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과 학교에 간 네 아이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동남치의 새 보금자리 앞에서 웃음짓고 있다
유치원과 학교에 간 네 아이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동남치의 새 보금자리 앞에서 웃음짓고 있다

‘어마어마한’ 가족이 나타났다. 자녀만 13명, 부부까지 도합 15명이 한 지붕 아래에 살고 있는 김현태(43), 임수경(41)씨 가족이 지난 주, 고현면 동남치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고현면의 인구유치 캠페인 이후, 전입해 온 여섯 번째 가정이다. 원주민 40명의 마을에 15명의 숫자를 더해, 조용하던 마을을 아이들 소리로 유쾌하고도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이 평범하지 않은 가정을 만났다. 본 인터뷰는 ‘남해시대’와 합동으로 진행됐다. <편집자 주>

가을 햇살 따스하던 지난 주 금요일, 동남치마을을 찾았다. 집 안팎을 정리하느라 한창 분주하던 가족이 손님을 반겼다. 부부와 다섯 딸들, 네 살배기 쌍둥이 아들 둘과 갓난쟁이 미소까지 함께 둘러앉은 중에 엄마 수경씨가 편안히 수다 떨 듯,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무심한 척 하고 싶었지만 무시할 수 없는 15라는 숫자. 방송 출연을 하신 적이 있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딱 한번의 생방송 출연을 제외하고는 다 거절했다는 수경씨. 이곳에 내려오면서도 사실 어느 정도 관심이 조명될 것을 예상했다고.
그 예상, 제가 이루어드립니다. 국내 한가구 숫자로는 최다라는 이 가족에게 이미 진부한 질문을 했던 이들이 차고 넘쳤을 듯 싶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해 묻고 말았다. 셋만 낳아도 ‘대단하다’라는 말을 듣고, 넷 이상이 되면 ‘애국자’니 뭐니, 원치 않는 칭호를 붙여주는 이 흰소리 많은 세상에서 13이라는 숫자를 이루고, 키워오고 있는 그 배경을.

부부는 한 목소리로 “원래는 하나만 낳을 생각이었다”라는 다소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이어서 수경씨는 “첫째와 둘째 터울이 5년이예요. 둘째를 가졌을 때,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안 낳고 싶어서 병원에 갔어요. 그런데 심장 두 개가 뛴다는 거예요. 쌍둥이가 들어선 거죠. 그걸 어떻게 안 낳겠어요. 결과적으론 뱃속에서 하나가 사산되어 한명만 태어났지만, 그때부터 마음이 바뀐 것 같아요. 다섯째까지 연년생으로 낳게 된 거죠. 여섯째까지 전부 딸인데, 이쯤 되니 주위에서 아들 낳으려고 그러는거 아니냐고,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었어요. 그런데 꼭 확인이라도 시켜주듯이 일곱째가 아들이 태어났어요. 사실 아이들 낳는 과정에서 집안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셨거든요. 그 텅 빈 느낌이 너무 허전해서, 우리는 많이 낳아서 화목하게 지내자고 남편과 이야기했어요. 그러다보니 좀 많아졌네요. (웃음) 남편이 마지막으로 쌍둥이를 낳자 했는데 쌍둥이가 자연임신이 됐고, 말장난처럼 첫째가 딸이니 막내도 딸로 끝내자 하니까 정말 막내딸이 태어났어요. 이제 농담으로라도 아이 낳자는 이야기는 그만하려고요”라며 그간의 길고 긴 역사를 들려줬다. 
이쯤되어 열세명의 자녀 소개를 해야겠다. 맏이인 주희(22)씨부터, 하늘(17), 한별(16), 희망(15), 사랑(14), 가을(12), 겨울(10), 단비(8), 봄(7), 여름(5), 쌍둥이 다빈과 우빈(4), 미소(1)까지 총 4남 9녀의 완전체 되시겠다. 

서울 토박이라는 부부가 대식구를 거느리고 멀고 먼 남해까지는 어떻게 오게 된 걸까. 직접적인 계기는 캠페인이었다지만, 사실 부부는 훨씬 이전부터 귀촌을 생각하고 있었다. 
“서울은 밀도가 높잖아요. 일부러 아파트 1층에 살았는데, 위로 2층, 3층에서까지 시끄럽다며 민원이 들어왔어요. 아파트 입구 자동문도 우리 때문에 전기세가 더 나온다며 비난받기도 하구요. 그래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갔는데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으니 마찬가지였어요. 한여름에도 문을 다 닫고 살아야 할 지경이었으니까요. 우리는 시골에 가야할 것 같아, 매일같이 말하며 참 많이 알아봤어요. 통영, 포항, 해남, 보령, 강원도까지. 그러다가 남편이 일하다 사고를 당했는데...그때 참 마음이 많이 무너졌던 것 같아요. 이런 대도시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위험 요소를 늘 안은 채 살아가야 했으니까요. 그때 고현초 기사를 보게 됐어요. 남편이 바다를 좋아하거든요. 이번에 내려가면 아예 가는거야, 그렇게 마음 먹고 내려왔어요.”

26일, KBS뉴스에 고현초와 함께 소개된 현태·수경씨네
26일, KBS뉴스에 고현초와 함께 소개된 현태·수경씨네

아이들이 마음껏 웃고 떠들어도 민원이 들어오지 않는 곳, 집 앞에 아이들을 내보내도 불안하지 않은 곳이 너무도 절실하던 때, 근무 중 일어난 남편의 사고는 결정적으로 부부에게 ‘내려가자’라는 결단을 내리게 해 주었다고. 그럼에도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정착하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터, 현태씨 가정은 남해의 무엇에 의지하고, 또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부부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두 교장선생님만 믿고 왔다”고 말했다. “전입 상담을 하면서 확신이 들었어요. 이분들이라면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맡겨도 되겠구나. 초등학교는 기본교육만 받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사회성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이곳에서 마음껏 뛰어 놀면서, 각자 자기 갈 길 찾아가리라 믿어요. 모두 개성이 강해서 13이라는 숫자 속에서도 하나 하나가 빛나는 애들이라 저희는 걱정 안해요. 전학이 조금 고민이긴 했는데, 시골에 가면 마당에서 바비큐를 할 수 있다고 하니까 전부 찬성하더라구요”라는 대목에서, 둘러앉은 아이들의 얼굴이 순간 환해졌다고 느꼈다.

“아이들과 자급자족을 꿈꾸고 있어요. 영농 교육 받고, 우선은 농사를 지어보려고 해요. 이곳에서 뭘 하며 살아야 할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어떻게든 살아지지 않겠어요?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요”라고 말하며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보이는 현태씨와 수경씨를 보니, 과연 자녀 열셋을 키우는 부모는 어딘가 달라도 다르다. 

인터뷰가 끝나가는 시점이 되어서야, 아이들 하나 하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형제가 이렇게 많으면 각각의 존재감이 좀 희미해지지 않을까 했던 것은 무지한 자의 기우였을뿐이다. 동네 어르신들이 갖다 주시는 감 한 봉다리에 기뻐하고, 앞마당에서 누리는 햇살에 고마움을 느끼는 이 아이들이 이곳, 남해에서 자연과 교감하고 타인에게 선함을 베푸는 청년들로 자라날 것에 대하여, 부부에게 미리 감사드린다. 남해, 고현에 오신 것을 다시 한번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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