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ㅣ ㈜서융그룹 정정복(설천 감암) 회장
이슈 인터뷰 ㅣ ㈜서융그룹 정정복(설천 감암) 회장
  • 김순영 기자
  • 승인 2020.11.20 11: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등학교 졸업장으로 45세까지 살다 국립대경제학 박사까지
전 부산시 축구협회장, 엄홍길 휴먼부산재단회장으로 사회봉사 활발히 펼쳐
(주)서융그룹 정정복 회장
부산시 축구협회장 시절 정 회장
네팔 학생들과 함께
네팔 학생들과 함께
엄홍길 대장과 함께
엄홍길 대장과 함께

최근 한 시사토크 프로그램 유튜브에서 설천 감암출신 서융그룹 정정복 회장이 초등학교 졸업장으로 법률회사에 근무하고 현재 대학교수까지 역임하게 된 일화를 소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본사 초대 부산지사장, 제21대 부산시축구협회장을 역임했으며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로도 물망에 오르고 있는 정 회장을 만나 솔직담백한 그의 인생스토리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요즘 이슈가 많이 되고 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 향우회 사회에서 활동은 많이 안 했지만 대외활동은 활발하게 하고 있었다. 그동안 준비해 오던 경제학 박사학위를 올 2월에 받았고, 부산시 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해 낙선하면서 공부도 많이 했다. 그동안은 남해에서 부산 올라와 성장하기에 바빠서 부산의 상위층 인맥은 잘 몰랐는데 체육회장 선거를 하면서 상위층 인맥도 많이 형성하고 그들의 생각도 알게 됐고, 많이 배웠다. 사업도 열심히 하고 있으면 사회봉사활동으로 최근 엄홍길휴먼부산재단을 맡아 봉사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 남해신문과의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압니다. 소개 좀 해 주십시오.
= 김두관 현 국회의원이 남해신문 사장으로 있을 때, 남해정론과 통합하고 첫 부산지사장을 맡았다. 당시 광고도 열심히 수주해서 부산에 3500부가 올라왔고 최고 9000부까지 확장했었다. 그때는 90%가 유가독자였다. 또, 남해신문에 해상선박, 선원관련 등으로 기고도 많이 해서 애정이 가는 신문이다. 

△ 재부남해군향우회 제55대 회장 출마가 거론되다가 중간에 포기한 것으로 아는데 당시 심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 같은 고향 향우라면 다소 허물이 있더라도 감싸주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지인의 권유로 군 향우회장 출마를 생각했는데 사업부분과 가정사 부분에서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떠돌아서 적잖이 섭섭했고 많이 안타까웠다. 사업을 하면서 자기 자본만 가지고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이며, 가정사에 대한 유언비어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향우회는 봉사하기 위한 곳인데, 앞으로는 어른스럽지 못하고, 고향사람답지 못한 생각들은 개선되어야 향우사회가 화합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 향우회장이 되기 위해서 면 향우회장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단계 밟기 절차는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나, 역량에 따라 달리 배려해야 능력 있고 좋은 사람들이 향우사회에 많이 들어올 것으로 생각한다. 

△ 영상전문채널에서 45세까지 초등학교 졸업장으로 법률사무소 근무이력이 소개되어 이슈가 되고 계시던데, 그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 저는 넉넉하지 못한 집안 8남매 중 일곱 번째이다. 형제 중에 정상적으로 고등학교까지 공부한 사람은 막내밖에 없었다. 저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14세에 부산으로 와서 공장에서 일을 했다. 1년 후 아버지 손에 이끌려 다시 남해로 내려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친구들은 3학년이 되어 있었다. 선배랍시고, 저보다 나이어린 한 해 선배들의 괴롭힘을 못 견뎌서 자퇴를 하고 집안에서 운영하는 멸치어장에서 20대 초반까지 일했다. 그때 남해에서 새마을청소년회 활동과 범민족올림픽추진지역선도위원(88올림픽)으로 지역봉사 등을 통해 봉사에 대한 눈을 떴다.
그러다 배움에 부족함을 느끼고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서울-대구를 오가며 2년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하루 15시간 공부했다. 그러나 먹는 게 부실하고 해서 건강이 안 좋아져서 다시 남해에 내려와 요양을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부산국제법률사무소(유기준변호사 4선 국회의원, 로버트 할리)에 들어가 일하게 되었고, 사법고시 공부로 익힌 법률지식으로 많은 업무를 소화해 냈다. 특히 고향 남해분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이후 선박관리집행관(압류된 선박을 관리하는)으로 5년 정도 일했으며 그 사이 원양트롤을 5척을 매입해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학력의 부족함을 모르다가 자녀들이 성장해 가고 사업도 기반을 잡아가면서 각종 관공서나 단체에서 회장 등 여러 직책을 맡게 되고 이력서를 쓰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학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맘먹고 2010년 4월 중학교, 그해 8월에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다음해 대학교에 입학, 한국해양대학교일반대학원 경제학 박사까지 받게 되어 현재 겸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 자천타천으로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 솔직한 본인 의견은 어떻습니까?
= 어릴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있었다. 2000년도와 4년 전에 민주당 공천을 권유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는 부족한 학력으로 한창 학교 다닐 때였고, 석·박사 준비와 사업으로도 벅차서 고사를 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다시 권유를 받아 부산남구 갑 지역위원장을 맡아 준비를 하다 부산시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부산에는 대기업이 없는데 스포츠산업을 잘 운영하면 대기업을 운영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부산을 국제적으로 스포츠가 강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안고 부산시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상대후보에 비해 역량이 떨어서 낙선했다.
내년에 예정에 없던 부산시장 선거를 하게 되자 여러 언론들과 주위에서 자천타천으로 권유를 받고 있긴 하다. 저는 경제학박사로 기본적인 경제이론도 알고 사업을 통해 실물경제도 알고 있다. 거기다 강력한 경력마인드와 추진력이 저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부산시장후보로 출마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 그동안 많은 봉사활동을 한 것으로 아는데요, 앞으로 추진할 사업이나 이루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 부산시축구협회장으로 있을 때 15년 만에 A매치유치와 동아시안 컵 유치는 부산을 세계적인 도시로의 광고효과와 도시수준을 올려주는 중요한 상징적인 대회였다. 다른 도시들이 옵션까지 제시하는 등 부산으로 유치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15년 만의 A매치와 부산에서 처음열리는 축구국제대회인 만큼 강력한 의지로 부산에서 두 대회를 유치하고 성공적인 개최의 성과를 거두었다. 
또, 해양대학교에 경제산업학과가 있는데 저처럼 제때 배우지 못 했거나 배움을 중단한 사람들이 다시 학업을 배우는 학과다. 그런데 강의실과 학과공간이 부족해 그 공간 마련을 위해 건물 두 동(10억)을 직접지어 기부했다.
최근에는 엄홍길휴먼부산재단 만들어 네팔지역에 학교건립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엄홍길휴먼재단은 네팔이나 제3세계에 학교를 지어주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현재 17차까지 지어졌거나 지어지고 있고, 제18차는 부산재단이 중심이 되어 건립할 예정이다. 320명이 공부할 수 있는 18학급인데 80%는 부산재단이 부담하고 20%는 네팔 정부가 부담한다. 

△ 끝으로 남해 향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부산에는 많은 남해향우들이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회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정치에 여야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는 남해당이 있다. 같은 지역에서 사람을,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향우들이 서로 합심해서 부족한 점은 지적해서 고쳐나가도록 하고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칭찬하는 분위기 만들었으면 좋겠다. 밖에서는 남해향우회가 잘 된다고 보고 있는데 그것이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 과거에 잘 되어 왔듯이 앞으로도 잘 되도록 향우회에 애정을 가지고, 서로서로 안아주고 격려해 주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저도 고향과 향우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적극 참여할 생각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