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계산업진흥회 기술교육원 송균호(60) 원장을 인터뷰했다. 송 원장의 친구인 정경준 향우의 소개로 지난달 31일 충남 천안시에 있는 한국기계산업진흥회 기술교육원을 찾아갔는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서글서글한 모습과 미소를 머금은 첫 인상에서 너그럽게 주위 사람을 보듬어주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송 원장은 남해군 남면 구미마을 고(故) 송태두 아버지와 현재 남해에 계신 박수엽(83) 어머니의 3남2녀 중 장남이다. 상덕초, 해성중·고를 졸업했다. 송 원장으로부터 한국의 기계산업과 기술교육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기계산업진흥회를 간단히 소개한다면
“한국기계산업진흥회는 1969년 우리나라 기계산업의 발전과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설립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민간단체이다. 당시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자립경제기반 구축을 기본목표로 우선 기간산업과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역점을 두었다.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따라 창원기계산업단지 조성, 기계류 국산화 등 중화학공업정책의 일환으로 기계산업을 육성, 발전시키면서 우리나라 기계산업의 역사와 함께해 오고 있다. 향후 한국기계산업진흥회는 기계산업의 정부정책 홍보과 기계업계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 교량역할을 충실히 하는 한편, 창립 50주년을 넘어 우리나라 선진 기계산업 50년을 향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진흥회에서는 언제부터 일했나
“1990년에 입사하여 30년간 근무하고 있다. 주로 홍보업무, 보증업무, 해외시장 개척업무 등을 담당하였으며, 내부에서 발탁되어 2019년부터 충남 천안에 소재하고 있는 기술교육원 원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진흥회 이전의 이력은
“상덕초와 남해해성중·고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플라스틱 사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 1년 정도 다니는 등 여러 직업을 경험하였지만 본격적인 회사생활의 출발은 한국기계산업진흥회이다.”

▲진흥회에서는 어떤 기업지원 활동을 하는가
“진흥회는 기계산업을 영위하는 우리나라 기계업계를 대변하여 기계산업 정책 및 조사연구사업, 기술개발지원사업, 국내시장 및 해외시장 개척사업, 기계산업 정보화사업, 보증업무 관련 금융지원 사업, 산업 맞춤형 인력양성사업, 중고기계설비 유통사업 등의 주요 업무를 하고 있다.”

▲한국기계산업의 세계적인 위치는
“우리나라 수풀 품목 중 기계산업은 반도체 산업에 이어 수출 2위 품목이다. 반도체와 격차는 있지만 연간 500억불 수출규모를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미국, 일본, 독일이 기계산업 강국이고 우리나라는 세계 8위에 위치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기계산업 강국은 모두 경제대국이다.”

▲기계산업 발전이 중요한 이유는
“기계산업은 모든 산업분야의 생산설비를 공급하는 핵심기반산업이다. 기간산업인 기계산업 발전이 국가경제를 튼튼히 지탱해 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산업현장이나 가정에서까지 기계의 역할은 실로 지대하다. 인간이 손수 하지 않고 도구를 사용하는 순간부터 기계는 우리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요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기계산업인들은 기계산업을 산업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계산업은 전산업의 근간을 이루고 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4차산업의 스마트화, 디지털화, 지능화 등에 따라 ICT가 결합된 제어기술, 인공지능화(AI) 기술, 운영 소프트웨어 등 기계산업의 역할과 중요성은 날로 더해 갈 것으로 보인다.”

▲기술교육원장 부임 후 역점 사업은 무엇인가
“한국기계산업진흥회 기술교육원은 1987년에 설립하였고, 고용노동부가 지원하여 전액무료로 기술교육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약 2만여명의 기술인력을 양성하여 산업계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기술교육원은 정부의 일자리창출과 산업계의 인력수급 일환으로 정부에는 인력개발 정책 확대에 기여하고 기업체에는 원활하게 인력을 공급하여왔다. 그동안 기술교육원은 비진학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1년간 현장기술 교육을 연마해 산업계에 진출하는 역할을 했으나 최근 고등학생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서비스업 선호에 따른 제조업 기피현상으로 교육대상을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전환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내년부터는 커리큘럼을 4차산업에 부응하는 과정으로 개편하여 대학교 졸업반의 취업희망자를 대상으로 교육훈련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남해는 언제까지 거주했나? 친인척은 남해에 거주하나
“남해해성중·고를 졸업하고 곧 바로 서울로 상경하였다. 그러니까 남해에서 20년, 객지에서 남해생활 20년의 두 배를 살았다. 고향에는 어머니가 홀로 계신다. 서울에서 거리가 멀다는 핑계로 자주는 못 가고 있다. 하지만 명절이나 가족행사, 휴가 때는 틈틈이 방문하여 향수를 달래고 있다. 부모님 품속 같은 내 고향 남해는 언제나 가슴 설레는 곳이다. 퇴임 후에 서울생활을 이어갈지 남해로 내려갈지 고민하고 있다.”

▲남해에 대한 추억은
“남해 추억은 오로지 학교 다니고 농사일을 돕는 게 전부인 것 같다. 일상이 너무나 단조롭고 반복된 생활이었다. 그 당시 또래들은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창시절에는 공부보다는 공차고 놀고, 방과 후에는 풀베기, 나무하기, 철따라 농사일 돕기가 전부인 것 같다.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학생의 여유로움은 부족했던 것 같다. 학창시절에 걸어서 용문사로 소풍 갈 때가 가끔 생각난다.”

▲남해발전의 제언 한말씀
“남해의 발전을 위해 농수산업, 제조업, 관광업 등 다방면의 발전방안을 기대하며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또한 남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남해를 다녀온 주변 사람은 남해의 경관에 감탄을 한다. 특히 따뜻한 남국의 이국적인 정취는 감탄의 연발이다. 하지만 대부분 남해방문은 인접 도시방문이나 우연한 기회로 방문하고 있다. 전국민이 남해를 인식하는 독특한 랜드마크 개발을 군민들이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항상 남해의 발전을 응원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또 한 명의 자랑스러운 남해인을 찾아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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