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도 저물어가는 12월입니다. 보통 이맘때쯤이면 지난날을 돌아보며 회한의 심정을 달래기도 합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전과 위생이 강조된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목숨이 경각에 달한 엄정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람 간에 접촉이 멀어지고 인간의 정마저 사라진 듯하니 비감 회심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린다고 하여도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고조된 위기에 대비하는 마음가짐 또한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생각을 정하는 것은 마음을 여는 첫걸음입니다. 그것은 육신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정신으로서의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한 생각이 일어남에 만물이 소생하고 그 생각이 소멸하니 만물 또한 침묵 속에 잠깁니다. 

하지만 겉이 그렇게 보일지라도 그 속성을 보면 오직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한 생명의 실상, 비록 그 의미를 언어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 내밀한 정서를 이해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실상은 밖이 아니라 내면으로 향하여 있어 그 실상에 도달하려면 엄정한 자기 성찰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실상을 하나로 드리울 즈음 이때 적용되는 말이 ‘한 생각 바꾸면’ 입니다. 이전의 생각과 이후의 생각 교차점에서 생각을 바꾸는 일 이것이 실상을 만나게 될 가장 극적인 순간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생각의 선명성입니다. 생각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그 진의가 드리워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을 자신의 사유라 착각하며 수많은 사념(思念)을 끊임없이 방사하고 있습니다. 망상과 허상에서부터 비판과 불평, 불만, 분노 등의 사념이 생각 전체에 불신이라는 늪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미워 죽겠다든지, 저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든지 하는 생각을 여과 없이 내뱉습니다. 

누구도 내 생각을 알 수 없고 볼 수도 없으니 누구를 비판한들 보이지 않으니 알 수 있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으로 죄를 짓는 것이 가장 무서운 죄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정(正)과 사(私)가 있습니다. 정은 바르게 보고 나누어 보면서 건전함을 담는 것이요 사는 한쪽으로 치우쳐 편협되게 가지는 것입니다. 바르게 생각하고 그러한 생각을 다시 나누어 보고 합하여 봄으로써 생각의 선명성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우리가 내 생각이 틀림없다, 내 생각이 맞다라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을 모으려 한다면 한층 아름다운 이야기나 감동적인 장면, 더 넓은 세계를 담아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생각이 반드시 맞다라는 관점이 변하지 않고 어떻게 다른 사람이나 세상과 소통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명성을 이끌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 자기 생각을 부정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정이라 하여 생각을 함부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을 통하여 오히려 더욱 선명해지는 계기를 마련해보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잘못된 일을 두고 그 원인을 ‘내 탓이다’, ‘아니다’ 라고 여김으로써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지닌 한 생각이 이러한 잠재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렇다면 생각에 깃든 부정적 부산물을 그대로 둔 채 한 해를 보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생각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인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긍정으로 생각을 모으면 긍정적인 일들이 연계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할 생각의 성분이 곧 입자입니다. 이 입자는 형태가 드러나지 않으니 있다고도 할 수 없지만, 그러나 움직임이 있으니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활발한 생명력은 어느 곳이든 간섭하지 않음이 없고, 명령하지 않음이 없을 정도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만져볼 수도 없는 이 생각 입자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은 물론 우주 전체의 운명마저 궤를 달리합니다. 

이제 우리는 해가 바뀌더라도 또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지금까지 여겨왔던 세계가 아닌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이러한 여정에서 우리가 외쳐야 할 구호가 바로 생각을 바꾸는 일입니다. 생각을 바꿀 때라야 비로소 선명성의 길로 접어들었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빈도에서 선명성을 이끌기 위해 가장 용기 있는 결단을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약 가족 간에, 형제간에, 직장 동료나 친구 혹은 이웃 간에 갈등이 있었다면 이 해가 가기 전에 한 생각 바꾸어 먼저 화해의 뜻을 전하여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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