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선거철이 다가온다. 선거철을 앞두니, 민주주의의 본고장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생각이 난다. 그는 민주주의란 참으로 더러운 것이나, 더 좋은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민주 제도의 신봉자인 처칠은 왜 그런 말을 하였을까? 민주주의란 지고지선, 완전무결한 제도는 아니다. 그것은 다수결의 원리에 따르며, 다수결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다수결’의 그 다수가 늘 옳다고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리석거나 옳지 않은 인물을 뽑는 불상사가 세계의 정치사에서 드물지 않게 빚어진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민주 헌정사에서 불치병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지역주의의 장벽이다.

영남과 호남의 지역 장벽은 뜻있는 사람 또는 이해관계에 연연해하는 인사들의 허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요지부동이다

. 다수결로 뽑은 대통령의 우리 남해에서도 지역주의의 벽은 높다. 특정 지역(면) 출신은 선출직 국회의원이 될 수 없는 것이 이제는 거의 운명처럼 되어 있다.

그 지역에서는 출중한 인물이 나와도 지역적 다수를 점유하지 못하여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산업 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를 맞이한 21세기까지 지역주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지역주의는 농경 시대에 생겨났다.

씨족끼리 뭉쳐서 다른 씨족과 싸우고, 그것이 발전하여 부족끼리 뭉쳐서 또 다른 부족과 싸웠다. 나아가 부락 집단주의가 생겨나서 다른 부락과 싸우는 식으로 집단이 점점 커져서 보다 큰 지역끼리 대립하게 되었다.

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정치판은 ‘신삼국 시대의 형국’을 펼쳐 보이고 있다. 호남/충청/비호남 충청의 세 지역 세력이 정립하여 있다.

이 문제는 농경 시대에 생장한 세대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사회/경제/문화의 결정적 현안으로 남아 우리 역사의 크나큰 짐이 될 것이다.

우리 남해는 아직 농업/어업 등 제1차 산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주죽이 되어 있는 고장이다. 농경 시대의 지역주의가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마음은 선거철에 현저히 드러난다.

이번 선거철에는 우리 남해에서 새로운 캠페인이 벌어지기를 기대한다. 지역주의의 장벽을 깨뜨리는 장쾌한 소식이 우리 남해의 산하에 울려 퍼져야 하겠다.

이런 캠페인의 선두에는 각 마을의 이장님들이 나서야 할 것이다. 이장님들이 모임을 만들고 각 지역의 유지 일동께 자문을 구하여 가며 지역주의 극복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 뜻을 같이하는 남해 사람 누구나 이에 동참하여 남해의 민주 정치사에 끼친 지역주의의 폐해를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고, 이 폐단을 혁파할 방안을 공청회와 거리 캠페인, 마을 방문 계도 활동, 유인물 배포 등의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이를 실천하여야겠다.

남해는 각계각층에서 봉사하는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왔다. 정치 분야에서도 지역과 계층의 장벽을 넘어 훌륭한 인재를 선출하는 모범을 보이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