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 두 현
시인 고 두 현

얼마를 기다려야

안개 걷히고 맑은 비 올까.
지난 봄 담장 아래 꼭꼭 밟아 묻었던
흰 씀바귀꽃 뿌리 딛고 간다 또 한 철
무심한 바람 풀어 춤추는 성진아
소나무 가지 곁에 쑥빛 하늘 받쳐들면
밤에도 너울너울 눈부시던 팔선녀
소매 끝동으로 불이 붙는데
뭍에도 그리운 꽃 잉걸잉걸 타오르며
개나리 진달래 지천으로 번지는데
꿈길 깊어 돌아오지 못하는 그대
잠 깨지 말아라 잠깨지 마
세상 연기 다 몰려들어 앞뒤로 숨막히고
눈물 징하게 쓰려와도
빈 골짜기 혼자 누워 귀 닫고 눈도 닫고
청솔잎 꽃히는 소리 푸르게 견디다 보면
그대 넓디넓은 꿈속 바다
보이지 않던가 꿈틀거릴 때마다
깊은 산 한 채식 지었다 뉘었다
이토록 뉘우침도 없이
쉽게 짙어오는 노을을 보면
진실로 돌아오지 못하는건 그대만이
아니네 저 물 속 깊은 길
밤마다 어둠 흔들며 눈 못뜨는 슬픔
깨우던 그대 잠깨지 말아라 잠
쏟아지는 꽃잎 위로 발등만 뜨거워 구만리 장천
떠돌던 꿈들 소매 끝 팽팽하게 바람받으며
칠흑 봄 바다 헤쳐온다

작가 약력 ㅣ 
1963년 남해 상주 출생,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문화부장 역임
현)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2005년 제10회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수상
시집 <남해, 바다를 걷다>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 <고두현의 황금 서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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