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임에도 따스한 햇볕이 나무 전체를 감쌀 즈음입니다. 눈 아래 보일 듯 말듯 한 키 작은 나무가 이렇게 외칩니다. “아이고! 우리 같이 키 작은 나무는 물은 고사하고 햇빛마저 충분히 받을 수 없으니 큰 잎을 가진 나무야! 햇빛이 비칠 즈음이면 그 넓적한 잎이라도 흔들거려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들의 심정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처럼 절규하듯 외칠까요. 아마 그들은 성장하는 데 필요한 햇빛과 수분 등을 주변의 키 큰 나무들로 인해 받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2월은 생명 모두가 겨우내 부족했던 양분을 보충할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춘삼월에 피어날 새 생명에게 돌아갈 양식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간에 제대로 된 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 심경인들 오죽하겠습니까? 거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 그들 역시 예민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필자가 2월을 주목하는 것도 이처럼 새 생명을 태동하기 위한 노력이 절정에 이른 시기라는 점입니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은 오늘도 쉼 없이 수분을 저장하고 가지와 줄기, 잎과 뿌리를 관통하며 또 한 생명을 태동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입니다. 뿌리는 양분을 저장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할 것이고, 가지나 줄기는 각종 애벌레와 잡다한 곰팡이나 균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 전략을 구축할 것입니다. 또한, 이웃한 나무는 물론이고 풀, 물, 이슬, 바람, 새, 해와 달 그리고 별과도 조우하면서 협업 상생의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동안 그들이 감내해야 할 내공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생명을 보존하는 노정에 충실히 하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생명에는 마음이 있다는 원리에서 입자와 파동의 원리에 따라 성장 역시 궤를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에서 생명의 시원(始原)으로서 물 입자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물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는 하나 우리가 느껴야 할 수심(水心)에 대해서는 그다지 높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명의 실상에서 비록 작은 물방울일지라도 입자와 파동이 안정적이라면 어떤 작물일지라도 건강하게 자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수심의 비전이 얼마나 크고 심오한지 그 의미를 감히 유추해 보기조차 어려울 정도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 낙수(上善若水)는 물로서 터득할 지혜로서 그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러주고 있습니다. 직언하여 보면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 자기를 내세우지 아니하며(後其身), 자기를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비속(卑俗)한 데까지 즐겨 가면서도(處衆人之所惡) 만물과 다투지 않으며, 바위가 있으면 점잖게 비켜 갈 뿐이요, 또 가는 곳마다 만물을 이롭게 하고(水善利萬物) 만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면서도 부여할 대상을 소유하지 않으며, 자기를 낮추기 때문에 오히려 높아지고, 모든 것이 되어 가도록 하면서도 권위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며(作焉而不辭 生而不有), 만물이 되도록 해주면서도 거기에 기대거나 의뢰치 않고(爲而不恃),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 자체를 초탈해버리고 그 속에 안주하려고 하지 않으니 그럼으로써 오히려 영원해지며(功成而不居 夫唯不居 是以不居), 높은 것은 깎아내고 낮은 것은 메우는 작용 등을 통하여 억지로 자신의 모습을 규정하지도 않고 억지로 자신의 흐름을 거스르려 하지 않는 물의 속성을 비유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실상에서 물은 성분으로서만이 아니라 도덕으로서도 우리가 담아내야 할 높은 수준의 가치요 비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할에 비추어본다면 생명수로서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주변에 형성되는 영롱하고 맑은 물 입자는 온 생명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이런 가정에서 우리의 마음 씀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뭇 생명을 상하게 하는 마음이나 분노에 찬 마음을 지닐 때 주변에 얼마나 유해한 환경이 조성되는지를 말입니다. 절단하고 죽이고 상하게 하고 굴하게 하고 분노에 찬 기세를 지니기만 해도 숲 전체가 이를 공유합니다. 

나무를 예로 든다면 당연히 그 나무는 성장에 지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나무의 생태에 이상이 생기고 나뭇잎을 통하여 수분이 증발하는 과정에서 장애가 발생하면 자연이 순환하는 현상 역시 많은 장애를 유발하게 됩니다. 만약 심신에 이상이 생겨 수분 증발을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면 나무 위의 하늘에 구름이 형성되지 않고 구름이 형성되지 않으니 비를 내릴 수 없고 비가 내리지 않으니 가뭄이 계속되어 사람은 물론 자연 생명에게도 적절한 물을 공급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본질은 마음을 잘못 먹는 순간 지구 전체 생명이 영향을 받는 그러한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으로서는 나무에 힘이 되어줄 선한 기운과 좋은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것이 동시대 생명을 건강하게 키울 책무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춘삼월 호시절에 잉태할 생명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한다면 말입니다. 입자나 에너지와의 교류 차원에서 가는 것은 반드시 다시 돌아오고 오는 것은 다시 돌아가는 이치에서 내 마음으로 형성된 작용은 무엇 하나 분리됨이 없이 내게로 다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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