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의회부터 4대 의회까지 10년째 회의록을 기록하고 있는
이동윤 속기사
 
  

“이쯤 되면 나도 남해사람 다 됐지요?”


‘남해군의회에서 가장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라는 질문에 속기사 인 이동윤(36)씨와 권은숙(34)씨라고 곧바로 대답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의회 개원 13년 역사 중 10년을 꼬박 그 자리를 지켜온 사람. 의회 본회의나 특별위원회가 열리는 날 기록석에 앉아 주고받는 모든 발언들, 질문과 답변들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사람. 이동윤, 권은숙 두 속기사가 바로 남해군의회를 한자리에서 가장 오래 지켜온 사람들이다.
의회의 역사를 그들만큼 속속들이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며, 역대 의원들의 특성과 의정활동을 그들만큼 비교·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는 10월이면 근무연수 만 10년을 맞이하는 남해군의회 이동윤 속기사를 만나 그들만의 애환을 들어보았다.<편집자주>
 
▲언제부터 남해군의회에서 일하게 됐나?
=1대 의회 하반기인 93년 10월 12일부터 동료 속기사인 권은숙씨와 함께 근무를 시작했다. 만 10년이 다되어 간다.

▲속기사 직업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고향이 마산이고 마산상고를 나왔다. 실업계 고등학교에는 군 장학생선발제도가 있었다. 그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입대해 중사로 제대했다. 10년 전에는 속기사 자격증이 바람을 일으킬 때였다. 고등학교 선배 중에 속기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중앙부처에 일하게 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군 복무기간 중에 소대원 중 한 명이 속기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를 보았다. 그 때까지는 그저 막연하게 느꼈는데 제대 후 다른 일을 하던 중 우연히 속기사 양성 학원 간판이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학원에서 다른 사람은 그 때는 대세였던 수필속기자격증을 준비했지만 나는 컴퓨터(당시에는 타자속기)속기를 선택했다. 지금은 거의 컴퓨터속기가 대세로 굳어졌다. 2년 6개월만에 컴퓨터 2급 속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남자들이 속기사 자격증을 따는 경우도 드물고 채용되는 경우도 적다. 경남도내 56명 속기사 중에 남자는 고작 4명에 불과하다.

▲남해로 오게 된 계기는?
93년 각 지방의회마다 속기사들을 채용했다. 당시 남해군의회 속기사 채용공고를 보고 12명이 응시했는데 나와 권은숙씨가 합격했다.

▲의회소속인가? 남해군 소속인가? 공무원으로서 직렬과 직급은 어떻게 돼나?
=우리나라엔 아직 ‘의회직’이라는 직렬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군 소속 공무원이며 일반직이 아니라 기능직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군 소속 기능직 9급 공무원이다.

▲10년이나 됐는데 9급이란 말인가?
=10급부터 시작하는 기능직이기 때문에 일반직 공무원과 달리 승진승급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5년만인 98년 10급에서 9급으로 승급됐다. 사실 일반직 공무원들의 인사 소식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애써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린다. 그렇다고 내 직업에 특별한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의회직을 신설 의회사무국을 집행부로부터 독립
시키는 것이 가장 시급한 지방자치과제라고 진단한다.
 
  

▲속기사의 직위가 그런 줄은 몰랐다.
=이건 인사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상의 문제이다. 국회에서 일하는 속기사들은 국회 일반 사무직과 동등한 지위와 권리(승진승급이나 다른 직책으로 인사이동)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법원이나 지방의회에서 일하는 속기사들은 다른 부서로 이동해갈 수 없고 가령 고향으로 가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아예 일반행정직으로 전환하는 시험을 쳐서 행정직공무원으로 나가려는 속기사들도 많다. 전국적으로 지방의회에서 일하는 속기사들이 700명쯤 되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전국지방의회속기사협의회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고 나는 경남·울산지회장을 맡고 있다. 사회복지사가 복지직(전문직) 일반공무원으로 직렬화 되었듯이 우리도 몇 년 전부터 행정자치부를 상대로 전문직(속기) 일반공무원으로 직렬화 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답이 없다. 언젠가는 우리의 바람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

▲속기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일변에 두 번 상공회의소가 주관하는 속기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컴퓨터속기로 전환됐기 때문에 합격률이 요즘은 10% 정도로 높아졌다고 한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전문학원에서 적어도 2년 이상은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속기사가 두 명인데 서로 역할이 어떻게 다른가?
=우리가 기록해야 하는 회의록은 의회 본회의와 특별위원회 회의록이다. 보통 사람이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20분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국회에선 20분∼40분마다 속기사가 교대해가며 기록을 하고, 속기사가 많은 경우 회의록 속기→교정→편집→인쇄→배부 과정 중 한 부분을 전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같은 경우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본회의 같은 경우 안건별로 나누어 담당한다. 행정사무감사 같은 경우 각 과별로 역할을 나누는 방식이다. 특히 행정사무감사의 경우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7시까지 회의가 계속 되는 경우도 있는데 손목이나 어깨가 아파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의회록을 제출해야 하는 시한이 정해져 있나?
=임시회는 보름, 정례회는 한 달이다. 한 시간 짜리 회의를 정상적인 회의록으로 풀어내려면 적어도 2∼3시간은 걸린다. 의회회의록은 영구보존문서이기 때문에 오탈자가 없어야 한다. 적어도 3차례 이상은 교정을 봐야한다. 행정사무감사의 경우 회의록장수가 16절지로 500페이지나 된다. 한 달이 빡빡하다. 회의록서명의원들의 서명이 끝나면 의회 홈페이지에 올린다. 역대 회의록은 모두 의회홈페이지에 자료화하여 올려놓았다. 언제든지 누구나 검색해볼 수 있다.  

▲의원이나 공무원이 사후에 회의록을 고쳐달라고 요구한 경우는 없었나?
=속기사의 컨디션에 따라 85%∼95%까지 회의내용을 기록할 수 있다. 다만 교정과정에서 나머지 회의내용을 복원하고 그걸 철저하게 사전검토작업을 거치기 때문에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만약 회의록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려면?
=본회의 회의록은 의장. 회의록서명의원 2명, 의회사무과장 4인의 서명을 받아야 가능하고, 특별위원회 회의록은 의원들의 동의와 특별위원장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회의록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1대 의회 때, 진지한 자세로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한 한 의원이 “밥 먹고 합시다”라고 해서 모두가 웃었던 적이 있다. 당시 그 말이 유행하던 때였다. 또 한가지는 “내꼬랑이 이마이 파지고 비릉이 널찌가 도에서 내려와 억수로 잡찌고…” 같은 지독한 남해사투리 때문에 처음엔 무척 힘들었다. 

▲1대부터 4대까지 가장 의정활동을 비교하면?
=무엇이든 연륜이 쌓이면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젊은 의원들이 진출한 4대 의회가 자료준비도 많이 하고 핵심을 잘 파고든다고 생각한다. 젊은 의원들이 열심히 하니까 경력의원들도 힘을 받는 것 같다. ‘저런 것까지 언제 준비했나’놀랄 때도 있다. 치열하게 논쟁이 붙을 때는 속기사로서는 사실 더 힘들지만 일은 더 재미있게 할 때가 있다. 물론 4대보다는 5대가 더 나을 것이라는 일반론적인 얘기다.

▲자치발전을 위해 지방의회에 가장 절실한 제도개선과제는?
=사견임을 전제로 의회의 독립이 가장 절실하다.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 의회직을 신설하여 의회사무국을 행정부로부터 독립(인사권과 운영권)시키지 않으면 의회의 근본적인 변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또 한가지는 언론사가 의회의 본회의나 특별위원회 회의를 생중계하여 의회의 활동을 군민들에게 더 가깝게 전달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힘든 점은?
=사투리, 새로운 전문용어, 시사용어를 익히고, 전국이슈나 지역이슈 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야 한다. 해박한 지식을 쌓아야 좋은 회의록을 만들 수 있다. 

▲가족관계와 사회활동은?
=남해 서씨 집안에 장가를 들어 1남1녀를 두고 있다. 이제 남해사람 다됐다고 생각한다. 남해산악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검도도장에 나간다. 여러 운동을 해봤지만 내겐 등산과 검도(초단)가 가장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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