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다 디지털 홀리데이’. 이 얼마나 홀릭할 만한 이벤트였던가. 디지털 노마드를 ‘남해 한달살이’로 강력하게 이끌어냈던 만족도 높은 남해한달살이로 남구체험휴양마을에서 이뤄진 값진 실험이자 경험이었다. 이 체험의 결실로 한 명의 IT개발자가 드디어 남해군으로 귀촌했다. 1984년생 엄준성 씨, 스스로를 ‘서울 촌놈’이라 부르는 그가 남해군민이 되었다. 지난 3월 창선면 곤유마을로 전입신고를 하고 본격적으로 ‘열심히 말고, 여유 있게’ 살아볼 궁리를 하는 그를 만났다. <편집자 주>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도시 서울, 인구밀도에서 한계 왔다
서울이 고향인 엄준성 씨는 IT 개발자로서도, 콩나물시루 같은 도시 서울에서의 일상에서도 소위 번-아웃이라는 불리는 극강의 피로를 느꼈다. 이에 지난해 6월 퇴사를 하고 쉬던 차에 ‘생활코딩’이라는 커뮤니티에서 ‘남해 바다 디지털 홀리데이’라는 한달살이 모집 글을 발견했다. 새벽 1시에 글을 발견했는데 “숙박도 무료, 밥도 무료, 이거 너무 좋은데? 가면 일 시키는 거 아냐? 근데 혹여나 약간의 일을 시킨다 해도 너무 좋은 조건이라 이거 경쟁률 치열할 것 같은데?” 싶어서 곧장 자기소개서를 써서 새벽 2시에 지원서를 냈다고 한다. 실제로 내려와서 경험한 남해는 김강수 사무장의 자율을 중시여긴 진행방식과 더불어 여행코스, 체험코스 덕분에 만족도가 최상이었다고. 사실 서울 직장을 퇴사한 후 “나도 한적한 곳에 가서 살고 싶은데 나는 고향이 서울이잖아. 어딜 가야 하나?”를 고민하던 준성 씨는 지역에 사는 친구들에게 시골살이를 수소문 해왔다고 한다. 그들이 한결같이 들려준 답변은 “1. 지역에 가면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다. 2. 기댈 곳이 좀 있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남해에서 만난 김강수 사무장과 청년혁신과가 일종의 기댈 곳이 되어주었고, 일자리는 ‘IT개발자 프리랜서’ 답게 작은 일감들을 몇 가지 따서 인터넷이 빵빵한 집에서 작업해서 납품하면 그럭저럭 생활은 이어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혼자다 보니 가능했던 ‘인생 제대로 뒤흔들기’

‘바이크 타기’가 취미인 준성 씨에겐 꿈이 있었다. 2016년 유럽으로 떠난 3달간의 여행으로 새롭게 품었던 ‘유라시아 대륙 횡단’의 꿈. 그런데 그 꿈을 코로나19가 일단 앗아가 버린 상태였다. 1년 정도 쉬기로 결심하면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던’ 본인을 ‘다 흔들어 놓는데’ 일단 성공했다. 그는 “혼자여서, 홀몸이라 비교적 걸림돌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는 큰 결정’이다. 아직은 아이가 없어 병원 걱정, 교육 걱정은 한시름 놨고 대중교통 불편한 곳이라 운전은 필수인데 다행히 운전을 아주 좋아하고 잘한다. (월급이 없는 상태라) 남해의 비싼 집값이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좁은 농로에 닿아 있는 단독주택을 ‘저렴한 월세’로 잘 구할 수 있었다”며 “결혼하면 더 걱정이 크고 도전하기 어려웠을텐데 여행 삼아 살기를 남해에서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본인처럼 IT 업종은 변화가 빨라 근속율도 짧다고 한다. 연차에 따른 임금상승으로 업계에선 8년 차 1명 쓰느니 주니어 3명 쓰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기도 해서 업계에선 ‘40대에 은퇴해서 치킨집 차린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라는 현실을 들려줬다. 그래서 재택근무나 프리랜서가 가능해 사는 곳의 제약이 비교적 적은 ‘IT업계’ 쪽 사람을 이주하게 하려면 40대 중반까지 한달살이로 품어주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한다. 준성 씨는 “삶의 전환이 일어나는 때가 3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 같아요. 어떻게 살아볼까? 다른 삶을 살아볼까? 다른 일을 해볼까? 마구 전환하는 시점에 놓인 사람들에게 남해가 가진 강점, 남해가 지닌 매력,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이주가 더 가능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자연이 아름다운 건 좋지만 커뮤니티에 대한 갈증은 있다
“서울 촌놈이라 그랬는지 자연에 대한 동경이 컸던 것 같다. 특히 남해는 햇살부터 때깔이 달랐다. 다리로 건너갈 수 있는 섬이니 택배도 추가 요금 없이 받을 수 있고 생활 불편이 많이 절감된다. 또 거주지가 창선면이다보니 삼천포 터미널까지 10분이면 가고 대형마트나 별다방이 다 가깝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디지털 홀리데이가 각광받을 수 있었던 게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모아둔 한달살이였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또래, 비슷한 관심사와 고민과 걱정. 커뮤니티 즉 친구가 있었단 뜻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나누는 존재 아닌가. 최근엔 바이크를 중심으로 한명씩 찾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일은 해야 할 터. 준성 씨는 “고를 수 있는 일자리 수 자체가 워낙 적다 보니 대부분 카페나 식당 등 장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전 그런 공간과 자본이 소요되는

창업에 대해선 리스크를 크게 느끼는 편이라 안 맞는 것 같고, 소소한 틈새시장을 노려볼 예정이다. 멸치나 유자 등 판매방법을 수단화하고 앱으로 쉽게 관리하는 법, 옆집 이웃이 민박집을 하는데 예약시스템이 어렵다면 그런 걸 맞춤형으로 제작해 주는 등의 일을 찾아하고, 코딩 교육 등 강의 또한 할 수 있는 영역이니 기회를 만들어 가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선은 바이크 타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단다. 

“열심히 살고 싶지는 않아요. 여유 있게 살고 싶어요. 저를 다 흔들어 놓은 상태라서 어려운 질문은 잠시 보류해두겠습니다” 그래, 맞다. 자기 자신을 다 흔들어 두었으니 어디로 어떤 속도로 흘러가는지 내버려 두는 시간이 절실하다. 가끔 그렇게 내버려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게 남해살이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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