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感性) 시대를 논하다
감성(感性) 시대를 논하다
  • 남해신문
  • 승인 2021.04.1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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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사전적 의미는 오관(五官)이 외부로부터 오는 감정 등 자극에 반응하는 정도나 강도를 말합니다. 감성은 부드러움이요 온화이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를 조화롭게 할 에너지입니다. 또한, 어떤 걸림이라도 유연하게 해줄 힘을 지녔기에 이를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대인관계를 원만히 해줄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심기(心氣)를 보존할 때도 눈(시각), 귀(청각), 코(후각), 혀(미각), 피부(촉각)의 오감을 유연하게 하여 딱딱해진 심성이나 감정 등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듯 오관을 견지하면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오늘은 얼굴이 밝아 참 좋습니다 / 옷이 참 잘 어울리는 군요 / 당신이 오늘 차려준 음식이 참 맛있네요,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 오늘은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 무척 건강해 보여 좋습니다 / 지난번에 어려운 문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잘 해결이 되셨는지요.”등과 같이 마음을 다하여 상대를 격려하는 마음을 놓지 않는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감성의 극치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인관계에서의 기본은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상식이지만 감성적으로 이를 뒷받침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따뜻이 품을 수 있다면 감성의 힘은 더욱 크게 부각 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감성이 이 시대를 이끌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이를 우리 고장 남해의 의식 주체로 삼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단순히 보고 느끼는 차원을 넘어 마음으로 감동을 느낄 정도의 감성이라면 그 위력은 엄청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감동이 만인의 심금을 울리게 할 수도 있고 한 선행이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례를 보더라도 감성이 주는 위대함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과 가장 기억에 남을 느낌이 있었기에 가장 찾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곳이 되어가는 그런 장면을 연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정도의 감성이라면 우리 고장에 살고자 귀농 귀촌하신 분들이 설혹 문화적 차이로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감성의 넉넉함으로 자신을 고조시킬 수만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남해의 이미지를 풍부히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필자가 몇 년 전 귀농하였을 때도 감성 부재에 따른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무래도 수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쌓인 도심의 이미지와 생활 패턴 그리고 문화적 감각이 다른 데서 오는 고충이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도시의 감각을 떨쳐버리고 농촌의 이미지를 담아두기까지 그 사이에서 빗어지는 차이를 해소하는데 감성의 온유한 정서가 없었다면 이러한 혼돈을 극복하기가 용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차이를 극복하며 새로운 생활 패턴을 몸에 익히기까지 감성은 농촌의 이미지를 무리하지 않고 부드럽게 섭렵하도록 에너지를 고양시켜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감성은 큰 투자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요,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넉넉함만 있다면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는 기본 예도입니다. 이런 까닭에 감성은 곧 내 마음의 부드러움이 어느 정도이며, 친화력은 또 얼마인지를 갸름해 보면서 내면의 밝기를 선정하는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감성은 순간적으로 발현될 유머나 위트가 아니라 가슴 깊이 잠재된 유연한 마음인 즉 친절, 평화, 온화, 기쁨, 원만, 화해, 배려, 이해 등이 중심이 될 때 그 의미가 더욱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감성은 인간의 사고를 한층 부드럽게 무리하지 않게 조율해줌으로써 심신을 건강하게 이끄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감성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문화와 문화, 감정과 감정, 마음과 마음 사이에서 극단과 극소에 이를 기운을 적절히 해소하지 못한다면 불안한 심기를 달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감성을 논함에 있어 먼저 마음을 순히 하여 처신하면 쉽고, 거슬리게 하면 어려운 것이 선결 요건임을 고려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을 순히 하면서 그 온유한 힘을 몸과 마음에 저장하기까지에는 절제된 감각이 곁들어져야만 가능하기에 이를 반영할 훈련이 필요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잠잠한 성품이 바탕이 된 감성을 닦을 수(修)로서 단련하고 지킬 수(守)로서 배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심기(心氣)를 더욱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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