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임 종 욱
작가 임 종 욱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의 시에 <가는 길>이 있다. “그립다 말을 할까 / 하니 그리워 /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 저 산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지고 /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시인의 나이 22살 때인 1923년 <개벽> 40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제목인 ‘가는 길’이 ‘행로(行路)’인지 ‘세로(細路)’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분명 시간이라는 길을 따라 걷는 나그네다. 그리고 강물처럼 다다르는 곳은 있어도 어디로 갈 것인지 마음대로 정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길은 우리에게 호기심과 두려움을 주는 대상이 된다. 정처 없이 걸어가다 언젠가는 멈추게 되는 우리의 삶. 그 정지가 어떤 결말일지 알 수 없기에 많은 시인들이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즐겨 주제로 삼았다.

이백(李白, 701-762)도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란 글에서 “무릇 하늘과 땅은 만물이 깃들이는 여인숙이고, 세월은 아득한 시간을 걸어가는 나그네(夫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也)”라고 갈파했다. 이백은 인생을 길로만 보지 않았다. 우주는 한낱 잠시 머물다 날이 새면 떠나는 주막이었고, 하염없는 세월 동안 찰나의 빛을 남기는 별똥별처럼 인간의 삶은 무상(無常)하다고 여겼다.

이렇게 인생을 여행으로 묘사하기는 서양의 시인도 마찬가지였다. 기원전 3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시인은 서사시 <길가메시(Gilgamesh)>에서 위대한 인간 길가메시의, 죽음을 넘어 불멸을 찾는 여행을 노래했고,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오딧세이아(Odysseia)>에서 영웅 오디세우스의 10년에 걸친 방랑 끝에 귀향하는 모험담을 장엄하게 그려냈다.

고현면 농공단지 사거리 / 유화 / 33X45cm
고현면 농공단지 사거리 / 유화 / 33X45cm

왜 시인들은 우리의 삶을 유랑(流浪)의 연속으로 보았을까? 길이란 하나의 선으로만 이뤄지지 않고 끊임없이 갈라지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순간 갈림길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선택한다. 대개 그 선택은 되돌릴 수 없다.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누가 알겠는가? 선택을 하고 후회해서도 안 되겠지만, 과연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느 해가 저물 무렵 읍에서 고현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네거리에서 버스는 붉은 신호등 앞에 멈추었다. 문득 창밖을 내다보니 멀리 진한 분홍빛 노을이 깔렸고, 구름은 노을을 덮치는 괴수처럼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버스는 노선을 따라 움직이지만, 사람에게 정해준 노선이란 건 없다.

그 순간 나는 기묘한 혼돈을 느꼈다. 경상도 산골짜기에서 태어나 도시로 와 긴 세월을 살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이곳 남해까지 온 나 자신의 삶이 이 길 위의 풍경에 축약되어 있는 것 같았다. 계속 붉은 등 아래 머물러야 할지 노란 등이 들어오면 돌아가야 할지 초록 등을 보며 앞으로 가야할지 정하기가 난감했다.

오늘만 갈림길을 만날 리도 없다. 내일, 모레. 끝없이 나는 갈림길을 만날 것이고, 아무런 대비도 없이 나는 또 선택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 선택이 최선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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