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려면 나를 버려야 한다
나를 보려면 나를 버려야 한다
  • 남해신문
  • 승인 2021.02.0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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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려면 나를 버려야 한다,”이 말을 듣는 순간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아연실색할 것입니다. 아니 나를 보려고 나를 버리다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오히려 “이 바쁜 세상에 언제 나를 돌아볼 기회가 있겠는가? 먹고 살기도 바쁜데 내가 나이면 어떻고 나 아니면 어떤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어느 측면에서 보면 물질 일변도의 세상에서 진실한 나를 보기 위해 또 한쪽의 나를 버린다는 논리를 이해하지 못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로서의 나, 처음도 끝도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로 끝날 그 중심에서의 나, 진화의 한 축에서 우주를 아름답게 할 역할로서의 나의 존재감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위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이처럼 위대한 자신의 실체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본래 성품을 망각한 체 거짓 자아가 마치 자신의 전부인 양 호도하여 안으로 불량하고 겉으로 꾸며대는 이탈된 심리로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세상은 날로 진화해 가고 있고 Al 시대, 제4·5차 산업혁명, 그리고 바이러스 대유행의 시대에 자신의 존재를 살리고 영혼을 밝히는 일이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말입니다. 현상적으로 보아도 나를 이루는 요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영혼의 중심축이 될 몸과 마음을 본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입니다. 더욱 진화하여 나아가는 과학 문명의 기술력에 비례하여 본래의 순수성을 회복하고 인간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은 영적 시대를 여는 분기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흐름에서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당연히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 영혼을 순화시키는 작업입니다. 그동안 우리의 삶이 물질 위주로 편성됨으로써 놓쳐버린 정신을 되살리고 이로써 파생된 심신의 피로도를 재점검하는 것입니다. 어떤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욕망이나 욕심에 찌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며, 겉으로 포장된 화려함에 솔깃하지는 않았는지, 거만하여 신망을 잃었거나 또는 거짓으로 사람을 현혹하게 하여 불신을 자아내게 하지는 않았는지. 자연을 훼손하고 상하게 하였거나 욕망과 욕심에 젖어 뭇사람에게 피해를 준 일은 없었는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산업화 이후 전개된 대량생산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곁에서 사라져 버린 나의 나 됨의 가치와 그 존엄성을 다시 살려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이미 자신에게 잠재되어있는 본래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이 혼돈의 세상을 극복할 일생일대의 과제임을 상기하면서 말입니다. 

영혼을 밝히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수많은 인연과의 만남을 통하여 나의 나됨을 올곧게 정립하게 되었는지, 내가 나됨의 요건에 충실할 철학과 비전은 무엇이었으며 또 이를 잘 실현하고 있는지, 대인관계의 원칙은 무엇이며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원리에서 가는 것은 돌아오고 오는 것은 다시 돌아간다는 순화된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마음으로 뭇 생명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허상에 쫓기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하여 내가 나 아닌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면 앞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점검하고 또 점검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철학자 켄 윌버는 몸은 몸 밖의 어떤 대상(자연이나 인위적인 구조물)과 구분되는 관계에서 몸을 세분화하여 보면 살덩어리와 뼈와 핏줄과 신경 덩어리로 연결된 고체 덩어리인데 이것이 과연 나를 증명할 실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든지 실체를 말할 때는 외형보다는 그 내면에 잠재된 순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명상이나 수련을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이를 통하여 모든 생각이나 감정을 넘어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순수 본연의 고요를 맛보는 것입니다. 이 고요를 이루는 입자는 형상도 없고 자취도 없고 위도 없고 아래도 없으며 무게도 없는 그러면서도 어디에 간섭하지 않음이 없고 명령하지 않은 무한의 능력 그 자체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에게 잠재된 이 능력을 찾아 회복하고 재생하여야 할 때입니다. 
나의 본래를 찾는 작업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터이지만 이미 물질화된 세상에서 이를 재생하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를 고찰한다면 반드시 찾아야 할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라는 구호도 본래의 내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있으면 있는 것이고 내가 없으면 어느 것도 있을 수 없듯이 자신의 실체를 찾지 못했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실체라도 만났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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