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남 석부산 향우
채 남 석
부산 향우

올해 설날은 가족도 상봉 못하는, 단군 역사 이래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코로나의 괴력은 하나님, 부처님보다 훨씬 세서 모두가 멍멍할 뿐이다. 우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 났는지.

어릴적 우리 남해에서는 설날 세배 다닌 것을 ‘과시하러 다닌다’ 했다. 웃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면 “과시 모시 편히 세웠는가. 올해는 명(命)이란 복(福)이랑 많이 받거라” 덕담을 하시고 쌈지속에 세뱃돈 한닢 꺼내 주셨다. 아마 요즘은 이런 설날 덕담을 듣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   

과세(過歲)는 ‘설을 쇠다’라는 말이고 ‘설쇠다’는 말을 ‘설을 맞이하여 지내다’라는 뜻이다. 모세(募歲)는 ‘한해의 마지막 무렵’이라는 말로서 “지난 한해 마무리 잘 하고 설을 맞이하여 조상께 차례 잘 지냈는가”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수명(壽命)이 짧고 먹고 살기 힘든 시대라서 “명(命)이랑 복(福)이랑 많이 받아라”는 말씀이 최고의 덕담이었다. 
어릴적에 뜻도 모르고 듣던 과시(과세), 모시(모세)라는 남해말이 생각나서 몇자 적어 본다. 
세상(世上)을 ‘시상’이라고 ‘세’를 ‘시’로 말하는 방언인 것이다.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절 일년중 유일하게 새 옷과 고무신 사오길 기대하며 장에 갔다오는 어머님의 짐보퉁이를 마냥 기대하며 설날이 몇밤 남았는지 손꼽아 기다리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집안 곳곳에 불을 밝히고 잠들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고, 오는 졸음과 씨름하다가 어느새 스르르 잠들었고 바람 좋은 뒷등에서 겨울 창공을 마음대로 휘저었던 참연이나 가오리연들의 멋진 비행 실력들, 딱나무 껍질로 만든 팽이채를 물 묻혀가며 힘차게 휘둘렸고 손바닥만한 통나무 반 쪼개 굵은 철사 한줄 박고 양쪽에 잔못들 촘촘히 박아 고무줄 걸어 꽁꽁 얼어붙은 포강(저수지)이나 강논을 누비던 스케이트의 질주들, 설날이면 점빵(가게)에 걸려 있는 뽑기 풍선의 가운데 일등짜리 제일 큰 기다란 색동 부는 것(풍선)은 어찌 그리도 크게 보이던지, 그 풍선을 바라보며 코묻은 세뱃돈 만지작거리던 유년의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집안 형제들이 모두 같이 모여서 골목이 메워지도록 어울려 다니며 웃어른들에게 새배 다닌 시절이 그리울 뿐이다. 
모두가 힘든 코로나 세상, 그래도 서로가 힘모아 참고 견디면 서로 반갑게 만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어본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이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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