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균중화요리로 우리에게 친숙한 하동균씨와 한국철인의 아버지 박기섭 본부장
하동균중화요리로 우리에게 친숙한 하동균씨와 한국철인의 아버지 박기섭 본부장

2004년, 생애 최초로 ‘철인3종경기’의 출발을 눈앞에서 본 적이 있다. 이른 새벽, 어느 순간 길게 울리는 신호와 함께 수백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파도를 가르며 수영해나가던 그 광경은 아직까지도 ‘생애 감동 TOP3’중 하나로 기록된 장면이다. 멀리서 바라만 봐도 진한 인류애를 느끼게 하는 그 철인3종경기가 지난 18일, 남해에서 치러졌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남해 철인3종경기를 주최, 주관하고 있는 한국철인3종경기본부의 박기섭 본부장(54)과, 남해 철인이자 올 여름 제주도에서 ‘태양의 철인’을 완주한 하동균씨(45)를 만났다. <편집자 주>

남해 철인3종경기의 시작점이자 결승점인 지족 해안가의 한 리조트 앞. 정리 중인 대회용 깃발과 배너들이 눈에 띄었다. 박기섭 본부장은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컨테이너 두 동을 가리키며 “이걸 장만했으니 꿈을 거의 다 이뤘다”며 웃었다. 이전까진 대회 물품 넣어둘 데가 없어 집 없는 신세나 마찬가지였다고. 

박 본부장은 한국철인3종경기를 두고 ‘자식’이라며, 그의 ‘찐사랑’ 이야기를 들려줬다. 박 본부장은 91년, 한국에 철인3종 경기를 처음으로 도입한 장본인이다. 청소년 시절부터 육상에 소질을 보이던 그는 87년, 초창기 트라이애슬론 올림픽코스에서 1등을 했다. 3년 후, 박 본부장은 혈혈단신으로 하와이 코나에 가서 아이언맨 월드챔피언십 한국예선전 개최권을 받아낸다. 

박 본부장은 “제가 영어라곤 오케이, 노밖에 못하거든요. 그럼에도 라이센스를 기어이 받아냈어요.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건, 제가 코나 아이언맨 대회에서 인생을 바꿀만한 감동을 받아서예요. 사람들이 하루종일 자리를 뜨지 않고 결승점을 지키고, 이어서 철인들이 결승점을 통과하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더라고요. 그 감동을 우리나라에 가져오고 싶었어요”라며 회상했다.

그렇게 1991년, 박 본부장이 가슴으로 낳은 한국철인3종경기가 첫 막을 올렸다. 27회부터 남해에서 개최되어오고 있는데, 이곳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원래 제주에서 했는데 육지로 끌어올리고 싶었어요. 풀코스를 치를 수 있는 장소를 찾다가, 여기 하동균씨가 남해가 좋다 해서 한번 와봤는데 와, 여기가 진짜 보물섬이었던 거죠. 경기에 참가한 한 철인이 그러더라구요. ‘남해는 철인경기를 위해 만들어놓은 경기장같다’라고요.”

박 본부장이 남해의 환경이 얼마나 완벽한지 아시냐며 감탄을 연발하는 동안, 옆자리의 하동균씨는 “그때부터 이분과의 지긋지긋한 인연이 시작됐다. 진작에 도망갔어야 했는데 붙잡혀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17시간동안 수영 4Km, 사이클 180Km, 마라톤 풀코스를 뛰며 스스로를 극한에 밀어넣고 기어이 이겨내는 철인경기. 이 고행에 가까운 한계 극복을 심지어 즐긴다는 ‘철인’이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철인이라고 하면 막 우악스럽고 그럴 것 같은데 사실 진정한 철인은 내면에 기품이 있어요. 철인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또 아무나 할 수 없기도 해요. 너무 힘든데, 어느 순간 그걸 초월하고, 사점을 한번 뛰어넘으면 이전까지의 고통이 환희의 기쁨으로 바뀝니다. 그걸 체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기품, 그 힘으로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하는게 제가 철인을 하는 이유이고 삶의 모토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하는 하동균씨. 홀로 17시간이라는 긴 터널에서 수없이 사점을 맞닥뜨린 이만이 말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닐까.

하지였던 지난 6월 21일, 일출에 시작해 일몰전까지 완주해야 하는 ‘태양의 철인’에 참가한 하동균씨가 일몰 1분전에 결승점에 들어왔다
하지였던 지난 6월 21일, 일출에 시작해 일몰전까지 완주해야 하는 ‘태양의 철인’에 참가한 하동균씨가 일몰 1분전에 결승점에 들어왔다

남해 철인들과 남해대회만의 특별함은 없을까? 하동균씨는 아무런 외부 도움 없이 철인들 스스로, 열정만으로 치러진 대회였어요. 다 같이 가는데 의의를 두죠. 이번에 사이클하다가 누군가의 자전거에 빵꾸가 났는데, 옆에서 뛰던 철인들이 다 나서서 돕고 같이 갔어요. 우리 문화가 그렇습니다라며 남해 철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스포츠에서 경쟁력을 갖는 두 가지가 ‘상금’과 ‘역사’라고 하는데, 그중 불변하는 것은 역사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회인 한국철인3종경기를 두고 박 본부장은 “이 경기야말로 스포츠마케팅에 중요한 힘과 가치를 모두 가지고 있어요. 이번 경기에 48개국 국기를 꽂아뒀는데, 앞으로 5년 안에 진짜 아시아 48개국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가 되어 남해의 스포츠 축제로 만드는 게 저의 목표”라며 열정을 담아 말했다.

한국철인3종경기를 ‘아시아 스포츠의 유산’으로 지키기 위해, 불규칙적인 노동과 열정만으로 오늘날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박기섭 본부장. 젊은 날 외국에서 맞닥뜨린 ‘영혼을 집어삼킨 감동’이 30년간 한결같이 그를 움직이고 있다. “해마다 코로나라고 할 정도로 쉬웠던 때는 없었어요. 신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죠”라고 말하며 웃는 그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그 감동의 힘을 믿는다고.

500명 철인경기를 남해에서 유치하려면

현재 이동 보광교차로 근처에서 끊겨 있는 해안도로. 코스가 4차선 국도와 합류하여 매우 위험하다
현재 이동 보광교차로 근처에서 끊겨 있는 해안도로. 코스가 4차선 국도와 합류하여 매우 위험하다

"올해로 4년째, 회를 거듭할수록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축제로 자리잡아가는 게 보인다수백명이 오는 대회가 열리면 지역 경기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환상적인 남해 코스에 딱 하나, 안타까운 것은 이동 보광교차로에서 길이 끊겨 있다는 거다. 원래는 남해대교까지 이어진 길로 설계가 됐었다는데, 이렇게 길이 끊어지게 된 경위를 알수 없다. 현재 선수들이 국도에 들어서서 신호받고 좌회전 한 뒤 역주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게 해결이 되면 충분히 500명 유치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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