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1차 대전, 연합군과 독일군이 서부전선 수천킬로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겨울비가 무릎까지 차 오른 참호엔 시체가 뒹굴고, 쥐가 들끓고 있는 벨기에 지역의 영국군 진지에 어느 날 저녁,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랫소리가 맞은편 독일군 참호에서 들려오자 영국군은 ‘앙코르’를 외치며 갈채를 보내고 급기야 양 진영은 협상까지 하는데 “크리스마스이브 하루 동안 휴전” 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고 한다. 수십만이 숨진 참혹한 전선에도 마법처럼 성탄절이 찾아와 양쪽 병사들은 완충지대에 널린 시신들을 함께 거둬 장례를 치루고 담배와 음식을 나누고 축구시합까지 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는 꽁꽁 언 전쟁터도 녹이고 잃어버린 순수를 사람들 마음속에 되살리고 정직한 삶 을 다짐하며, 낮고 어둡고 누추한 곳을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올해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는 유난히 스산하고 삭막하기만 하다. 7500만명 가까이 발병해 160만명 이상이 세상을 뜰 정도로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린 2020년의 우울한 세상이어서인지, 올해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가 사라진 것 같다. 기독교 신자 여부와 관계없이 설날과 같은 그리고 매년 거리마다 울려 퍼지던 캐롤까지 들리지 않는 영 분위기가 나지 않고 설레지도 들썩 거리지도 않는다. 분위기라는 것은 시각, 청각의 자극을 뇌에서 해석해서 ‘분위기가 난다’라고 느끼고 표현 하는데 그런 자극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그 전과는 다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다. 

영국, 미국, 캐나다 등 백신 접종이 시작된 나라에서는 이번 크리스마스가 새로운 희망이 움트는 날이 될 듯하다. 90세의 영국 할머니가 지난 8일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
미국·영국·캐나다·EU(유럽연합)를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과 일부 중동·중남미 국가를 포함해 이르면 이달 안으로 30여 국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코로나 백신 접종이 이뤄질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4400만명분 백신 물량을 확보했고, 내년 2~3월이면 초기 물량이 들어와 접종을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셀트리온의 코로나19 치료제도 내년 초부터 상용화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와 이웃 시군의 사태가 심상치 않다. 확진 후 사흘 동안 집에서 대기하던 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고 고열로 병원 분만실 출입을 거부당한 임신부가 3시간 동안 여러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결국 사산하는 일이 발생하는 등, 의료시스템 붕괴 직전까지 온 것이다. 

이렇게 상황이 위중한데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두고 소모임 예약이 급증한다는 얘기에 우려가 된다. 대다수 국민이 코로나 확산세를 막기 위해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고, 일상의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개개인의 호응이 중요하다. 거리두기를 지키는 것이 자신은 물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지키는 길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내가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 그리고 이웃·동료들과 함께하던 풍경은 마치 전혀 다른 세계의 풍경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자 우리의 소중한 동반자들은 늘 곁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일 년 내내 방역에 협조만 하다가 자영업 자체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자영업자들을 포함한 어려운 이웃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크고 유난히 각박한 만큼 올해의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인연과 이웃에 대한 소중함이 우리 마음 안에서 더 단단해져 가는 듯하다.

2020년 올해를 되짚어 보니 하루하루 불안 속에 지낸 기억밖에 없는 것 같은데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며 내년은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한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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