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여성회 김정화 회장이 일본군 위안부 故 박숙이 할머니의 생전 모습과 숙이나래문화제 등 다양한 사진, 기록물을 엮어 사진책 ‘할머니를 부탁해’를 발간했다. 이 책의 발간을 위해 남해교육지원청에서 후원했다. 남해교육지원청 안진수 교육장은 책 ‘할머니를 부탁해’를 지난 10일 미조초 정순자 교장에게 전달, 이를 시작으로 관내 초ㆍ중ㆍ고 모두 보내고 교육자료로 활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많은 것들이 사라져가는 12월의 겨울, 코로나19라는 몹쓸 바이러스 공포가 퍼진 2020년의 겨울은 더욱 스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잊지 말아 달라는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남해여성회 회원들의 피땀 눈물로 제작된 한 권의 사진책,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故 박숙이 할머니의 생전 활동과 숙이나래문화제 등이 성실히 기록돼 있는 사진책 ‘할머니를 부탁해’ 출간 소식을 듣고서였다. 인간에게 있어 마지막 죽음이란 어쩌면 기억하는 사람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은 상태가 아닐는지. 이를 역치해 보면 누군가 기억해준다면 그건 살아 있음이리라. 지난 14일, 고 박숙이 할머니와 여전히 함께 부대끼며 그녀의 피맺힌 절규를 개인의 몫으로 두지 않고 소외받는 이들과 연대하며 공공의 기억으로 사회적 행동으로 실천해가고자 애쓰는 남해여성회 김정화 회장을 만났다. <편집자 주>  

▲故 박숙이 할머니 관련, 세 번째 책이다=박숙이 할머니께서는 학생들에게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알려 왜곡된 역사부터 바로 잡아가길 바라셨고 그 하나로 본인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두길 원하셨다. 다행히 살아생전인 2014년도에 첫 권을 내 드렸더니 참 좋아하셨다. 2권은 할머니 돌아가신 뒤 흑백으로 냈다. 이번이 3권인데 고맙게도 남해교육지원청에서 학생들 교육자료로 사용하고 싶다고 출판을 맡겨주셔서 1·2권 내용을 종합해 ‘할머니를 부탁해’ 사진책을 내게 되었다. 학교 현장에서 소중한 교육자료로 사용되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박숙이 할머니께서 2015년 12월 6일, 95세의 일기로 영면하셨다. 이 책 작업뿐 아니라 올해 2월에는 ‘일본군 성노예(위안부)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 생애사 연구’라는 제목의 석사학위논문도 낼 정도로 할머니의 삶, 나아가 핍박받은 약자의 삶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다=사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바로 알리는 운동은 여성 혹은 약자 인권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며, 전쟁 중에 일어난 성범죄문제이기에 우리에게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제 개인적으로도 박숙이 할머니를 만난 후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해 애쓰는 마창진 시민연대 이경희 회장 등, 다양한 사람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세상과 그들로 인한 감동은 그 이전의 ‘앎’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세계였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 박숙이 할머니의 삶의 자취는 그대로 마음을 타고 들어왔다. 여성가족부에 등록돼 있는 일본군위안부 240명 중 현재 생존자는 불과 16명, 평균연령은 92세다. 앞으로 5~6년 안에 다 돌아가실 것으로 슬프게도 예측된다. 그렇다면 이제는 위안부 할머니들 없이 이 해결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풀어내야 할 ‘포스트 할머니 시대’가 오는 것이다. 이 할머니들이야말로 역사의 증거이자 기록인데 이들이 버젓이 두 눈 뜨고 살아 있어도 철저히 부정해오는 역사 왜곡의 현실속에서 이분들마저 다 돌아가시고 나면 대체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가 늘 괴로운 문제로 아프게 다가온다. 그 절박함이 ‘기록’으로 이어졌고 열악한 자생단체인 남해여성회 속의 약자를 향한 연대를 지향하는 여성회 회원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결코 이어나가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사진책 작업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은=사진이라는 생생한 자료를 정리하는 게 주된 일이다 보니 할머니 관련 추억이 특히 많았다. 또 전 세계 8개국 15개 시민단체가 모여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 만든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2744건 중에 남해 박숙이 할머니 관련 기록물도 1건 있다. 바로 2013년 5월 함께한 대학생 인권캠프 사진이었다. 그 기록을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또 청소년 실천단의 헌신, 수요집회 등 다양한 현장이 떠올랐다. 

▲박숙이 할머니 사진책이 나왔다고 할 때 주변의 반응은 어떠했는지=간혹 ‘할머니 돌아가신 지가 언젠데 아직도 뭘 하나?’하는 시각으로 대하는 이를 보면 마음이 쓰렸다. 일반인들이 생존자 없는 시대를 바라보는 이 차가운 인식이 할머니의 죽음 자체보다 더 슬프게 다가온다. 기억에서 행동으로 이어가기 위해 할머니 돌아가신 후 2017년부터는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을 맞이해 ‘숙이나래 문화제’를 매년 8월에 열고 있는데 이 또한 한 조각이라도 더 이어가기 위한 발걸음이다. 

▲유독 고마운 분들이 많겠다=가장 고마운 건 60여명의 여성회 회원들이다. 할머니 생전에는 방문사업을 통한 심리 정서 안정사업, 청소년 실천단 교육, 박숙이 할머니 증언기록사업, 일본군 위안부 해설사 양성사업 등을 진행해 왔다. 다음으로 우리 남해군 청소년들이다. 할머니 돌아가시던 그해, 할머니 생신 때 청소년 실천단 학생들이 할머니를 찾아뵙고 큰절을 올리는데 정말 눈물났다. 끝으로 전국의 활동가와 경남의 활동가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이들이 든든히 버텨주어 그 결에 나도 함께 걸을 수 있었다. 감사하다. 끝으로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게 가장 작은 실천이다. 바래갔다가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16살의 그 소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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