공연이고 뭐고 다 그만두자는 겁니다. 할 일은 많은데 공연에 나와라 행사에 참여해라 성화가 득달같으니,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거예요. 그래서야 되겠냐고 설득은 하지만, 그 분들 처지도 모르는 바 아니니 사면초갑니다. 젊은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야 하고, 노친네들은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떨어지니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현실이예요”.

전국대회에 나가 여러 번 수상을 했고,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우리의 민속연희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선구줄끗기는 ‘고만들기’부터 당산제, 어불림, 필승고축, 고싸움, 줄끗기, 달집태우기로 이어지는데, 건장한 청년이라도 행사를 치르기가 수월치 않은 역동성을 띠었다.

사무국장이 다시 애로사항을 토해냈다.

“아무리 간추려도 마을 사람으로는 부족하고, 도움을 청하는 일도 한두 번이지 벼룩도 낯짝이 있짢소. 오시는 분들께 얼마간 사례를 해야 하는데,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옵니까? 또 공연 때 관광객들도 많이 오세요. 좋다고 박수치며 감탄을 하시니 오신 손님들 음식 대접을 안 해서야 면이 서는감. 헌디 지원받은 금액은 한정이 있고, 마냥 손 벌릴 일도 아니니 답답하네예”.

군청에서도 상황은 잘 인식하고 있었다. 해마다 지원금을 늘려 현재 1500여 만 원에 이르렀는데, 코로나로 써본 적도 없단다. 남해에 민속연희가 줄끗기만도 아니니 배려와 안배도 쉽지 않다. 올해는 넘어갔고, 내년 정월 대보름 때 공연할 일이 꿈만 같단다.

“어쨌거나 잘 치러야제. 줄끗기가 오데 나만의 보물인가베. 내 자식들도 보고 자랐고, 손자 손녀들도 봐야지 않겠는감? 없는 살림에 제사만 뻔질나다고, 정성만으론 해결이 안 돼여”.
민속연희는 재현도 어렵지만, 한번 맥이 끊기면 복원은 요원하다. 그래서 어쩌면 좋겠냐고 물어봤다.

“다 여북하지 않지만, 보조비 정산도 큰 문제요. 농사나 짓고 고기만 잡던 사람이 회계 처리가 능란하것소? 이장에게 사무국장을 떠맡기는데, 서로 이장 안 하겠다 손사래를 칩디다. 행정의 고충도 이해야 허지만, 정산 문제 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어렵더라도 지원을 더 현실화해 주몬 소원이 없것소.”

화창한 날, 소풍 나온 기분으로 선구마을을 찾아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앉았노라니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끼는 기분이었다. 열 사람이 모이면 열 개의 지혜가 나온다고 했다. 줄끗기만 아니라 다른 민속연희를 위해서라도 머리를 맞대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