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삼거리에 위치한 힙한식. 희고 푸른 외관이 남해 바다를 닮았다
초전삼거리에 위치한 힙한식. 희고 푸른 외관이 남해 바다를 닮았다
남해대학 호텔조리제빵과 동문인 이정서·심재민 공동 대표
남해대학 호텔조리제빵과 동문인 이정서·심재민 공동 대표

남해사람이라면, 초전삼거리를 모르지 않을 테다. 물미해안도로를 달리다 마주치는 삼거리, 국도 3호선의 시작점이기도 한 이곳에 얼마 전, 식당 하나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이름하여 ‘힙한식’, 듣는 순간 어쩐지 어깨가 들썩이지 않는가. 흰 벽에 파란 지붕, 파란 문이 그대로 남해의 바다를 연상시키는 이곳은 90년대생 청년 부부가 운영하는 한식당이다. 부부가 모두 남해대학 호텔조리제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유수의 식당에서 실력을 쌓은 뒤 남해로 돌아와 오픈한, 이 심상치 않은 식당을 찾았다. <편집자 주>

점심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났을 듯한 오후 2시, 뒷정리로 한창 바쁠 때 온건 아닐까 걱정하는데 아직 손님이 별로 없어 바쁘지 않다며 웃는 심재민(29세)·이정서(26세) 힙한식 대표 부부와 인사를 나눴다. 
경남 산청이 고향인 심재민씨와 이른 십대 시절부터 남해에 살았다는 이정서씨는 2014년, 남해대학 재학 시절 인연을 맺었다. 각각 한식과 양식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나란히 CJ그룹의 프리미엄 한정식 레스토랑 ‘다담’에 입사하여 이후 3년간 셰프로서의 실력과 경험을 쌓았다. ‘다담’이 그룹의 결정으로 폐업을 하게 되자 재민씨는 미슐랭 원스타, CJ의 한식 파인다이닝 ‘소설한남’의 오픈멤버로, 정서씨는 주한 포르투갈 대사관의 관저 요리사로 가게 되어 미식의 세계에서의 수련을 계속했다. 

20대의 나이에 이정도면 최고로 성공한 것이 아닐까 싶은 이 때, 두 사람은 남해행을 결심했다. 설득의 시작은 아내인 정서씨. 남해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여긴 식당이 멸치쌈밥집밖에 없다”라며 한번씩 지나가는 말씀처럼 하시던 이야기가 정서씨의 귀에서 계속 맴돌던 찰나, 일찌감치 남해로 내려와 사업장을 내고 자기만의 공간을 꾸려나가던 친구의 설득도 한몫했다고. 

정서씨는 “요리사라는 직업 자체가 크게 성공하기가 어려워요. 강도 높은 작업, 많지 않은 월급…무엇보다 ‘모든 것이 갖춰진 레스토랑’을 벗어나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자기 가게를 내는 건 모든 셰프들의 꿈이기도 하구요. 우리는 둘 다 요리를 하니까, 같이 남해로 내려가자고 남편을 꼬셨어요”라며 남해로 오게 된 이야기를 풀어놓는 동안, 옆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재민씨도 “내려와서 이곳저곳 돌아보고 있는데 우연히 들어간 식당 사장이 초등학교 선배인 거예요. 놀라기도 했고, 남해와는 역시 인연이 있다 싶었어요”라며 이야기를 보탰다. 

그렇게 부부가 처음으로 꾸린 식당의 이름은 ‘힙한식’. ‘힙하다(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하다는 뜻의 신조어)’와 ‘한식’을 하나로 이었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단어를 이렇게 연결하다니 정말 힙하구나, 생각하며 누가 지었냐고 물으니 정서씨의 아이디어였다. 
“간판 사장님 오시는 전날까지 고민만 하다가 우연히 ‘힙하다’와 관련된 글을 봤어요. 힙하다는게 ‘새로운 것을 지향하다’라는 뜻이라는데 번뜩하고 감이 왔죠. 전통적인 한식의 멋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한식을 지향한다는, 우리의 방향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곳의 대표메뉴는 전복내장으로 밥을 지어 감태오일을 두르고, 전복 및 남해의 해산물을 가득 올린 솥밥에 부추장을 곁들이는 ‘힙한식 솥밥’이다. 솥밥이 조금 부담스럽다면 해풍 맞은 고사리와 전복을 부드럽게 쪄 고명으로 올리고, 약고추장을 비벼 먹는 힙한식 비빔밥도 있다. 사이드 메뉴로는 숯불향을 입힌 목살구이와 향채무침, 빵가루를 넣어 바삭하게 구운 해물파전, 진주 앉은뱅이밀로 만든 향채나물 국수가 있다. 메뉴 하나하나가 낯설지 않지만, 또한 어디서도 본 적 없이 새롭다. 

힙한식 전복솥밥
힙한식 전복솥밥
힙한식 비빔밥
힙한식 비빔밥
향채나물 국수
향채나물 국수
숯불양념 목살구이와 향채무침
숯불양념 목살구이와 향채무침
빵가루를 넣어 바삭하게 구운 해물파전
빵가루를 넣어 바삭하게 구운 해물파전

가오픈 일주일을 거쳐 정식 오픈한지는 이제 일주일째, 그간 다녀간 손님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식당의 대표로서 손님에게 받는 평가는 처음일 터, 다소 긴장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정말로 맛있다’라는 반응이 다수였다고. 다만 ‘한식’이라 하면 으레 따라 나오는 한 상 가득한 반찬들이 없어 조금 박한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원래부터 요리사를 꿈꿨는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하다가 전향한 케이스인지 묻자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원래 요리를 좋아해서 초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 자격증 따러 다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흔들리지 않고 한길을 걸어온 저력, 호텔조리의 명문 남해대학에서의 충실한 학업, 프로로서 현장에서 키워온 감각과 경험으로 무장한 두 사람이라면 처음이라 할지라도 식당을 오픈하고 운영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은데 과연 그러할까. 

부부는 “가게 자리를 구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포기할 생각까지 했었는데 다행히 좋은 장소를 얻었어요. 주방에서 일하면서 보고 배운게 있어서 아직까진 낭패라고 할 만한 일들은 없는데, 메뉴가 여전히 고민이예요. 지역민과 관광객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하려다 보니 지금도 메뉴가 계속 바뀌고 있어요”라며 웃었다. 

2017년, 한국식문화세계화대축제에 참가한 두 사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들을 키워낸 남해대학의 재학 시절이 궁금해졌다. 재민씨는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으로 정재덕 셰프를 꼽으며 “대학 선배시기도 하고, 첫 직장인 다담에 불러준 것도 정셰프님이셨어요. 사찰음식 최연소 명인으로 이미 유명하신데 여전히 요리에 열정적이고, 음식에 대해 많이 가르쳐주셨죠. 다담에 있을 때 우리 둘 보고 내려가서 가게 한번 해봐, 하신 적이 있는데 정말로 이루어졌네요”라고 회상했다. 

정서씨의 학창시절 최고의 기억은 2015년, ‘한식드림(Dream)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것과, 이 수상을 통해 같은 해 뉴욕의 유엔본부에 초청받은 것. “2015년에 권오천교수님의 지도로 팀원들과 유엔본부의 대사들에게 한식 만찬을 선보였는데, 완전 찬사를...박수가 그냥 막...쏟아졌거든요. 정말 기뻤어요”라고 말하는 정서씨와 재민씨를 보니, 이 부부의 식당이라면 맛있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와 가장 친숙한 한식, 그런 만큼 널린 게 한식당이고 백반집이라 손맛의 장인들이 무수하게 포진하고 있는 이 무림 고수의 영역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한식을 시도하는 재민씨와 정서씨. 첫 가게를 열면서 ‘여기 음식 맛있네, 하는 말 들으면서 행복하게 롱런하기’라는, 소박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인터뷰를 마친 다음 날, 멀리서 찾아온 지인의 가족과 이곳을 다시 방문했다. 이번엔 카메라와 노트북 없이, 그저 맛있는 식당을 언제나 기다려왔던 주민으로서. 맛에 대해선 둔한 편이라 ‘짜다’와 ‘싱겁다’, ‘맵다’와 ‘안맵다’ 정도로만 맛을 구별하는 내게도 전복 솥밥의 감칠맛과 부드러움은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다. 해물파전의 바삭함은 술을 부르고, 숯불 목살구이와 향채국수는 돌아서면 생각나는 별미였다. 후식으로 나온 감귤샤벳은 또 어찌나 상큼하던지.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남해의 다른 식당들과 콜라보로 재미있는 이벤트를 해보고 싶다고 한다. 가게 속 가게인 팝업스토어 형식도 좋고, 몇몇 식당이 손잡고 일일 야외 푸드코트를 차리는 것도 좋겠다. 이 부부의 한식이라면, 무엇과도 환상적으로 어울릴테니. 

힙한식, 미조면 동부대로 2 (초전삼거리 지중해모텔 앞)
운영시간 11:30~20:00(브레이크타임 15:30~16:30, 당분간 휴무 없이 운영)
문의 및 예약 070-8810-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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