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과 이신환성(以身換性)
3·1절과 이신환성(以身換性)
  • 남해신문
  • 승인 2021.03.0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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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맞이한 3·1절. 전 국민이 하나 되어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그 함성이 여전히 귓전에 맴도는 듯합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3·1절이지만 이 거국적 운동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아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은 우연히 일어났다기보다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함께 이를 이행하기 위한 높은 정신력이 바탕이 됐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듯 1910년부터 서울 강북구 우이동 봉황각에서 전국의 지도자 483명이 모여 7차례 49일 수련을 함으로써 그 불씨가 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수련의 목적이 이신환성(以身換性)이었습니다. 즉 몸을 성령으로 바꿀 정도의 초개와 같은 심정으로, 육신의 고통은 물론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을 강한 정신력을 기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거사를 앞둔 신념은 보통의 마음이 아닌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 최고의 정신력이 바탕이 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굴의 정신을 바탕으로 은밀한 자금 모금 및 조달, 각 지방에 독립선언서 인쇄를 위한 등사기 보급, 지방 선각자의 적극적 참여와 내밀한 홍보가 함께 어우러졌기에 전 국민이 하나가 된 동시다발의 만세 운동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 이신환성(以身換性)입니다. 이신환성은 몸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넘어 성령의 힘으로 자신을 새롭게 다지는 것입니다. 육신의 관념을 넘어 정신력이 최고조에 달하였을 때 마음으로서는 어떤 두려움마저 넘어설 잠재된 역량이 도출될 것이요, 성령으로서는 생사마저 초월한 정신작용이라는 점에서 그 의기가 더욱더 분분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올해 맞이한 3·1절은 과거의 자취를 담아보는 시간 못지않게 우리가 터득해야 할 가치를 이신환성에 두고 그 의미를 반영해보도록 노력해 보면 어떨까요. 더 낮추어 더 높을 곳을 보며, 비어서 더 충만하게 하고, 나눔으로써 더 채울 수 있는 이신환성이야말로 우리가 본받고 지켜내야 할 3·1절의 유훈이듯이 말입니다. 이신환성은 멀게만 느껴질 엄청난 경지인 것 같아도 사실 인간의 내면에 가장 가깝게 드리워져 있는 순수 성령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순수 성령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는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 전개를 위한 일곱 차례의 49일 수련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필자가 몇 년 전 우연히 당시 제1차 49일 수련을 마치고 찍은 선열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흑백 사진이긴 하였으나 안광(眼光)의 정도는 물론이고 위풍당당한 모습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선각자의 집념이 실린 사진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우리의 가슴에 동화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당시 나라가 위기에 처한 암울함을 극복하며 민족의 자긍심을 살리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어찌 당시의 일로만 국한할 수 있겠습니까? 선열들의 숨결이 나의 숨결이요 그들의 비장함이 또한 나의 비장함이거늘 이 사이인들 어찌 거리가 있으리오. 이제 가고 또 돌아오는 이치에서 하나의 작용으로 합일되어 오늘 우리에게 부여되고 3·1 독립 만세 운동의 근간이 되었던 이신환성과 성령의 힘을 우리가 어떻게 재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조명해봅니다. 

우리가 성령이라 하면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는 듯하고 평범한 사람은 간직할 수 없는 비범한 자태라고 인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령은 특별한 사람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누구나 간직한 순수 마음이 최고의 경지에 이른 자리입니다. 우리는 이를 인지하고 있지만, 이러한 현상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그 실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성령에 이르러서야 참다운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면 오히려 이를 배양하도록 정성을 다하는 것이 살아가는 또 한 방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생각을 정화하는 능력, 물욕에 집착하지 않는 절제된 마음, 욕망과 분노를 다스리는 노력 등을 통하여 성령을 키우고 배양할 수 있다면 또 그 힘이 주변을 밝게 할 청신호가 된다면 우리는 이를 실행하는 데 주저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힘에는 두 가지 양상이 있습니다. 하나는 power이고 또 하나는 force입니다. 이것은 다 같은 힘이기는 하나 전자는 자연발생적인 힘이요 후자는 인위가 가미된 힘이라는 점에서 힘의 양상이 양분됩니다. 이를 일러 데이비드 호킨스는 성인과 범인의 수직적 지평에서 수치를 바탕으로 힘의 가능성을 점지하였습니다. 성인의 수치를 7백 이상, 도덕적으로 취약한 사람의 수치를 150 이하로 책정, 그사이에 이룰 단계적 성찰은 개인에게 부여된 힘의 성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천명하였습니다. 이는 개인의 차이도 별다른 묘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힘의 안배를 통하여 성쇠의 운수를 가름할 수 있기에 한순간에 다지는 순수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일러주고 있습니다. 

이를 헤아려보면 생각하나 잘못 가짐으로써 도덕적으로 취약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이러한 사람도 어떤 계기가 되어 순수의 힘을 기를 수 있다면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자들은 이것이 가능할까 라고 반문하겠지만. 하지만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선각자의 일언(一言)을 참고하지 않더라도 순수의 힘으로 기적을 연출한 사례는 적지 않게 우리를 감동에 젖어 들게 합니다. 이러한 의미들을 유추해보면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의 시초가 된 순수의 힘이 비폭력, 대통합의 원칙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러한 연결을 가능케 한 이신환성의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그 의미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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