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5월 10일 지령 제1호, 남해신문의 창간호다. 그때부터 우리 신문을 보고 계신 진정한 올드보이(Oldboy), 이동가축병원 정봉치 독자님(76세)을 만나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벽에는 때 묻은 수의사 가운이 걸려 있고, 한때 빼곡이 들어찼을 약품 선반은 곳곳이 비어 있다. 공간에 배어든 소독약 냄새가 콤콤한, 수십년 역사를 간직한 이곳 동물병원에서 독자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남해신문, 처음 발간됐을 때부터 봤지. 그때부터 계속 보고 있다. 지방 신문 중에 제일 오래되지 않았나. 우리 병원은 72년 1월에 열었다. 나는 주로 소를 보고...작은 동물들도 보기는 봐. 40년 넘게 죽 이 자리에 있었지. 옛날에야 여기 이동에 가축시장도 있었고, 사람들이 많았다. 장날에 내다보고 있다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세 봤는데, 한 시간에 600명이 왔다갔다 하더라. 요새는 거의 없지...나야 뭐 뒷전에 그냥 눌러 앉았네. 가끔 출장 가고, 동물들 돌보고.”

남해 유일의 유기동물 보호소를 운영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는지 여쭈었다.
“처음 시작한게, 우리 아들이 군 축산관계자로 있었거든. 가가 유기견관련 담당자가 된거야. 그래논께, 그냥 우리집에 갖다놓은거지. 그렇게 시작해서 처음 5년 정도는 봉사로 했는데, 2005년이었나. 그때부터 군에서 예산 책정이 돼서 정기적으로 관리를 해 주고 있네. 청소나 약품 등 여러 가지로. 그렇게 지원해 주니까 혼자서도 운영할만 허네. 입양? 전체에서 삼분지 일은 그래도 입양을 가. 멀리 서울, 울진에서도 오고, 이동봉사 해주는 분들도 있고. 나머지에서 삼분지 일은 안락사 되는데, 입양이 많이 되면 참 좋지...”

평생 수의사로 동물들을 돌봐 오신 정봉치 독자님. 십여년쯤 전, 소를 보시다가 뿔에 받쳐서 한번에 갈비뼈 7개가 나갔다고. 갈비 한두개쯤은 예삿일인데 그때는 꽤 오래 병원 신세를 졌다며 너털웃음을 지으신다.

마지막으로 남해신문에 격려의 말씀을 부탁드렸다.
“남해신문이 역사도 있고, 참 믿음이 간다. 주로 보는 기사는 축산 관련이나, 사람들 나오는 거. 앞으로도 잘 챙겨 볼께.”
지금은 거의 일선에서 물러나셨지만, 눈빛과 기품에서 현역 수의사 선생님의 모습이 엿보인다. 앞으로도 우리 남해신문과 길 위의 동물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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