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되어 처음으로 구독자에게 전화를 돌리던 날이었다. 지령 1500호를 맞아 우리 신문의오랜 독자를 찾아가는 기획이었는데 연이은 거절에 조금씩 힘이 빠져 가는 찰나, “허허…그럼 뭐 한번 와보이소”라는 첫 승낙이 떨어졌다. 바로 최봉섭(84세) 독자님이다. 

한달음에 찾아간 삼동면의 동천농약사. 한때 번성했을 상가들을 지나 길목의 끄트머리로 닿을 즈음, 역사가 오롯이 담긴 점포 하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곳에서 수기로 장부를 작성 중이시던 최봉섭 독자님을 만날 수 있었다. 친할아버지 같으셨던 독자님께 남해신문과의 오랜 인연을 여쭈었다. 

“남해신문 본지 오래 됐지. 30년이라고? 그리 오래 됐나. 허허. 농약방 한창 하던 중에 보기 시작했네. 우리 가게를 60년대 언제쯤 열었는데. 고향이 여 동천이거든. 그전에야 뭐, 마늘중개사도 해 보고, 사업도 했었는데 여러번 망했지. 농사야 평생 지었고, 키위농사도 지었는데 어째 나무가 다 죽어버려서 그것도 올해가 끝이야. 농약방도 옛날엔 잘 됐는데 농협이 번창해삔께 지금은 잘 안 팔려. 알음알음 오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여도 올해까지만 하고 끝날낀가 싶어. 나이도 80이 넘었는데. 여 끝나면 신문 보는 것도 끝날끼다.”

장사가 신통치 않아 곧 가게도 닫고 신문도 그만 볼거라며 농을 치시는 것과는 달리, 이야기를 나누는 잠깐 사이에도 단골손님이 여럿 다녀가신다. 
“그래도 농약방 해서 자식들 대학교육도 다 시켰지. 애들이 부모 고생한거 다 알고는 놀러도 자주 오고, 참 잘 챙기. 손님 줄긴 했어도 내가 이 나이에 아직 운전해서 배달도 다니거든. 그냥 그래, 이리 지내는기지.”

오랜 구독자로서 남해신문에 격려와 애정의 한 말씀을 부탁드렸다. 

“나는 남해신문만 봐. 신문 보면은 고향 사람들 소식에 제일 눈이 가지. 우리 면사무소 직원들이 어디 가서 뭐 했나, 누가 승진했네 그런 거. 잘 보고 있소. 우리가 남해신문 참 좋아하네. 할매랑 점심 먹으러 갈낀데 같이 갈랑가?”

우리 신문을 참 좋아한다는 그 말씀 하나에 마음이 따스해진다. 최봉섭 독자님, 힘내서 더 좋은 신문 만들겠습니다. 다음에 또 점심 먹으러 같이 가자고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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