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가족 모두 건강하세요”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올 가을 추석에는 안 괜찮아지겠나. 백신도 나왔다고 하니까”. 설날 외지에 사는 동생이 어머님과 고향을 찾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 통화한 내용이다. 이번 설날에도 지난번 추석과 같이 가족들 얼굴을 보지 못해 아쉽다고 하는 것이다. 1년에 한두 번 보는 고향과 어머님 그리고 가족을 보지 못하는 진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코로나19로 1년 가까이 외지에서는 고향을, 고향에서는 손주를 포함한 가족 얼굴을 못 보고 남해 사람 치고 외지에 가족이 없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다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19가 우리네 삶의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아쉬움은 가족이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고유명절 ‘설’은 만남이다. 생명을 주신 부모님과 만남이고, 나를 있게 한 고향과의 만남이다. 
설날은 조상도 생각하고 웃어른들께 세배도 드리며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게 전통이다. 
핵가족 시대에 와서도 명절이나 가족 기념일이면 어김없이 모여 혈연의 정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명절은 지루한 일상을 뛰어넘는 저마다의 그리움과 향수를 치유하고 새로운 활력을 주는 마법 같은 날이 된다. 그런데도 지난 추석과 이번 설날에도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되고 가족들이 모이는 것이 불법이 되는 세상이 올 줄은 다들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어린 시절, 설날 하면 딱 두 가지가 떠올랐다. 세뱃돈과 떡국이다. 어른이 되면 뭐 그리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았던지, 그땐 하루빨리 어른이 되는 게 소원이었다. 어린 시절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는 말에 오매불망 기다렸던 설날의 설렘은 사실 나이를 더 먹어서가 아닌 순전히 설에 받는 세뱃돈에 있었다. 떡국과 함께 고대하던 나이도 먹고 덤으로 세뱃돈까지 받을 수 있었으니, 설날은 그야말로 최고의 명절이었다. 세뱃돈 수입을 예상하고 세배할 어른들의 수와 대략의 수입을 가늠하며 한껏 기대를 부풀렸던 시절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설날은 설레지 않은 날이 된 지 오래 지만 뉴스에서 차례상을 준비하는 것을 보며 어릴 적 어머님들과 현대에 와서도 매년 계속되는 안사람들의 힘든 명절일정이 생각이 난다. 어렸던 그 시절 다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우리의 어머님들은 적은 돈을 쪼개어 이것저것 구색을 갖추려 머리를 짜내 차례상을 차렸다. 당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았지만 가족들에게는 가끔 새 옷과 양말을 사입혔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에 파묻혀 허리를 펴지 못하고 차례를 마치고 친척들이 하나둘 떠난 뒤에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 그릇들을 치우느라 고생했을 남해의 어머님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설에는 흩어졌던 식구들이 함께 떡국도 먹고 세배도 하며 덕담을 나누어야 제 맛이지만 서울 사는 친구와 통화하면서 들은 이야기로는 3ㆍ40대 젊은 층들 사이에선 귀향 자제를 오히려 반기며 “명절 때마다 차 막히고 오가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솔직히 잘 됐다 하는 반응”으로 은근히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음식 준비로 고생하는 며느리, 결혼과 취업 잔소리에 스트레스받는 청춘들, 시댁과 처가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갈등 등 그런 측면에서 코로나 같은 복병이 어쩌면 해방군 역할을 할지도 모르고, 이 기회에 설 문화도 조금은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믐날 남해읍 대목 시장은 옛날 설날 장날과 별 차이 없다고 느낄 정도의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동네마다 주차할 장소를 찾지 못할 정도였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찾는 남해사람 특유의 가족 사랑이 아닌가 생각된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이번 설날 명절에는 귀향객이 줄고 온 가족이 다 모일 수 없었다 해도, 올 추석에는 모두의 바람대로 고향의 부모님과 가족을 마음 놓고 뵐 수 있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