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은 남해도와 창선도 두 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올망졸망한 작은 섬들이 보석처럼 뿌려져 있어 대소의 조화를 더하기도 한다. <남해군지>에 보면 이런 작은 섬들은 모두 일흔아홉 개라고 하는데, 그 중 덩치가 큰 조도와 호도, 노도 등 세 개 섬에만 주민들이 살고 나머지 일흔여섯 개는 무인도다. 예전에는 사람이 살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철수한 곳도 더러 있다.
남해도와 창선도에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명소가 바둑판처럼 펼쳐져 있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남해의 참다운 면모를 더 알고 싶다면, 남들이 모르는 숨어있는 맛집을 찾듯 작은 섬들이 주는 맛깔스런 풍경을 놓칠 수는 없다. 여름을 맞아 남해를 찾는다면 짬을 내 ‘작은 섬에서 길어 올리는 즐거움’을 놓치지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작은 섬들도 저마다 비경을 숨기고 있으니 어디를 찾아도 흡족할 것이다. 그 중 해안가에 인접해 있어 눈으로 즐기거나 직접 걸어가 산보해도 좋을 만한 섬 다섯 곳을 오늘 안내하고자 한다.

고현면 갈화마을 앞바다에 있는 텐섬. 해양낚시공원 조성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고현면 갈화마을 앞바다에 있는 텐섬. 해양낚시공원 조성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① 텐섬(또는 탠섬)은 고현면 갈화마을 바닷가에 있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떼섬’이 와전되었나 싶었지만, 동네 분에게 여쭤보니 어릴 때부터 그렇게 불러왔다고 한다. 유래에 대해서는 그 분도 아는 게 없었다.
텐섬은 아주 육지와 떨어져 있지는 않고 좁은 모래톱이 이어져 통행도 가능하다. 다만 차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 태풍이 오거나 물살이 거세면 파도가 치면서 부서지는 물보라가 볼 만하다고 한다. 얼마 전 생긴 갈화새우체험장을 지나면 나오는데, 체험장에서 이 지역 명물인 왕새우(가을이 제 철이다)도 맛보고 동네 분들에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줄 것이다.
텐섬 주변 만에는 지금 해양낚시공원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바다 안으로 멀찍이 나가 조망할 수 있는 잔교도 설치 중이고, 숙박 시설도 만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낚시를 즐기면서 섬 구경도 할 수 있어 오랜만의 여가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정비가 덜 되어 어수선해 불편할 순 있지만, 그런 수고가 있어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설천면 금음마을에 있는 도래섬. 바닷물이 빠지면 걸어서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사진 제공 : 남해군청 하철환)
설천면 금음마을에 있는 도래섬. 바닷물이 빠지면 걸어서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사진 제공 : 남해군청 하철환)

② 도래섬은 설천면 금음마을 바닷가에 있는 진짜 조그마한 섬이다. 한자어는 도리도(桃李島)인데, ‘리(李)’와 ‘래(來)’의 글자 모양이 비슷해 음이 바뀐 듯하다. 바닷물이 빠지면 ‘모세의 기적’도 일어나 걸어서 들어갈 수도 있다. 둘러보는 데 몇 분 걸리지도 않는다. 인근 펜션이나 민박에서 하룻밤 자고 새벽에 일어나면 멀리 금산 하늘부터 펼쳐지는 일출 풍경도 기가 막힌다.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들어 무지갯빛 휘장 안에 들어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희한하게도 섬에는 무덤이 하나 있다. 무덤에 대한 전설이 지금도 전한다. 옛날 어느 가난한 청년이 고기를 잡으며 살았는데, 하루는 신령이 나타나 섬에 무덤을 쓰면 부자가 될 거라 알려줬단다. 다만 무덤을 네모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에 따라 무덤을 쓰니 진짜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무덤이 네모난 게 마음에 걸려 둥글게 고쳤더니 다시 가난해졌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이지만, 부자가 되고 싶었던 옛 민초들의 꿈과 지족(知足)하는 겸손한 자세를 일깨우는 전설이 아닐까 싶다.

창선면 율도마을에 있는 밤섬. 숲이 울창하고 썰물 때면 왕래도 가능하다
창선면 율도마을에 있는 밤섬. 숲이 울창하고 썰물 때면 왕래도 가능하다

③ 밤섬은 창선면 율도마을 바닷가에 있다. 딱 보아도 숲이 꽤 울창하다. 역시 썰물이 되면 섬에 들어가 강진만의 멋들어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이름이 ‘밤섬’이라 밤나무가 많나 싶었는데, 딱히 밤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마을이름도 율도(栗島)라 하는 것을 보면 예전에는 밤이 많이 생산되었을 듯도 하다. ‘맛밤’을 준비해 먹으며 거닐면 어떨까. 해안가에는 5층 규모의 펜션이 있어 숙박도 편하다.
1층에는 카페가 자리해 향긋한 커피를 즐기면서 섬과 바다가 주는 운치를 함께 누릴 수 있다.
사천시에서 들어온다면 단항마을에 있는 왕후박나무의 장관부터 먼저 살펴봐도 좋다.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된 왕후박나무는 수령이 5백 년도 더 되었다고 한다. 9.5미터나 되는 밑동에서 뻗어나간 가지가 열한 갈레로 펼쳐져 우산 아래 휘감긴 듯 시원한 그늘을 선사한다.
옛날 단항마을에 살던 어부가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큰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뱃속에서 나온 씨앗을 심은 것이 지금과 같은 거목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동제(洞祭)가 열린다.

미조면 노구마을 앞바다에 있는 마안도와 공도. 낚싯배를 빌리면 섬 일주도 가능하다 (사진 제공 : 남해군청 하철환)
미조면 노구마을 앞바다에 있는 마안도와 공도. 낚싯배를 빌리면 섬 일주도 가능하다 (사진 제공 : 남해군청 하철환)

④ 마안도와 공도는 미조면 노구마을 앞바다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물미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디서나 눈에 띌 정도로 섬이 제법 크고 특이하게 생겼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섬은 봉우리가 세 개 이어져 얼핏 보면 말안장을 닮았다. 그래서 섬 이름도 마안도(馬鞍島)다.
섬 중앙 바로 앞에 암초 같은 작은 섬이 솟아 있는데, 그 모양이 꼭 말을 타거나 내릴 때 발돋움으로 쓰려고 놓은 노둣돌 구실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섬은 공도라 불리는데, 공의 한자어가 공(鞚, 말재갈)이라면 더욱 그럴듯할 것이다. 예전에는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고도 하는데, 식수 문제 때문에 비웠다고 한다.
마안도는 해안에서 멀기도 하지만, 한려해상국립공원 수역 안이라 출입에 제한을 받는다. 하지만 노구마을 선착장에 가면 낚싯배를 빌릴 수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섬 일대를 일주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시원한 남해의 난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상주면 은모래비치 해수욕장 오른편에 있는 승치도와 목도.주변에서는 호젓하게 낚시도 즐길 수 있다
상주면 은모래비치 해수욕장 오른편에 있는 승치도와 목도.주변에서는 호젓하게 낚시도 즐길 수 있다

⑤ 승치도와 목도는 상주면 은모래비치해수욕장 오른쪽 산기슭으로 난 도로를 타고 조금 가면 나오는 섬이다. 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도 보이는데, 진면목을 보려면 테트라포드가 즐비한 선착장까지 가는 게 좋다.
도로가 중간에 끊기기도 하지만, 가까이 가서 섬을 보려면 국립수산과학원 경내를 지나야 한다. 주말에는 자동차 진입이 되지 않지만, 과학원 안으로 들어가 걸어갈 수는 있다. 5분 정도 걷는 길이니 주변 경치를 둘러보며 가면 금방이다. 멀리 보이는 해수욕장과 주변 경치가 몹시 아름다워 또 다른 진풍경을 연출한다.
승치도는 파도가 잔잔하면 걸어 들어가도 되는데, 미끄럽기도 하지만 안전을 위해 출입을 통제한 듯하다. 시선을 조금 멀리 돌리면 맞은편으로 연이어진 모도와 사도, 애도, 조도, 호도도 가물가물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맑은 날이면 투명한 시야가 상쾌하고, 비가 오거나 흐리면 은은한 정취가 아련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방파제에서는 낚시도 가능하다. 주말이면 한적함을 즐기는 강태공 몇몇이 모여 세월을 낚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보물섬’이라 불리는 남해는 온갖 고귀한 보물들로 치장되어 있지만, 깨알 같은 보석들이 흩뿌려져 있어 찬란함을 더한다. 그 가운데 바다에 뿌려진 진주알들이 작은 섬들이다. 수박만한 섬도 있고, 호두알만한 섬도 있다. 모처럼 남해에 찾아와 무위자연 신선의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굽이굽이 이어진 남해의 심산유곡을 찾는 것도 한 방편일 것이다.
그러나 남해에 와서 나만이 비장할 수 있는 감동을 하나 갈무리고 싶다면 작은 섬들을 순례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섬에는 풀과 나무가 소담스럽고, 찰싹이는 물결이 발등을 간질인다. 또 멀리 남해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 하늘 지붕으로 이어진다. 땅의 가장 낮은 곳에서 하늘의 가장 높은 곳까지 이르도록 작은 섬들이 여러분들을 손짓하고 있다. 조그만 사진첩 하나를 안고 귀가하는 즐거움이 이 섬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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