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면 정거마을

토요일이라 南海에 갔다. 아름다운 5월, 고향의 봄도 느낄 겸 형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고향을 갈 때면 항상 마음이 앞서 달린다. 삼천포 쪽으로 가면 「삼천포 남해대교」의 멋진 다리를 건넌다. 노량 쪽에는 근래 「노량대교」가 새로 만들어져 남해에 다리가 세 개이다. 

1973년 「남해대교」가 처음 생겼을 때 파란 바다 위에 빨강색 현수교가 무척 아름다웠다. 동양 최대의 현수교를 구경하러 전국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던 것이 기억난다. 학생들은 수학여행, 젊은 처녀 총각은 달콤한 데이트 장소로, 어른들은 신바람 나는 버스관광코스였다. 빨강색 대교를 배경으로 남해대교(南海大橋) 글자가 새겨진 표지석 앞에 서서 사진 찍는 것이 자랑이었다. 새로 생긴 「노량대교」는 아름답게 만들어진「남해대교」에 비교하면 남성다운 멋, 그리고 웅장한 느낌을 안겨준다. 

고향에 도착한 마음은 순서 없이 추억을 더듬는다. 초등학교 철봉 밑에서  작은 키에 철봉에 매달리려고 애를 쓰는 모습, 운동장에서는 주먹만큼 작은 고무공을 좇아 달리는 모습, 뒷들 논 언덕에서 동무들과 크로바꽃을 꺾어 손에 감고 자랑하며, 소꼴도 베고, 나락볏짐을 지고 나르는 등, 곳곳에 어릴 적 내 모습들이 추억 속에 남아 지금도 움직이는 듯하다. 

지금의 고향 모습은 옛날에 비해 많이 변해있다. 산기슭에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옛 모습과 달리 초가지붕은 없어지고 시멘트로 된 건물들로 바뀌었다. 들판은 농지정리를 하여 논들이 사각으로 바둑판처럼 정돈되었다. 소를 몰아 쟁기질을 하는 대신 트랙트로 논을 갈고, 많은 사람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못줄을 잡고 모를 심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고, 넓은 들판에  이양기 한대가 모심기를 대신 한다. 기계가 없다면 노인들이 많이 사는 농촌은 일손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옛날, 농지정리로 변해있는 들판 저만큼 쯤에 우리 논이 있었다. 그 논에서 농사일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보리타작이 끝난 이때쯤, 소를 몰고 쟁기로 논을 갈고 쓰레질을 했다. 묘를 심고 나면 벼 사이에 나 있는 풀을 손으로 뽑는다. 물이 차있는 논에 엎드려 풀을 뽑는 논매기는 무척 힘 드는 일이다. 학교에 갔다가 오면 아버지와 같이 논에 들어가 풀도 뽑고 언덕에 나있는 풀도 베었다. 평생을 황소처럼 일만 하시다가 내 중학교 3학년 때 세상을 떠나신 우리 아버지, 기억 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영상이 흑백 영화처럼 흘러 지나간다.

고향에 들어서면 고향의 냄새를 맡고 싶어 무조건 걷는다. 마을 골목길도 걸어 보고, 들판도 가로질러 걸어 본다. 가슴에 젖어드는 허전함은 듯 없이 흘러 가버린 세월이다. 들판을 혼자 걸어도 외롭지는 않다. 마을 뒤에 있는 산은 어릴 적 나무를 하러 오러 내리던 산이요, 걷고 있는 이 들길은 보리 꺾어 피리 불고, 언덕에 피어 있는 찔레꽃 연한 순 꺾어 씹으며 동무들과 어울러 놀던 들판이다. 그때는 왜 그리 들판을 쏘다녔는지. 곳곳이 정이 깃던 곳이어서 전혀 혼자인 것 같지 않다.

들판을 돌아 흐르는 시냇가 저 밑 웅덩이는 여름이면 친구들과 멱 감고 물장난 하던 곳이다. 그때는 맑은 물이 졸졸거리고 흘렀다. 지금은 그때처럼 멱을 감을 어린 학생들 보기가 어려운 시골마을,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앞선다. 

논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니 길옆 논에서 일을 하던 후배 상구(相九)가 나를 보고는 반갑게 소리친다. 

“아이고, 행님! 언제 왔십니까?” 

햇살에 그을린 검고 건강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짓는다. 

“여보! 거기 양파 좀 뽑으소!”  

갑자기 아내에게 논에 심어져 있는 양파를 뽑으라고 시킨다.  

“빨간 다마네깁니다. 드릴 건 없고 이거 좀 갖고 가이소.” 

검은 비닐봉지에 싸서 준다. 이게 고향이고 농촌의 인심이다. 

오후가 되니 조카들 부부가 왔다. 사는 곳이 멀지 않은 인근의 도시건만 바쁜 일상에 쫒기다 보니 얼굴 보기가 싶지가 않다. 이렇게 사는 것이 현대인의 가족이다.

정성껏 제사를 올리고, 음복도 하면서 오랜만에 대화도 나누었다. 제사란 조상을 섬기는 행사이기도 하지만 친척이 모여 얼굴도 보고 정을 나누는데 큰 의미기 있기도 하다. 고향을 다녀오면 며칠간은 따뜻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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