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 (주)대유디앤씨 대표이사
김정민 (주)대유디앤씨 대표이사
  • 윤혜원 기자
  • 승인 2021.04.02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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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건설 임원 퇴직 후 토목전문건설업체 창업
신뢰의 리더십으로 사업 확장… 사내에서 ‘장갑차’ 로 통해
“성공하려면 오너는 직원들의 구원투수가 되어야”

김정민 ㈜대유디앤씨 대표이사는 그동안 취재를 요청할 때마다 매번 시간이 없어서 성사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3월에 방문해 달라는 답이 왔다. 지난 22일 경기도 하남시 하남테크노밸리에 위치한 ㈜대유디앤씨로 김 대표를 찾아갔다.

김 대표는 경주김씨 경순왕 36세손으로 다초초(26회), 이동중(25회), 남해고(12회)를 졸업했다. 학사장교로 입대해 중위로 제대한 후 삼성건설에서 30년 동안 일하며 상무이사로 은퇴하여 2년의 공백기를 가졌다. 퇴직 후의 6개월 바뀐 환경은 “질곡의 강을 건너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조금 안정이 된 후 고개를 돌려보니 비로소 자신의 위치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내와 딸의 배려와 함께 이 시기를 재충전의 기회로 삼았다. 그는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 격려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가족이 용기를 주었기에 목표로 하는 일에 모든 노력을 쏟아붓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삼성건설에서 갈고 닦은 기술로 승부를 보기로 하고, 토목 전문건설업체 (주)대유디앤씨를 창업했다. 창업은 했지만 재무, 회계 등 회사경영에 필요한 것은 백지상태였다. 다시 운동화끈을 조여 매고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유디앤씨는 토목공사, 부대토목, 택지개발을 주업으로 하는 전문건설업체다. 이제 창업한지 4년이 지났다. 가족 같은 직원 30여명과 일용직 300여명이 일하고 있다. 연 매출은 300억원 정도다. 규모는 작지만 강한 기업이 되고자 한다. 식견과 엄격함의 조화로 신뢰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대유디앤씨는 직원 및 일용직 일꾼을 못 구할 정도로 일이 많다. 사업이 확장되는 데에는 “최소한 정년까지는 직원들이 실직 없이 평생직장처럼 일하도록 하는 게 성장의 원동력인 것 같다. 행운이란 100% 노력한 뒤에 남는 것이다. 가장 바쁜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가진다는 말처럼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패기와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준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김 대표는 ‘장갑차’로 통한다. 강한 리더십으로 모든 일을 장갑차처럼 한 치의 착오도 없이 밀고 나가기 때문이다. 고객의 신뢰에 앞서 내부에서 직원들의 신뢰를 받고 있으니 사업에 거칠 것이 없다.

김 대표는 “오너는 직원을 통제하는 역할보다는 구원투수의 자세가 필요하다. 직원은 자신이 실수하여도 우리의 대표가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신뢰를 가져야 한다. 즉 존경받는 기업을 추구하여야 하고, 존중 문화부터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나에게 ‘장갑차’란 별칭을 지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톨스토이의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현재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란 경구를 자주 인용하며 인생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

김 대표는 회사에서 외국인 근로자는 쓰지 않는다. 그는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의 건설현장에 외국인 노동자가 불법으로 취업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나라는 정부의 정책실패와 관리감독의 부재로 건설현장이 외국인 불법노동자에게 점거되다시피 했다. 이로 인해 내국인의 취업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1년에 10조원이 넘는 현금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알아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은 1, 2차 산업으로 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즈음처럼 코로나19로 일자리 찾기가 힘든 상황에서 건설업 현장의 외국인 노동자 취업은 매우 엄격하게 다뤄져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김 대표가 극도로 싫어하는 것은 무임승차다. 자신의 역할은 하지 않으면서 조직과 사회의 성과에 묻어가는 것이다. 그는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을 자주 인용한다. 백범 선생은 항상 스스로 남보다 고위직에 앉으려 하지 않으셨고, 늘 겸양의 정신으로 일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정신은 선생의 “우리는 머리가 되려고 하지 말고 발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씀에서 잘 드러난다. 김 대표는 “예전에는 직장생활에서 학연과 지연으로 무임승차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용납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위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을 위해서 일해야 하고, 비록 덜 중요한 일이더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정성을 다해서 하면 인정을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에게 기업가로서 남해군의 발전방향에 대해 물었다. 그는 세 가지로 나누어 답했다. 첫째, 마을별로 테마를 잡아서 걷고 싶고 가보고 싶은 동네로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팝나무 마을, 복숭아 언덕마을 등 중장기적 계획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둘째, 귀농보다는 귀촌으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맞춰 은퇴자와 목가적이고 프로방스한 시골생활 추구자들의 귀향·귀촌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지역별·마을별 특색있는 문화의 구축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신혼여행지로 개발 홍보할 수 있는 마을을 발굴해서 혜택을 주고, 오토 캠핑장도 특색있게 꾸밀 수 있다. 한려수도와 연계해서 마을을 개발하고, 마을별 품평회를 열어 특화할 수 있다. 여기에는 마을주민들의 리더십 구축과 구체적인 플랜 수립, 추진동력 확보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터뷰 내내 김 대표의 애국심과 투철한 기업가 정신, 추진력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해인의 긍지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김 대표를 만나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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