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단 한 가지만을 골라 하나의 형태로 살기를 강요한 적 없다. 우리는 여행하듯 천천히 걸어가며 그동안 충분히 바라본 후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은 여행이며 우리 각자는 여행자이자 방랑자이다. 여기 서른아홉의 한 청년이 있다. 이름은 고광석. 부산사나이였던 그가 남해와 첫 인연이 닿은 건 2005년. 그러다 2010년도에 남해에서 한 사랑을 만났다. 이별을 겪어 남해를 떠나기도 했다가 그 사랑과 재회하면서 남해로 돌아왔다. 2015년 결혼과 함께 그 사랑에 정박했다. 4살 6살 두 아이와 남해에서 산다. 이제야 ‘정착’이란 단어가 실감 난다는 그를 만나 이야기 나눴다. <편집자 주>

남해유스타운이라는 청소년 수련시설에서 오래 일한 것으로 안다. 최근까지 소통위원회 교육분과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현재 꽃내권역 사무장 일을 하고 있다고=대한적십자사 응급처지강사이기도 하고(웃음) 부산-진주 하나투어 프리랜서, 태국 여행사 프리랜서 등도 맡고 있다. 여러 일을 하고 있으나 사무실에 콕 박혀 한 직장에 머무는 일은 아니라는 게 제가 하는 일의 특징이다. 여러 일을 병행하지만 사실 돈은 안된다. 붙박이로 하는 일보다 이런 일들이 잘 맞고, 또 소규모의 일을 모아 엮어가는 게 남해 실정에도 어울리는 것 같다. 

4살, 6살 아이의 아빠기도 하다. 아이 키우며 살기에 남해가 괜찮은가=전반적으로는 만족에 가깝다. 지금 또래에서는 괜찮다. 자연환경에 풀어놔도 큰 문제가 없고. 문화시설에 대한 갈증이 컸으나 이 또한 수요-공급을 생각하면 일면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단지 아쉬운 건 ‘유모차 타고 갈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시골의 생활권이 읍으로 다 몰려 있다 보니 한 집에 기본적으로 차가 2대씩은 있어야 하는 점도 낭비이자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 같다. 남해로 살고 싶어 하는 청년들은 많은데 다들 불편한 교통을 가장 큰 걸림돌로 꼽더라. 예를 들어 버스 수신기 달아놓고 전광판에 예상되는 도착시간을 띄워주는 시스템조차 안 돼 있다. 대지포에서 독일마을로 가려 할 때 대지포 버스 도착 예정시간을 몰라 갑갑한데다, 심지어 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도 버스를 놓치는 경우까지 있다. 

하나투어와 태국 여행사 프리랜서 등 여행업도 삶에 비중이 컸을 텐데=코로나19 때문에 올스톱인 상태다. 코로나 터지기 전에는 진주나 부산 등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경우의 안전요원 담장자로, 태국여행의 경우는 현지 태국인이 가이드를 하지 않을 경우 ‘투어폴리스’라는 여행관련 경찰이 잡아가기에 가이드는 못하고, 여행팀과 현지 태국가이드와의 조율자로 전체적인 매니저 자격으로 태국을 자주 갔다. 딱 올해 1월부로 끝났다. 태국에서는 순차적으로 여행객을 받으려고 준비중인 걸로 안다. 그러나 예전 같은 그런 여행의 시대는 어렵다는 게 업체의 판단이다. 치앙마이, 푸켓, 방콕, 파타야 등 태국의 관광지에 사는 사람들도 다들 생계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다. 이제 입국신고서와 음성판정 검사지 등 더 엄격한 심사가 요구될 것이다. 여행업계가 살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학교는 ‘세월호’사건 이후로 사실상 소규모 단위로 여행이 많이 전환됐다. 학교 등 바운더리가 분명한 단체는 그 통제가 가능한데 아무리 정부에서 10명에서 20명 내외의 소규모를 권장해도 큰 단체들이나 회사 등에서 인원을 줄여 이런 권고를 따라줄지 미지수다. 우리 같은 관련 종사자들이 무슨 전망을 내놓겠나 싶지만 분명한 건 단체의 개념과 수의 조율 등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꽃내활성화센터 사무장 업무도 만만치 않겠다=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농어촌공사에서 건물을 지어 군으로 이관됐다. 8개 마을에서 영농법인을 만들어 활성화를 고민하고 있다. 숙박정원은 60명 가량인데 식당은 200석이 넘는다. 식당공간 절반은 코워킹스페이스사무실로 쓰고, 활용도가 낮은 찜질방도 작은도서관이나 그림책도서관 등으로 전환하고 실내체험이나 강좌를 준비중이다. 남해가 당면한 큰 문제점이 실내관광지가 부족하고 특히 유아 동반 가족관광지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제주도의 ‘믿거나말거나 박물관’ 같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실내관광지’는 꼭 필요한데 자신 있게 추천할 곳이 마땅찮다.

남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살러’라는 단체를 만든다=혼자는 아니고, 협동조합으로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다. 남해로 살러 오고 싶어도 귀촌, 귀어, 귀농 관심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게 적고, 정보가 있다 할지라도 어디에 어떻게 문의를 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살러’라는 단체를 통해 도움을 주고자 한다. 살고있는 사람, 살아가는 사람 모두를 통틀어 ‘살러’라고 보고 궁극적으로는 남해로의 접근을 더 친근하게 돕는 조력자 역할이다. 

청년들이 남해로 오려면=교육 등 선택의 폭이 좁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초중고를 남해에서 다 나와도 대학부터는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는 게 남해니까 아무래도 그렇게 성인이 되어 떠난 남해로 다시 귀촌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타지에서 대학을 마치고 남해에 돌아왔을 때 일할 곳이 있어야지 캥거루족이 될 순 없지 않나. 남해에 ‘자신 있는 일자리’가 없다 보니 도시에 나갔다 돌아온 남해청년에게 ‘실패자 프레임’을 씌우는 것 같다. 그렇다고 다 창업을 할까. 죄다 커피숍과 숙박업을 할 것인가 생각하면 아찔하다. 남해에서 살아보자 결심한 건 ‘내 아이들이 굳이 남해를 떠나지 않아도 되는 환경’으로 만들고 싶다는 소망에서였다. ‘청년-한달살이’를 지켜보면서도 40대 50대 즉 60대 이전의 사람들의 박탈감이 보였다. 4050은 설 자리가 없다. 귀촌을 하고 싶어도 여기서 창업을 하고 싶어도 ‘청년’에서 딱 끊기니 ‘청춘’인 4050세대는 반감이 있다. 이 부분을 풀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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