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곧 나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아니 남이 나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로서 나를 유추해보면 특유의 성품에다 남들이 지니지 못한 나만의 자질이 있고 이 세상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독특함도 있습니다. 지구상의 60억 인구가 다 다르듯이 이처럼 개성이 뚜렷한 나를 거론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을 나의 범주에 예속시켜버린다는 주장을 우리는 과연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육신으로 보아도 나와 같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남을 나라고 여기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 간에도 취향이 다르고 성격, 생각, 습관, 가치관, 언행, 표현 방법도 다릅니다. 더군다나 경쟁이 치열한 오늘의 현실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나의 범주에 속하게 하라는 이 말을 쉽게 용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니 나는 오롯이 나의 나 됨일 뿐이니 어찌 남을 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와 나 아님의 차이는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남이 ‘나’라는 이 절박한 해법이 세상을 건전하게 이끌 초석이 된다면 오히려 이 말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나를 나답게 할 요건에 부합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만약 우리가 나의 범주를 나를 포함하여 남에게까지 그 영역을 확대한다면 나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요, 생명의 시원으로부터 계승되어 영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대 생명과의 상호의존 속에서 존재하며 거기에 동화되며 살아가고 있음을 직관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물건 하나도 각기 그 용도를 상용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부여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어느 부분이든 각기 소질과 개성에 맞는 일이 부여됨으로써 완성된 제품이 만들어지는데 거기에는 알게 모르게 나의 역량도 가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질서에 견주어 볼 때 나의 나 됨의 실상이란 결국 다른 사람이나 사물 그리고 해와 달, 별 등 모든 자연 존재가 합동하여 낳아주고 길러주고 먹여주는 상호작용의 덕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이라면 내 존재의 범위를 다른 사람까지도 확대하는 것은 큰 나를 위한 요건에서 볼 때 당연한 이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내가 나이면서 모두가 나인 큰 생명으로서 나의 의미를 온전히 축척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더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이 아픔을 겪으면 그것이 나의 아픔이요 남이 괴로워하면 그것은 나의 괴로움으로 연결된다는 초 이심전심의 역량을 갖추게 될 때 영적 역사는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이면서 그 나를 이루는 요건에서 남을 나처럼 대할 역량을 갖추어 한 번 더 생각하고 마음을 헤아린다면 나의 마음은 더없이 넓어지고 더 많은 충만감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필자가 남해에 귀향하여 느낀 것 중 하나가 나라는 관념에 대한 우월감이나 존재에 집착이 워낙 강해 오히려 이것이 변화의 징후를 놓치는 안타까운 경우들을 볼 때였습니다. 사실 사람들 간에 일어나는 문제들 대부분이 오직 나라는 범위에 국한하여 인식함으로써 해결에 장애의 요소가 된다면 남을 나라고 여길 대범함이야말로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가장 지혜로운 방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것이 큰마음의 행보라면 어찌 사사로움에 젖어 마음을 방치할 수 있겠습니까? 

남의 허물을 논하지 말고 내 작은 지혜 하나라도 공유한다거나 자신의 티끌을 보지 못하면서 상대의 단점을 보려는 것을 지양하면서 큰 나를 육성하는 힘을 스스로 길러 나갈 때 웅대한 자신의 면모는 더욱더 높게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나는 둘이 아니요, 하나로 통하는 길이기에 여기에서 오는 기쁨과 즐거움이 어찌 크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기쁨을, 이 즐거움을 마음의 웅대한 힘으로 크게 한번 열어야 할 것입니다. 크게 연다는 것은 적어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마음을 체득하게 이끌고, 영혼의 밝음과 마음의 위안과 평온을 심어 치유문화를 정착시키는 역량을 갖추도록 마음의 리더자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에서 보면 우주 대자연의 모든 생명은 마음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서로 연결되어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목도하면서 근자에 남해의 인구가 급감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남이 곧 나라는 마음으로 그 역량을 도모한다면 사랑과 자비와 공경이 묻어나오고 따뜻함과 친절이 넘쳐 더 많이 찾고 살고 싶어 하는 남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자문(自問)하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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