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박씨문중 모임에서 (주)수산중공업 창립자인 박주탁 전 회장을 만났다. 이틀 후 공덕역에서 점심식사를 함께하며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들었다.

박 전 회장은 남해군 창선면 수산리에서 고(故) 박경순·김또막춘 부모님의 1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유년시절 영특한 수재였다. 경남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수산중공업 창립시에 태어나 자란 창선면 수산리에서 ‘수산’이라는 이름을 가져와 수산중공업 명칭을 정할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박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한 뒤 1979년 수산무역을 설립해 사업을 시작했다. 수산중공업을 창립한 후에는 특수중장비 생산업체로 이름을 떨쳤다. 당시 수산중공업과 함께 수산특장, 수산정밀 등 계열사를 보유한 중장비 및 정밀기계 제조·판매·수출 기업으로 성장해 매출액이 1000억원을 넘었다.  
박 회장은 1990년대 들어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수산정밀, 수산스타, 수산섬유기계, 수산정공을 잇달아 설립해 그룹사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수산그룹은 1996년 무선정보통신 사업에도 진출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자금난에 시달린 수산그룹은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끝내 부도나고 말았다.

박 회장은 부도를 맞고 어려운 시절을 지내다가 중국으로 건너가서 40년 전부터 알고 지낸 일본 지인이 투자하여 수산기계유한공사(水山機械(有))를 설립했다. 박 회장이 이 회사의 동사장을 맡고 있다. 동사장은 중국에서 기업의 대표자를 일컫는 말이다
박 회장은 자신이 부도의 어려움을 이기고 중국에서 재기한 배경을 “내가 시골 태생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녀오면 매일 소꼴 베고 지게를 지고 나무를 가야했던 어려웠던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재기하여 오늘에 이른 것 같다”고 회고했다.
박 회장은 중국에서도 ‘水山(수산)’이라는 회사명을 그대로 사용했다. 수산기계유한공사는 주로 광산공구 개발, 반도체 특수분야와 5G 소재 분야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중국인들과 합작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 전역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박 회장은 “百折不屈(백절불굴), 백 번 꺾여도 굴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지금까지 좌우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박 회장은 아내 김복연 여사와 1남1녀를 두었다. 아들 박윤희씨는 중국 절강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에서 수산기계유한공사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딸 박송이씨는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 중 미국회계사 자격증을 획득하여 현재 우리은행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박 회장은 주로 중국에서 생활하는데 현재 코로나19로 출국하지 못하고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박 회장은 4차 산업혁명과 IT시대를 맞아 남해도 충분히 산업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박 회장은 “이제는 꼭 도시에서 사업을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우리나라는 IT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국가가 되었다. 급변하고 있는 시대에 꼭 도시를 선호하지 말고 아름답고 공기 좋은 곳을 찾는 것도 좋은 일이다. 남해군에서 바다를 이용하는 어업, 해양수산업, 농업 등의 벤처기업을 활성화시켜 젊은이들을 남해군으로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한 남해는 풍광이 아름다우니 관광도시로 개발시켜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 남해군도 발전하고 인구도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한국에 있는 동안 월정사 등 산 좋고, 물 맑은 곳을 찾아다니며 웰빙시간을 보내고 있다. 요즘 걷기와 채식으로 식습관을 바꾸었는데 콜레스테롤도 없어지고, 머리도 맑아지고,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박 회장은 “샘물이 자연스럽게 흘러 넓은 바다에 이르듯 노년기는 잠재된 욕망, 불만, 편견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 묻고 사는 것이다. 노년기 건강을 지키는 최고의 무기는 걷기와 채식이다. 걸으면 휴식, 건강, 힐링,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된다”며 독자들에게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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