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동안 자동차와 더불어 살아온 정달옥(82) 향우를 성남시 분당구 야탑역에서 만났다. 40년생인데도 건강하고 빛나는 눈빛에서 강직한 인품과 신뢰성이 돋보였다. 정 향우는 남해읍 심천리에서 고(故) 정용술·윤상점 부모님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큰형 정영희씨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제7대 재경남해군향우회 회장을 역임했다.

정달옥 향우는 남해초, 남해중, 해동고,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복무했다. 의무복무가 3년이었지만 월남전에 2년 파병되었다가 총 5년을 복무하고 제대했다. 제대 후 현대자동차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뛰어난 판단력과 열정으로 현대자동차에서 정비부품 부장, 품질본부장, 국내외 정비본부장, 해외사업수출 본부장, 미국판매법인 사장, 아산공장 건설부터 생산까지 맡아 책임지는 초대 공장장을 3년반 하였고, 부사장으로 울산공장겸 생산본부장 등 30년을 몸담았다. 이후 한일이화(자동차 부품공장) 사장대표이사로 1년반 근무하다가 현대자동차에 재입사하여 기아자동차 중국공장 중국합작법인(둥펑웨다기아) 총경리로 3년 동안 일했다. 지금은 KB오토시스 감사로 있으며, 47년을 자동차 업계에서 일했다. 반평생을 자동차에 몸 바친 셈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티브잡스는 매 순간마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해 활용하는 습관을 가졌으며 일의 우선순위를 정한다고 하는데 정 향우도 그렇다. 그는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 일을 메모하고 근면‧성실함은 물론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목표를 두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올바른 선택을 한다고 말한다.

그가 현대자동차에서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눈부신 활약이 전국에 알려져 2003년에 KBS 신화창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은 신화적인 성공스토리를 가진 인물을 발굴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항상 직원들에게 “고객의 요구와 만족을 먼저 생각하고 품질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일인일기의 전문기술로 국가에 기여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정 향우는 “자동차와 더불어 살아온 47년 동안 내가 살아가고자 한 목표는 분명히 계향충만(향기가득함)과 본체청정(깨끗함)의 삶이었지만 과연 내 주변 사람들이 그런 평가를 할지도 궁금하다. 신입사원에서 출발하여 경영자가 되기까지 오랜 기간 여러 사회조직에도 있었고 누구나 경험하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 시기와 수모, 오해와 편견 등을 경험했지만 그러면서도 때로는 환희와 보람, 만족과 축복 등이 어우러질 때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열정있는 지혜로운 상사, 좌절하지 않고 용기있는 책임자가 되려고 노력하며 달려온 세월이었다. 정말 그리운 세월이면서도 잊고 싶은 세월이 있었다. 나를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절망을 희망으로, 두려움을 용기로 충전해주고 또 자녀들을 위해 나의 몫까지 다해준 영원한 동반자 이춘강 아내에게도 감사하다”고 회고했다.

그는 2009년 12월에 268페이지에 달하는 <그리운 세월 잊고싶은 세월>이란 제목으로 평소에 꾸준히 메모한 수필형식의 글과 편지, 연설문 등을 모아 책으로 출간했다.

단양관광호텔 이환성 회장은 “정달옥 사장은 남해인중에 대기업인 현대자동차 정주영 회장의 동생 일명 포니 정의 신임을 받은 선배로서 남해인들중 지금도 자동차부품사업을 하는 향우들께 많은 도움을 주었고, 현대건설의 김 희(고현)선배는 정주영 회장의 신임을 받는등 남해현대아파트 공사때 도움주었고 우리나라 산업계의 한획을 긋는데 중요한 역할은 한 고향 분들이다”고 말했다.

효진(주) 김종포 회장은 “정달옥 사장은 열정과 소명의식으로 바른 행동을 실천하며 모범을 보이는 지혜로운 분이다. 논리적이고 맺고 끊음이 분명한 성품이며 현대자동차의 품질 기반경영을

세계적인 수준에 올려놓은 대한민국 자동차업계의 숨은 공로자이며 인재이시다. 현대그룹 정세영 회장이 무척 아끼던 분이셨다. 오늘의 현대자동차가 있기까지 선구자이요, 1등 공신이다. 기본을 철저하게 지키는 훌륭한 분이라 제가 제일 존경하는 선배님이시다”고 말했다.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어떤 사람은 위대하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자기 노력으로 위대해지고, 또 어떤 사람은 강제로 떠밀려 위대해진다”고 말한 대목 가운데 자기 노력으로 위대해진 사람을 말하라고 하면 바로 정 향우를 생각할 정도로 그는 노력형이다. 정 향우는 “자기가 하고 싶다고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성공 작품을 선택하여 연구개발 하는 것, 그리고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하지 말고 단 하나라도 정확하게 하여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을 기업가정신으로 꼽는다.

정 향우는 세계에서 제일 큰 나라 미국과 중국에서 영업과 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할 때 현지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여 정말 행복했고 보람있었다고 한다. 그는 준비를 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고 믿는다. 정 향우는 “준비를 잘하는 사람은 꼭 기회가 온다. 만약 내가 사전에 준비되지 않았으면 사장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일상생활에서도 기회는 늘 오고 가지만 이런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 사람들은 늘 기회를 놓치면서 후회를 한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 같은 준비의 결과로 그는 현대자동차에서 신화를 썼고, 47년 동안 대통령표창과 현대그룹 회장 표창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어려움 없었느냐는 질문에 정 향우는 “현대자동차에 입사하여 위기가 3번 있었는데 1970년대에 2번, 1980년초에 1번 있었다. 월급도 받지 못할 정도였는데 남해인의 긍지로 위기를 기회로 삼고 극복했기에 오늘의 현대자동차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KB오토시스 감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중국 장쑤(江蘇)성 옌청(鹽城)시에서 지난 2002~2004년까지 약 3년 간 기아자동차 현지법인인 둥펑웨다기아(東風悅達起亞) 총경리를 역임하며 상전벽해와 같은 옌청시의 변화를 직접 목도했다. 그는 옌청시 경제발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옌청시 정치협상 명예위원, 장쑤(江蘇)성 우수노동자로 선정된 바 있다. 공장건설 초기 3년 사이 옌청시는 눈부신 발전의 기초를 이뤄냈다. 이처럼 옌청시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룬 데에는 사실 기아차 중국 현지법인인 둥펑웨다기아의 공로가 절대적으로 크다.
기업가로써의 남해군의 발전 방향을 물었더니 “남해에는 조선소나 화력발전소 등 사업체를 유치해야 하는데 친환경 문제로 반대하였기에 이제는 관광사업과 먹거리 특산품을 잘 이용해야 한

 

다. 각 읍면에 특색있는 음식점이 들어서야 하며 섬과 섬을 이어 섬에서 가족들이 캠프를 즐길 수 있는 가족 단위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요트사업 등 다양한 관광사업을 펼쳐 젊은이들이 모이도록 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부산 출신의 이춘강씨와 결혼해 1남 2녀를 두었다. 장남 정익중씨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장녀 정혜경씨는 미국에서 석사학위와 이화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건국대 교수(시각영상디자인)로 있으며, 막내딸 정재희씨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다.
정 향우를 취재하고 나오면서 또 한 사람의 자랑스러운 남해인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 흐뭇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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