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집 바로 앞에 1년 내내 물이 가득한 논에 시퍼런 풀들이 빽빽이 덮고 있었다. 어른들은 “거머리 천지”라며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다. 그게 ‘미나리꽝’으로 불린다는 건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에야 알았다. ‘미나리’는 내 기억 속에서도 참 옛날의 기억에 속한다.

미국 이민 1세들의 고달팠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이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수상은 이미 예견됐다. 각종 굵직한 국내외 영화에서 30여개 이상의 트로피를 받았고, 수상을 예측하는 골드더비에서도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윤여정은 미나리에서 딸 모니카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 아시아 배우 중에서도 ‘사요나라’(1957)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64년 만에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영화 미나리는 유토피아의 꿈과 희망을 찾아 이민의 길을 떠난 나그네가 그곳에서 또 맞닥뜨린 곤경 때문에 다시 길을 떠나 헤맸던 애환. 한데 ‘영화보다도 더 영화스러운 현실’을 수도 없이 겪는 것이 오늘날 우리네 인생살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영화는 그 영화의 여운이 현실과 마구 뒤섞여 어디까지가 영화이고 어디부터를 현실이라고 여겨야 할지 헷갈리는 수도 왕왕 있다. 

영화 미나리는 확실히 영화적 고통과 우리 현실의 애환을 그대로 연결해 줌으로써 관객을 공감의 장으로 빨아들이는 마력을 가졌다. 미국 이민 1세들의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 영화의 처음이자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억세게 운도 없는 것이, 하는 일마다 꼬여만 가는 어려움만 가득한 힘들게 살아가는 일상으로 내내 일관한다. 보통의 영화 줄거리와 같이 고생 끝, 행복 시작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돌보는 이 없어도 1년내내 물만 가득한 습지, 남해에서 말하는 강논 냇가 같은 곳에서 꿋꿋하게 자라나 군락을 이룬 미나리꽝만을 마지막으로 보여줄 뿐이다. 

요즘 영화 대부분이 많은 자본을 들여 만든 거대한 스팩타클한 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단순함, 밋밋하고 무미 건조할 정도의 줄거리 때문에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입장에서 첫 느낌은 '왜 이런 영화에 호평을 하지?' 하지만 그 후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는 여운은 ‘이건 남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얘기네’라는 깨달음이라 하겠다. ‘지금 보다 더 나은 다른 곳’을 향해 가고 싶은 욕망.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군분투는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한 여정의 하나. 이영화의 이야기,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70년대 이후 잘 살아 보겠다는 꿈을 향해, 낯설고 물선 부산, 서울 등 각 도시에서 뿌리를 내리려는, 고향 남해를 떠난 그런 억척 스러운 삶이 있었기에 독한 남해사람들이란 말을 들으면서 살아 온 것이 아닐까. 남해사람들의 웃음과 눈물과 같은 느낌으로 펼쳐지고 희망과 좌절이 잔잔한 물결처럼 흐르는 우리 남해사람들의 위대한 도전과 같은 영화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코로나로 인해 영화관을 찾기 쉽지 않지만 아카데미 수상을 했다는 작품을 떠나, 지금 보다 더 나은 다른 곳을 찾아가기 위해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영화관을 찾던, 유료채널에서 시청을 하던, 이 시기에 한번은 볼만하고 봐야만 하는 영화이다. 
볼 때는 느낌이 없다가 마칠 때,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드는 것을 체감할 것이고, 오랫동안 여운이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 우리 어릴 적 얘기에, 나도 모르게 공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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