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신문이 창간 31주년을 맞이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남해신문의 지난 역사는 남해와 향우를 연결해준 시간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남해 소식을 살피며 제가 남해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또 고향 소식과 향우의 소식을 보며 저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타향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과 달리 이제 우리 고향 남해도 많이 유명해진 것 같습니다. 남해대교와 충렬사, 상주 은모래 해수욕장과 금산이야 이미 널리 알려진 곳이었지만 최근 여러 곳에서 전하는 남해 소식을 보면 앵강만이며 다랭이마을도 서울에서 제법 유명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 고향 남해를 타향에 나와 있는 사람으로서 잊지 않도록 해준 것이 바로 남해신문입니다. 다른 향우들도 그렇겠지만 남해는 나를 낳고 길러준 곳이니 어머니의 가슴과 같은 곳입니다. 그러니 고향이란, 곧 남해란 한평생을 타지에서 살아도 마음만은 자주 찾아가게 되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잘 되면 남해 사람이라서 잘 된다고 생각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남해를 생각하며 이겨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고향 남해가 저에게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생깁니다. 고향의 산천은 그대로지만 가끔 방문하는 고향에서 뵙는 일가 어른, 동네 어른, 그리고 반갑게 인사하던 친구나 후배를 찾는 것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보기 어려운 얼굴도 있고 또 이런저런 일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아쉽기만 한 일입니다.

이러한 상황이니 남해신문은 신문이기 이전에 소식지며 친구와 같은 존재입니다. 신문이니 언론으로서 비판과 정론을 구사하는 것이 본업이지만 고향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거기에 담긴 고향 소식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남해신문은 지역신문이 아닌 지역 소식지이며 조금 더 정확하게는 남해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전령이었습니다. 기사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향우에게 연락을 한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고 또 고향의 변화상을 알게 되어 다행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고향을 떠나 각지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향우들에게 긍지와 힘을 주는 존재가 바로 남해신문입니다. 31주년을 맞은 남해신문에 감사의 마음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문제 제기를 넘어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어주는 것 또한 남해신문의 역할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남해에서도, 그리고 타향에 나온 남해 사람들도 하나가 되어 무슨 일이든 이겨낼 힘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코로나19 시절에도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중심에 남해신문이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이를 기념하는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의 만세운동은 우리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종교인으로서 천도교, 기독교, 불교가 종파를 초월하여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 100년 전 선조들의 모습은 분열과 이기심이 팽배한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나라의 어려운 일을 극복하기 위해 단일화, 대중화, 비폭력의 정신을 선언한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100년 전 3.1운동의 결과 수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통해 이 땅에 왕이나 황제가 아닌 국민, 시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위대한 역사의 가치를 잇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시민, 학생에게 전달하는 사업은 힘들고 지난한 사업이었지만 한편으로 보람찬 일이었습니다.

남해 사람 모두가 서로 위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내 고향 남해 사람은 모두가 일가친척입니다. 고향에 있을 때 남해에서는 굳이 촌수를 세지 않고 삼촌, 숙모가 되니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남해를 벗어나도 그대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고향에 계신 일가친척 및 선후배 여러분, 그리고 향우 여러분 모두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남해신문의 31주년 맞이를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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