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대장경 판각문화제와 옛 문헌에 나오는 산닥나무
첫 번째 대장경 판각문화제와 옛 문헌에 나오는 산닥나무
  • 남해신문
  • 승인 2020.12.1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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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닥나무 식수 행사를 마치고
개관을 앞두고 있는 대장경판각문화센터. 앞쪽에 식수한 산닥나무 묘목이 보인다
개관을 앞두고 있는 대장경판각문화센터. 앞쪽에 식수한 산닥나무 묘목이 보인다
화방사에 있는 산닥나무 자생지
화방사에 있는 산닥나무 자생지
임 종 욱 고려대장경판각성지보존회 사무국장
임 종 욱
고려대장경판각성지보존회 사무국장

2020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올해는 유독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해로 기억될 듯하다. 작년 겨울부터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의 충격이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고, 생업부터 행사까지 모든 영역에서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인내와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이겨낼 밖에, 다른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내가 사무국장으로 있는 고려대장경판각성지보존회도 올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남해가 대장경 판각의 현장이었음을 알리는 ‘대장경 판각문화제’ 등 다양한 행사가 도비와 군비의 지원을 받아 펼쳐졌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으로 진행하거나 소수 인원만 참여해 성과가 흡족하지는 않지만, 국회에서 사흘 동안 판각시연과 인경체험 행사를 여는 등 나름대로 알찬 열매를 거두었다.

특히 올해는 긴 공정 끝에 고현면에 ‘대장경판각문화센터’가 개관을 앞두고 있다. 건물이 제 모습을 갖춘다면 남해가 대장경 판각의 중심지였음을 인식시키는 데 긴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얼마 전 센터 앞마당에서는 뜻 있는 행사가 열렸다. 대장경을 인경(印經)할 때 쓰인 종이의 중요한 원료였던 산닥나무 묘목을 식수하는 일이었다. 고문헌에서 ‘왜저(倭楮)’ 또는 ‘화산저(和山楮, 또는 和楮)’란 이름으로 소개되는 산닥나무는 질기면서도 품질을 좋은 종이를 만드는 데 적합한 재료로 알려져 있다. 산닥나무는 일본에서 유입된 외래종으로 알려졌지만, 언제 유입되었는지 뚜렷한 역사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산닥나무의 효용과 가치를 알려주는 흥미로운 기록은 더러 보인다.
그 중 몇 예화를 살펴 역사 속에 나타난 산닥나무의 존재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의 반계수록(磻溪隨錄)이 있다. 권3 <전제후록(田制後錄)> 상(上) 재식편(栽植篇)에 나온다.
‘우리나라의 닥나무는 종이를 만드는 데 적당하다. 다만 재질이 무겁고 터럭이 일어나, 산닥나무가 가볍고 윤기가 나며 정치한 데는 미치지 못한다. 평소 인쇄한 서책으로 지금도 전해지는 것은 대개 산닥나무로 종이를 만들었다. 지극히 귀중한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조종조에서 이 품종을 가져와 번식시키려 노력해 지금 남쪽 해안지역에서 더러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널리 심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을마다 모두 씨앗을 뿌리게 해서 널리 심도록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만 이런 일은 설득해야지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라에서 책을 만드는 종이에 일정 분량을 넣도록 하고 값을 후하게 매겨 거래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이와 같이 한다면 인쇄하는 서책도 질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널리 심어 기르게 될 것이다.’

我國之楮 亦宜於造紙. 然重且起毛 不如倭楮之輕澤精緻. 平時所印書冊 今或有遺傳者 多是倭楮造紙. 極是可寶 今漸絶無矣. 嘗聞祖宗朝往取其種 欲使蕃植 今南方海濱往往有之 而人不知廣植. 令列邑邑皆種之 而勸諭人民使之廣植可也. 此則但諭民廣植而不必罰贖. 宜於國家恒入冊紙內量定其數 優其價而貿之. 如此則非唯所印書冊精緻 久之自然興植矣.

이 글에서 유형원은 산닥나무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이 품종이 사라진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또 과거에 인쇄한 서책에는 산닥나무가 섞인 종이가 쓰여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파종하도록 권해 좋은 값으로 사들이면 널리 심게 될 것이란 방안도 제시했다.
산닥나무로 만든 종이는 유형원 이전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허균(許筠, 1569~1618)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稿)권24 <설부(說部)>3 성옹식소록(惺翁識小錄) 하(下)에 보면 산닥나무가 등장하는 재미난 일화가 나온다. ‘욕심 없던 황과 왕 두 조사(黃王二詔使之不貪)’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중형[許篈]이 일찍이 말했다. “황·왕 두 조사는 몸가짐이 아주 엄격했다. 주상이 지필묵을 하사했지만, 모두 받지 않았다. 하루는 대궐 안에 있는, 산닥나무 종이로 찍은 이백집과 두시한 질씩을 나누어 주었는데, 규양이 펴보고는 차마 손에서 놓지 못했다. 사람을 보내 부사도 받았는지 물어보니 돌려주었다고 하자 ‘자기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아, 어디서 이런 사람을 다시 보겠는가.”

仲兄嘗言黃 王二詔使持己極嚴. 上以紙筆墨饋之 俱不受. 一日 以內藏倭楮紙 李白集杜詩各一部分贈之 葵陽展玩之 不忍釋手. 令人問副使受之否 曰却之也 亦不敢受. 嗚呼 安得見斯人哉.
산닥나무 종이로 만든 서책의 품질이 얼마나 좋았는지 평소 욕심을 부리지 않던 사람조차 탐을 냈다는 이야기다.

‘규양’은 명나라 때 사람 황홍헌(黃洪憲, 1541~1600)의 호다. 조선에 사신을 온 적이 있는데, 조선국기(朝鮮國紀)라는 기록을 남겼다.
좀 더 내려가 윤근수(尹根壽, 1537∼1616)가 쓴 월정만필(月汀漫筆)에는 이런 일화가 보인다.
인산군(仁山君) 홍윤성(洪允成, 1425∼1475)이 춘추감으로 있을 때 시정기를 읽게 되었다. 거기에 자신의 죄악이 요란하게 쓰인 것을 보고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산닥나무로 찍은 강목[주희(朱熹)가 쓴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뜻 보지 않는데, 하물며 동국통감이겠느냐? 너희들 마음대로 써라. 누가 동국의 역사를 보려하겠느냐?”

洪仁山允成 監春秋見時政記. 書已罪惡狼藉 憤曰倭楮綱目 我國人亦不肯覽 何況東國通鑑乎. 任汝書之. 誰肯見東國史乎.

홍윤성은 세종 때부터 성종 때까지 산 사람이다. 썩 행실이 좋았던 사람은 아니었는데, 자신의 악행을 낱낱이 고발한 글을 읽게 되었다. 그는 성질이 사나워 권세를 얻자 남을 능멸했고, 심지어 노비를 풀어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처벌을 내려야 했지만, 세조는 그가 정난(靖難)의 공신이라는 이유로 책망만 했다고 한다.
위 글에서 그가 굳이 산닥나무 종이로 찍은 강목을 거론한 것은 책의 권위도 권위지만, 종이의 품질도 함께 추켜세운 셈이 된다.
산닥나무는 최고의 종이 원료라 대대로 일본으로부터 종묘(種苗)가 수입되었다고 하지만,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산닥나무는 등장한다. 세종 12년(1430) 8월 29일조에 “예조에 전지하기를, 대마도에 사람을 보내 종이를 만들 산닥나무를 구해오라. (傳旨禮曹 遣人于對馬島 求得造冊紙倭楮以來)”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이 무렵 벌써 산닥나무의 존재와 품질은 인정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실록에는 산닥나무에 대한 기록이 세종 때부터 세조 사이에 여러 건 나온다.

이전에는 우리나라에는 없던 나무를 세종이 갑자기 산닥나무의 명성을 듣고 처음 수입했을 리는 없다. 1430년이면 고려가 망한 지 38년밖에 되지 않았다. 대장경을 두 차례 판각하는 등 목판인쇄기술이 최고 정점에 있었고, 소식(蘇軾)이 고려에는 서책을 팔지 말라고 주장할 만큼 고려는 서적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든 시대도 고려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라면 종이에 대한 인식도 높았을 것이고, 고급 종이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산닥나무가 수입되었을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그런 종이라면 고귀한 대장경을 인경할 때도 당연히 사용되었을 것이다. 현전하는 고려시대 문헌의 종이 성분을 분석해보면 산닥나무가 실제 사용되었는지 여부도 확인될지 모르겠다.

분명 조선시대 때는 산닥나무를 이용해 품질 좋은 종이를 생산했다. 기록상 그 연원이 세종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떤 사람은 신증동국여지승람(중종 25년, 1530년 완성되었다.)에 보면 산닥나무가 조선 때 수입되었다는 기록이 있다는데, 내가 찾아본 바로는 경상도 일원 몇 지역의 토산물로 ‘왜저’가 부기되어 있을 뿐이다. 문헌을 실제로 읽지 않거나 멋대로 읽고 넘겨짚는 일은 위험하다.

대장경 판각의 중심지로 자리했던 화방사에는 산닥나무 자생지가 보존되어 있다. 그 산닥나무가 고려시대 때부터 전해오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활착되면서 토종 닥나무와 교배도 이루어졌으리라. 그렇다고 해도 고급 종이의 원료로서 산닥나무의 위상은 변함이 없다. 자생지가 천연기념물 제152호로 지정되어 있는 만큼 산닥나무를 더욱 많이 재배해 대장경 인경이나 기타 다양한 부가 상품을 만드는 데 활용하면 나름대로 성과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대장경판각성지보존회는 산닥나무를 다량 재배할 첫걸음으로 묘목 식수 행사를 가졌다. 앞으로 화방사와 협조하고 군청의 도움을 받아 품종을 유지하고 개량하는 데 노력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250여 그루의 산닥나무 묘목을 확보해 관리에 들어갔는데, 봄이 되면 좀 더 생장한 산닥나무를 화방사 자생지 일대에 옮겨 심으려고 한다.
지금은 명맥만 전하는 산닥나무를 대량으로 재배해, 이를 원료로 품질 좋은 종이를 만드는 것이 우리 보존회의 목표다. 이런 종이는 책이나 경판을 찍는 데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다양한 파생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지금은 작은 한 소쿠리 흙이지만, 결국에는 큰 산을 이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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