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며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어 사랑 가득한 달이기도 하다. 이에 지난 5월 초순 서울시 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 퇴임한 이철원 교장선생님과 김봉천 선생님을 군자역 부근 찻집에서 만났다.

김봉천(창선 장포 출신) 선생님은 지난해 ‘내가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책을 냈다. 살아오면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20명을 선정하여 저술한 것이다. 이 책에는 전인교육의 선봉이신 서면 노구리 출신의 이철원 교장 선생님에 대한 글도 실렸는데, 감명 깊게 읽은 기자가 요청해서 이 교장님을 만나 뵙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김봉천 선생님은 그의 저서에서 “개설 학교인 창동고에 발령을 받아, 당시 교감이던 이철원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6개월을 같이 근무했는데 교육 철학이 확고하고, 전인교육을 실천하는 모습에 감동받아 우러러보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이철원 교감은 문학적인 감성도 풍부하여 학부형과 신입생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 주기 위해 가슴을 울리는 문구를 손수 작성한 현수막을 교문에 걸었다. 학생들이 창동고를 배정받고 마음 설레는 예비 소집일 현수막엔 ‘세계와 미래 향해 꿈을 펼치는 창동고’, 입학식 날엔 ‘힘찬 출발 넘치는 패기 영광된 미래’, 개교식날 현수막엔 ‘웅비의 창동고, 오늘 그 힘찬 나래를 폅니다’라는 가슴 벅찬 격문을 걸어 학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는 분이셨다. 모든 학교의 현수막 문구는 천편일률적으로 <본교 배정을 축하합니다>, <본교 입학을 축하합니다>, <축 개교 00주년 기념>인데, <세계와 미래 향해 꿈을 펼치는 창동고>, <힘찬 출발 넘치는 패기 영광된 미래>, <웅비의 창동고, 오늘 그 힘찬 나래를 폅니다>와 같이 참신하고 역동적인 격문은 학생들 가슴에 희망과 용기가 용솟음치고, 뜨거운 혈기가 요동쳤을 것이라 생각하면 기자의 가슴까지 뿌듯해졌다.

이 세상에 태어나 만인의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러한 길을 걷기 위해 드는 노력과 열정은 범인(凡人)이 상상하기 쉽지 않은 수준이다. 물론 이를 위해 자신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올바른 가르침을 줄 스승의 존재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참된 교육은 가르침의 기술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 간에 인격의 만남(encounter)이다. 커리큘럼의 광의적 개념은 교과서 외에 학생들과의 만남, 친교, 나눔 등을 포함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3년간의 사귐을 통해 열두 제자들을 그를 대신할 새 시대의 사역자들로 훈련시켰다. 제자들과의 3년간의 공동생활은 교제의 가장 구체적인 실례이다.

이철원 교장님의 정년 퇴임 기념 회고록 ‘살얼음 밟듯 깊은 연못 이른 듯’ 중 가슴 뭉클한 예화 몇 가지만 간단히 소개한다.

이 교장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은 결국 교사라는 신념하에 교사들의 인화와 사기 진작을 위한 출발점을 원로교사 우대로 삼았다. 연로한 교사들은 대체로 환영받지 못하는 게 학교 현실이지만. 이 교장은 원로교사들을 극진히 우대하여 행정업무도 맡기지 않았고, 별도로 ‘원로교사실’을 마련해 주었으며 출근하면 먼저 원로교사실에 들러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이렇듯 그는 권위 의식 다 내려놓고 수평적인 인간애를 바탕으로 원로교사들을 우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 외에도 교원 생일 축하하기, 전근 교사에게 감사 편지 보내기, 수험생 자녀에게 격려 떡 선물하기, 부모님 모시는 교원들께 치하와 위로 선물 보내기, 퇴임식 챙겨 드리기 등 교원의 인화를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2001년 중랑구 원묵중학교 교감 재직 시에는 전인교육의 일환으로 ‘나라 사랑 국토순례’란 특별 커리큘럼을 제안하여 5박 6일 동안 진두지휘하였다. 서울 교정을 출발하여 의정부, 동두천을 거쳐 휴전선 부근 태풍부대까지 왕복했다. 학생들의 발에 물집이 생겨 터지고, 샅이 짓무르고, 심한 경우에는 발톱이 빠지기도 했지만,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서로 격려하고 부축해 가며 고난의 행군을 슬기롭게 극복하였다. 실로 살아 있는 체험교육이요, 인성교육이요, 애국교육이요, 전인교육이었다. 이 외에도 테마별 수학여행, 수용 시설 봉사활동, 다양한 프로그램의 극기훈련, 학급별 소풍 등 전인교육에 집념하였다. 또한 제자나 친지 외의 선물은 일절 받지 않는 청렴한 교육자였다. 위탁 급식업체에서 집으로 배달된 추석 선물을 되돌려 주었고, 학부모회의 추석 선물이 되돌릴 수 없는 상황(부패)에 이르자 그에 상응하는 대금을 ‘학부모회 발전기금’으로 기탁함으로써 어색함을 풀었다.

개설학교인 창동고의 전교생 건강 마라톤 폐회식에서 학생들이 교가를 부르는 태도가 지극히 불량하여 도중에 중단시키고, “교가나 교기를 해하는 사람은 모교를 해하는 것이요, 국가나 국기를 욕되게 하는 것은 조국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준엄하게 훈시하곤 다시 우렁차게 교가를 부르게 한 일은 애교심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교육 현장이었다. 학생들의 가슴에 길이 남아 있을 예화이다. 이 모두가 꾸밈없고 진솔한 전인교육의 아름다운 행적들이다. 사모님의 헌신적인 내조가 있었으리라.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아드님은 벤처기업 간부로, 따님은 KBS 기자로 근무하고 있다. 

다음은 이철원 교장님과의 일문일답이다.

▲ 어렸을 때 부모님께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나
“아버지는 무학이었지만 국한문을 해독했으며 ‘정직(正直)하고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하라’고 밥상머리 교육을 시키셨다. 어머니는 인자하시고 다정다감하셨지만 좀처럼 자식 칭찬이나 자랑은 않으셨다. 내 아들딸에게도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정직하고 수인사대천명하라’고 가르쳤다”

▲ 한평생 서울에서만 교육자의 길을 걸으셨는데 고향과 관련하여 아쉬움이 있으시다면
“나는 농악을 좋아하지만 화전농악 발전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해 아쉽다. 그리고 남해군 출신의 후배 교육자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점도 아쉽다”

▲ 고향 남해의 발전 방향에 대해 한마디 해 주신다면
“남해는 청정 해역으로 관광 자원을 극대화해야 한다. 교육은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을 특화함으로써 젊은이들을 영입해야 하고, 나이 드신 분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인구 정책에 심혈을 기울어야 한다”

이철원 교장 선생님은 1945년 남해군 서면 노구리에서 이병종·정상문 부모님의 5남 1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중현초, 남해중, 경남고, 서울대 사범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 대학원을 마쳤다. 성동공고, 경복고, 서울여고, 신림고, 반포고, 용산공고, 잠신고 교사를 지냈고, 단국대 및 서원대 강사, 원묵중 교감, 창동고 교감, 신도봉중 교장, 태랑중 교장을 역임했다.

고입 선발고사 출제위원, 대입학력고사 출제검토위원, 전국학력평가문제 평가위원, 중앙교육·대성학력·한국일보 교과위원, 1급 정교사 자격연수 교육과정 심의위원, 인정도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주관식문제특강(동아출판사/공저), ‘Best Shot 공통수학, 수학1, 수학2’(웅진교과서/공저), 웅진학력평가 수학(웅진교과서/공저), 금성수학(금성출판사/공저)가 있으며, 2009년 회고록 ‘살얼음 밟듯 깊은 연못 이른 듯’을 펴냈다.

서울특별시장 표창장, 문교부장관 표창장 등을 수상하였고, 홍조근정훈장에 서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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