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남해에서는 개관일인 5일부터 27일까지, 박범주 작가의 <나 그기 있다> 전시회가 열린다. 회화, 영상, 소리, 설치작품을 통해 일상의 것들을 시공간으로 확장하거나 부분으로 고정하는 시·지각에 대한 전시다. 이번 전시는 있는 그대로의 바다, 늘 한결같은 나무 등을 매개로 작가의 시선이 담긴 30여점의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순간 그대로이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거대하면서도 부분으로 아름다운 한 그루의 나무를 수십조각으로 구성한 회화작품부터, 촉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설치작품까지 작가의 다양한 관점을 보여준다. 

총 세 개의 장(章)으로 나뉘어 전개되는 그의 전시는 세 개의 이야기가 담긴 한 권의 책처럼 구성된다. 첫번째 장, ‘그기’는 그곳이라는 뜻의 ‘거기’라는 단어에 작가만의 특별한, 그러면서도 우리네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만한 의미를 담아 ‘그기’라 읽고, 표현한다. 박범주 작가는 “내가 어느날 일을 마치고 집에 왔다. 들어와선 소파에 앉아 리모콘을 들고 의미 없이 채널을 돌리고 있는 나를 보며 내가 집에서 가치가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곳이 과연 내가 있을 곳인가? 나는 그기(그 곳)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 곳이 숲으로 변하고, 그 창문 너머에 남해바다가 펼쳐지고 파도소리가 들리고… 나는 숨을 쉰다. 장소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가 아니라, ‘그기’로 가는 것이다. 그런 전환을 설치와 영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두번째 장은 ‘나’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나는 동물이지만, 동물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걸 강아지로 표현했다. 강아지 형상으로 만든 설치물이 안개꽃으로 뒤덮일거다. 동물이지만 식물적 동물인 나, 중간에 있는 나라는 정체성이다. 긴 인류역사에서 남성의 역할은 사냥을 하고 전쟁을 치르는 등 동물적이고 공격적인 것이었다. 21세기에는 더 이상 그런 남성은 필요하지 않다. 동물이 아닌 식물적 남성, 나는 그런 사람이길 원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세번째 장, ‘있다’에서는 늘 변하면서도 한결같은 나무를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시선을 따라간 20여점의 한국화 작품이 나무가 되어 존재한다. 작가의 눈이 움직일 때, 작가가 보는 방식에 따라 시점도 달라지므로 하나의 나무지만, 그 나무는 계속 변한다. 하나의 나무를 보고 있지만 그 곳에는 수백개의 시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자각을 통해 지금, 나는 살아있다고 느낀다. 

박범주 작가는 “우리는 백년도 살지 못하는데, 나무는 몇백년, 몇천년을 살아간다. 모두 다른 시간과 색감의, 21개의 장면으로 하나의 큰 나무를 표현했다. 찰나이지만 모두 다 다른 느낌을 담아보고자 했다”며, “이번 전시인 <나 그기 있다>가 이렇게 세 장의 이야기로 완성이 될 것이다. 이건 나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현대사회에서의 존재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뮤지엄남해 한상화 학예사는 “이번 개관 전시 <나 그기 있다>는 어쩌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 느끼지 못했던 ‘자신, 일상, 의미’에 대해 작가의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결과물들이 나만의 감수성을 깨우는 경이로운 순간을 선물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나의 존재 이유를, 내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범주 작가는 남해군 설천면 출신으로, 건축을 전공한 뒤 건축가로, 때론 무대미술가로, 설치미술가로 전국 각지에서 그만의 공간을 설계하고 표현해왔다. 고향인 남해는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떠나왔지만, 타향에서도 남해신문을 통해 고향 소식을 접해왔다고 한다. 성인이 된 후 긴 시간을 건축가라는 직업인으로 살아 왔지만, 중3때 학교에 낸 생활기록부의 ‘장래희망’ 난에는 ‘작가’라고 적혀있었다고.

“남은 수십년 생애 동안은 작가라는 정체성에 더 집중하지 않을까 싶다. 출발을 새로 하는 전시회, 그게 이번 <나 그기 있다>가 될 것 같다. 내 작품이 나와, 다른 이들과의 소중한 매개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누군가와 인연을 이어나가기 위한 애씀이 내 작업의 좋은 자양분이 될 것 같다. 앞으로도 자유로운 작품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작품에서 건축적인, 무대같은 느낌이 나지 않나? 그게 바로 나니까. 누가 뭐래도 이게 나다. 실내를 꾸미는 예술가였기에 그 어떤 건축적인 느낌이라는 표현도 내겐 찬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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