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공장에서 김건임 대표와 유보선 부장이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작공장에서 김건임 대표와 유보선 부장이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삼동면 봉화리의 한 주택 마당에서 현장 제작이 진행되고 있다. 도로가 좁아 크레인 등 장비가 진입하기 어려운 경우, 현장에서 용접부터 마감까지 이틀이면 완성된다
삼동면 봉화리의 한 주택 마당에서 현장 제작이 진행되고 있다. 도로가 좁아 크레인 등 장비가 진입하기 어려운 경우, 현장에서 용접부터 마감까지 이틀이면 완성된다

고현 농공단지에 위치한 남해컨테이너의 제작 공장에서 만난 김건임 대표는 두툼한 군복패턴의 스즈끼 작업복을 입고 공장과 사무실을 오가고 있었다. 코로나19가 한창 퍼져나가던 지난 해 5월, 김 대표는 남해컨테이너를 인수하고 어느 때보다 불황과 제재가 심했던 그 해에 오히려 실적을 올리고 사업의 규모를 키웠다. 컨테이너뿐 아니라 부동산과 건축업까지 병행하며 매일이 정신없이 바쁘다는, 그러면서도 일이 너무 재미있다는 김 대표와 마주앉아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친한 언니와 수다 떨 듯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중성적인 이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컨테이너 제작업체 대표’라는 직함 때문이었을까. 김 대표가 올해 39세의 여성임을 알았을 때, 단편적 정보로 누군가를 섣불리 예상하는 실수를 저질렀음에 아차 싶었지만 그럼에도 물었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지역과 건설업계에서, 젊은 여성으로서 공장을 운영한다는 것의 체감적 온도가 과연 어떠한지.
김 대표는 “사실 플러스요인이 더 많다. 설명할 수 있으니까, 싸울 일도 안 싸우게 된다. 문제가 생겨도 고객 쪽에서 먼저 유해지시는 경우도 있다. 수도권은 컨테이너 사업 대표 중 여성이 훨씬 많다고 한다. 또 저는 예쁜 거 좋아한다. 컨테이너에서의 심미적 요소 구현이 쉽지 않지만, 그런 디테일과 마감이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해읍 출신으로 남해초, 남해여중, 제일고를 졸업한 김건임 대표는 현재 남해컨테이너와 남해제일부동산, 제일건축토목까지 세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한 김 대표는 졸업 후 설계사무소에서 박봉과 밤샘업무에 시달리다 공인중개사 쪽으로 눈을 돌렸다. 부동산 일을 하다 보니 건축 수요가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길로 건축회사까지 차리게 되었다고. 
“외갓집 사람들이 죄다 건축쟁이들이다. 외삼촌들이 목조, 콘크리트, 토목 등을 하시고 외할아버지가 보루꾸공장을 하셨는데, 공장일이 그렇게 재밌었다. 아예 공장으로 하교해서 일을 구경하고 도왔다. 어른들 하는 일이 내겐 선망이었고 가치로웠다. 살아있다는 느낌. 친구랑 노는 것보다 공장 가서 일손 돕는 게 취미고 놀이였다”는 김 대표.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재능이 ‘즐기는’ 재능이라는데, 어릴 때부터 일이 재밌었다는 김 대표가 사무실을 뛰쳐나와 사업의 길을 개척한 것은 아마도 필연이었으리라.

컨테이너의 뛰어난 가성비에 반해 무급인턴에서 시작, 인수제안 받다
남해컨테이너는 김 대표가 가장 최근에 시작한 사업이다. 원래 작은 규모의 건축은 취급하지 않았는데, 친척 어른이 입금과 동시에 의뢰를 하시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알아보다가 남해컨테이너를 알게 되었고, 자재와 시공 퀄리티에 비해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게 컨테이너라고? 대체 뭐지? 완전 신세계였다. 당시 사장님한테 무급으로라도 일 좀 시켜달라고 그랬다. 용접부터 인테리어 마감까지, 하나하나가 너무 신기해서 집중해서 관찰했다. 빠른 공정, 모든 게 도면화되어있는 효율적인 시스템, 트렌드에 맞는 모듈러건축, 사업 실적까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컨테이너가 저렴한 건 공기가 짧고 큰 장비가 필요하지 않아서이지 결코 완성도가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깔끔한 마감에 내진설계까지 되는 컨테이너를 왜 이제까지 몰랐을까. 사장님한테 내 건축회사랑 콜라보를 제안했는데, 며칠 후 남해컨테이너의 인수 제안이 들어왔다. 결정하고, 운영을 시작하기까지는 일사천리였다. 내가 좀 불도저같이 밀고 나가는 게 있다”는 김 대표는, 같은 맥락에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했다.
그는 “우리 컨테이너의 자부심은 용접이다. CO₂용접과 올용접기술로 보강면에서 다른 업체와 분명하게 차별화된다. 이걸 할 줄 아는 기술자가 정말 드문데, 그 중에서도 실력자이신 우리 회사 유보선 부장님을 모실 수 있었던 건 천운이었다. 사람 한명으로 공장이 정말 달라졌다”며, 이분을 스카우트하는 데 남해의 아름다운 자연과 낚시가 큰 몫을 했다고 덧붙인다. 물론 거기에 김 대표의 신념과 삼고초려의 설득이 있었음은 당연하다.
남해가 좋아 가능하다면 평생 여기서 사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김 대표는 “아무래도 여긴 인맥이 중요하다. 부모님은 물론 조부모님 이름까지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더 퀄리티에 목숨을 걸게 된다”고 말했다.

선택 후엔 후벼 파는 집중력 필요 자랑스러운 남해 기업 만들겠다
김 대표는 경영자에게 필요한 역량으로 무엇보다 ‘끈기’와 ‘집중력’을 꼽았다. “일단 하기로 했으면 포기하지 말고 후벼파야 한다. 고정되면 끝이다. 저는 남들 보면 기겁할 일을 일상처럼 하는데, 그런 변화로 성장이 이뤄지는 게 즐겁다”며, “특히 대표는 일의 처음과 끝을 다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상황판단도 빠르고, 고객에게도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김 대표에게서 수주부터 시공까지 일의 전 과정을 직접 할 줄 알고, 끊임없는 푸쉬로 성취를 이뤄낸 경험들이 축적된 이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목표는 남해컨테이너를 공신력있는 지역브랜드로 성장시키는 일이라고 한다. 김 대표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퀄리티, 건축 전공인이 만드는 컨테이너. 그 자부심을 담아 남해가 자랑스러워 할 만한 컨테이너 회사로 만들고 싶다. 컨테이너와 건축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 접점을 찾아내 절묘하게 조합할 수 있다면 그게 프로라고 생각한다. 여기는 진짜 전문가다, 그런 소리를 듣는 게 꿈이다”고 말했다.
자재값 상승과 고정 수요층이 없어 컨테이너 사업은 시작부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남해를 ‘버려질 수 없는 특별한 곳’이라 여기며 이곳에서 사업을 성장시키고 싶다는 김 대표가 제품에 담는 특별한 가치를 많은 고객들이 발견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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