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유튜브’에 남해군홍보대사로 출연한 최 산 군이 그룹 에이티즈와 함께 ‘남해 방문의 해’ 응원을 보내고 있다
‘남해군 유튜브’에 남해군홍보대사로 출연한 최 산 군이 그룹 에이티즈와 함께 ‘남해 방문의 해’ 응원을 보내고 있다

가족 그리고 고향, 이 두 단어가 갖는 힘은 종종 아픔과 눈물이 되었다가 그리움이 되었다가 때로는 치유가 되기도 한다. 겹겹이 쌓인 다랑논처럼 여러 감정이 겹치는 ‘어버이날’ 우리의 어버이에 대해, 가족이 주는 위안에 대해 생각한다. 
최근 ‘남해군 홍보대사’로 일당백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막강한 에너지 소년, 최 산(보이그룹 에이티즈 멤버)의 아버지 최총철 씨는 보물섬 남해군에서는 어쩌면 최 산 군보다 더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부러움의 대명사일지도 모른다. ‘산이 아빠’ 최종철 남해군장애인체육회 사무국장을 만나 그가 들려주는 산이네 가족의 남해 사랑과 애틋한 가족 이야기를 담았다. <편집자 주>

남해군 유튜브 ‘남해군홍보대사 최 산’ 편이 조회수 4만여 회를 돌파했다. 에이티즈와 멤버 최 산의 인기를 여지없이 실감하는 요즘. 최 산을 늘 지지하고 응원하는 산이의 버팀목인 아버지 최종철 씨는 말했다. 
“산이에게 그러죠. ‘(네가) 스타는 무슨 스타냐고’. 조금 인기 있다고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는 꼴은 못 본다. 진정 가수가 되고 싶다면 항상 겸손하고, 너에게 단 한 명의 팬(fan)이 있다 할지라도 그 한 명을 위해 노래하고 춤춰 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 한 명의 팬이 바로 아빠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라”. 
‘불후의 명곡’ 방송을 비롯한 여러 영상에서 익히 알려진 최 산 군의 남해 사랑, 고향 사랑을 보면 애틋하고 남해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에 대해서 “저도 그렇고 산이도 그렇고 워낙 남해를 좋아하는 사람이 돼서 그게 절로 나오는 듯하다. 사실 저에 대해서도 이미 (뒷바라지 하느라)서울로 이사 간 줄로 오해하는 분도 있다. 저는 물론, 산이도 아직 주소지가 남해군으로 돼 있다. 소속사에서는 하루 빨리 주소지를 옮기라는데 산이가 버티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가수 나상도를 비롯해 산이를 지켜준 고마운 사람들
1999년 7월 10일 남해읍 출생, 최 산. 어둠 없이 빛이 존재할 수 없듯 오늘날 가수 최 산이 있기까지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늘 있었다. 아버지 최종철 씨는 “중학생 무렵 한 날 산이가 진지하게 드릴 말씀이 있다며, ‘학원비가 아까우니 저를 학원 안 보냈으면 좋겠어요. 학원 가도 공부도 안 하고, 앞으로도 공부는 안 하고 싶다’는 게 아닌가. 속으로 정말 놀랐으나 ‘그럼 네가 진짜로 무엇에 심장이 뛰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러니 산이가 ‘늦기 전에 가수를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늦게 시작한 만큼 서울에서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하기에 제 모든 인맥을 동원해 서울에서 보컬 레슨을 받게 해주었다. 연습보다 홀로 외로움에 힘들어할 때 남해에서 대신화물을 운영하는 이지용 씨 가족이 산이가 지낼 수 있도록 서울의 집을 내주고, 친자식처럼 뒷바라지해주셨다. 눈물 나도록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후 남해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면서 서울 지역 예고로 오디션 보러 다닌 결과 한국예술고등학교에 합격, 1학년 2학기 때 편입하고 그때부턴 산이 엄마가 방을 구해 4일간은 서울에서, 3일은 남해에서 지내는 생활을 2년 6개월간 했다고. ‘산이 엄마’ 김남지 씨는 당시를 회상하기로 몸은 고달팠지만 오직 아들 산이를 위해 뒷바라지할 수 있었기에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또한 “가수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지지와 조언을 준 건 가수 나상도와 나상도의 ‘벌떡 일어나’ 작곡가인 김현아 교수님이 준 ‘용기’였다. 

2019년 7월 10일, 최 산 데뷔 후 첫 생일 축하를 위해 남해읍 한 카페에서 열린 생일파티 자리를 찾은 산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 최창훈(91), 할머니 이옥순(89)님의 모습
2019년 7월 10일, 최 산 데뷔 후 첫 생일 축하를 위해 남해읍 한 카페에서 열린 생일파티 자리를 찾은 산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 최창훈(91), 할머니 이옥순(89)님의 모습

나상도가 스승 김현아 작곡가에게 산이의 댄스와 노래 영상을 보여드리며 ‘우리 관장님 아들인데 가수 되겠습니까’를 물었고 이에 김현아 작곡가는 ‘산이 자신이 포기만 안 한다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확신을 준 게 큰 동력이 되었다”며 오늘날의 최 산을 키워준 건 남해사람들과 아버지처럼 지켜주는 KQ엔터테인먼트 김규욱 대표와 회사 직원들, 언제나 사랑과 칭찬으로 산이를 응원하는 ‘에이티니(에이티즈 팬클럽)’ 덕분이라고 말했다.

모든 일에 최우선은 가족이다
아빠 최종철 씨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은 ‘모든 일에 최우선은 언제나 가족’이다. 정작 본인은 아빠로서나 남편으로나 결코 좋은 사람이 못 된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가슴에 품고 사는 건 ‘가족’이다. 이러한 신념에 결정적 영향을 준 건 종철 씨의 아버지이자 최 산의 할아버지 영향이 지대했다. 
최종철 씨는 “산이 할아버지께서 앞을 못 보세요. 시각장애인의 몸으로 연탄배달, 식당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부족함 없이 키워주셨죠. 하고 싶은 걸 포기하지 않게 해주셨고, 늘 지지해 주셨으며 베푸는 삶 또한 늘 몸소 실천하셨죠. 그야말로 저를 부잣집 아들처럼 키워주셨어요. 그런 할아버지를 산이가 특히 잘 따랐어요. 정작 저는 태권도장 운영으로 바빠 주로 산이의 조부모님께서 산이를 키워주셨죠,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산이 때문에 노래방기계까지 들이고, 산이 또한 매일 집에 오기 전에 먼저 할아버지께 들러 노래를 불러드렸죠”라고 말했다.

바르게 커 줄 거라는 믿음만은
이렇게 잘 자라줄 줄 알았느냐는 질문에 아버지 최종철 씨는 “가수로서의 성공은 장담하지 못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산이로, 바르게 커 줄 거라는 믿음은 있었다”며 “산이는 힘들어도 아예 가족에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던, 본인이 힘들다 하면 가족에게 걱정과 짐이 될까 말하지 않던 일찍 철 든 아이 같았다”고 말했다. 
겨우 한 시간 쪽잠 자며 연습하느라 옷에 땀이 절어 소금꽃이 피어도 힘든 내색 않는 아들을 보며, ‘산아, 가끔은 아빠에게 기대도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정작 하는 이야기는 “세상에 당연한 일은 하나도 없다. 팬들의 사랑에 영혼 깊이 감사하라. 힘든 건 잠시고 인기도 잠시니까 초심 잃지 말고, 아이돌의 삶은 영원하지 않다”는 쓴소리라는 아버지 최종철 씨. 

보물섬 남해를 넘어 이제는 전 세계의 아들로 사랑받고 있는 ‘남해읍 아이돌 1호’ 최 산, 팬들이 주신 사랑에 보답하며, 나고 자란 보물섬 남해에 더 큰 보탬으로 힘이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은 이제 우리의 꿈과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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