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마음의 뒤란에 품고 있는 것들을 세상에 내어놓아야 할 때이다. 내 마지막 보루가 ‘글을 쓸 수 있는 자유’이기에. 
이 구절은 ‘다랭이마을 작가’로 소개되는 게 가장 큰 기쁨이라는 김희자 수필가가 낸 세 번째 수필집인 ‘바람의 지문’ 중 ‘포란’이란 작품의 말미 문구다. 김희자 수필가가 부디 고향 남해에 남아서 문학의 나무를 심어주기를 바랐던 숱한 소망들이 이제야 결실 맺은 듯하다.

가천 다랭이마을 고향집에 홀로 계신 노모를 모시면서 유년시절을 보낸 이곳을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머물며 갈 수 있는 ‘북스테이’ 공간으로 하나씩 꾸며가면서 우리가 사랑한 남해만의 것들을 지켜가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것. 

꿈꾸는 나무 김희자 …다랭이마을 풍경을 들이다
삶의 주무대였던 대구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고향인 가천 다랭이마을에 들어와 어머니를 모시며 글쓰기에 천착해 살기로 마음을 굳힌 순간부터 칠흑 같은 고요와 고독에도 외려 마음이 평온해지더라는 김희자 작가. 그는 모든 문학인의 꿈이자 명예인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의 2021년도 수혜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총 1125명의 작가가 지원해 그중 80명, 80명 중에서도 수필은 단 10명에게만 창작기금이 돌아가는데 그 영예를 안아 올 한 해 집필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김희자 작가는 “저는 오롯이 글로써 ‘꿈꾸는 나무’가 되고 싶었는데, 그걸 사랑하는 고향에서 이루라고 창작기금을 준 것만 같아 정말 감사하다”며 “창작기금 지원 당시 다랭이마을에 얽힌 사물과 풍경, 과거와 현재, 남겨진 것과 사라지는 것, 그 터를 지켜가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온 주민의 얼과 한을 담은 수필과 사진을 엮어내겠노라 밝혔는데 제 진심을 응원받은 것 같아 크다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이어 “고향에서 병든 어머니를 지키고, 마을의 장애인을 돌보면서 틈틈이 글을 쓰며 사는 삶이 가치로운 삶이겠구나 하는 제 결심을 남편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이 동의해주고 지지해줘 가능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아버지가 지은 고향집, 찬찬히 살려내어 ‘책과 머무는 집’으로
‘책이 있는 집’. 목수셨던 아버지가 손수 지은 이 집에서 지난 2019년도 11월 수필집 ‘바람의 지문’ 출판기념회를 하기도 했다. 당시 대구의 문인들 대다수는 ‘이곳이 김희자 작가의 생가’인데 아무것도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손수 그린 그림과 이름을 쓴 나무 문패를 만들어 선물로 걸어주고 가기도 했다고. 

친정 식구들의 동의를 구해 금융권의 도움을 받아 명의이전을 한 고향집은 우선 급한대로 지붕 개량부터 시작하고 형편 되는대로 차근차근히 해나가면서 궁극엔 ‘김희자 작가표 북스테이’를 하고자 하는 게 소망이다.

“다랭이마을에 좋은 민박집이 많아요. 거기에 제가 보태려는 건 아니고, 그저 저처럼 글쓰기 좋아하고 책 읽기 좋아하는 문인 혹은 지망생이 책과 더불어 찬찬히 머물다 갈 수 있는 방 한 칸을 비워두고 싶은 게 소박한 바람이죠”라며 “문학 하는 사람은 본디 가난하잖아요. 저 또한 그래요. 부지런히 ‘돌봄’ 일을 하면서 형편 닿는 대로 하나씩 고쳐 나가야죠. 여긴 군불 지피던 장작도 그대로고 아버지가 쓰던 옛 농기구도 다 그대로 있어요. 저기 절구에다 ‘연당’처럼 꽃을 피워내고 싶은 꿈도 있어요. 저 더 부지런해야겠죠?”라며 소녀처럼 웃어 보인다. 

올해 아흔이 된 어머니의 하루 세 번 식사를 차려드리기 위해 2019년 12월 이후 지금까지 남해대교를 건넌 적이 없다는 그녀의 지극정성의 효심은 과연 어디서 연유한 걸까. 그이의 절절한 효심과 문학을 사랑하는 순수한 애정이 절묘하게 닮아있었다.

2021년도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은 김희자 수필가가 고향 다랭이마을에 온전히 정착해 다랭이마을 원고 집필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소치섬이 보이는 지겟길 따라 산책하는 그 자체가 문학기행, 마을기행이다. 김희자 작가는 아름다운 풍경 곳곳에 걸리는 전선이 옥의 티라며 안타깝다고 말했다.
2021년도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은 김희자 수필가가 고향 다랭이마을에 온전히 정착해 다랭이마을 원고 집필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소치섬이 보이는 지겟길 따라 산책하는 그 자체가 문학기행, 마을기행이다. 김희자 작가는 아름다운 풍경 곳곳에 걸리는 전선이 옥의 티라며 안타깝다고 말했다.

‘꽃등’과 ‘꽃길’…다랭이마을의 진정한 맛을 알리고파
유년시절 학교 가던 길, 이제는 폐교(옛 가천초등학교)가 된 학교건물 주변으로 살구나무꽃이 피어올라 ‘꽃등’을 만들고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자연의 소리를 듣는 즐거움에 절로 감탄이 난다는 다랭이마을 지겟길은 그 자체로 ‘꽃길’인 셈이다. 
현재 개인소유로 별다른 활용이 되고 있지 않은 옛 모교 건물이, 꽃등으로 빛이 나는 그 공간이 안타까워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김희자 작가는 그래도 마음을 다독인다. 
“이렇게 고향에 터를 잡고 소치섬이 보이는 이곳에서 글을 쓰며 살 수 있게 된 지금이야말로 제겐 꽃길 같아요. 이 길도 가고 저 길도 가면서 일하며 쓰며, 다시 고민하다가 이제야 인생의 ‘꽃길’을 만난 게 아닌가 싶어 문득문득 감사 하다”며 “이곳에 뼈를 묻기로 한 이상 다랭이마을에 작으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그저 마을로 쓱 걸어와 사진 몇 장 찍고 다리 아프다며 스쳐 가는 곳이 아닌 문화재청마저도 반한 명승 제15호인 이 마을의 참맛을 알게 해주고 싶다. 설흘산을 가자 시면 몸소 설흘산 안내를 해 줄 것이고, 바다가 주는 선물, 이웃 간의 정, 나무와 바위 등 다랭이마을이 지닌 생명의 입김을 아낌없이 전하는 사람으로 남겠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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