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할 것인가? 부정할 것인가? 아니면 이 양자를 넘어 또 다른 질서를 선보일 것인가?”

사람이 갖는 갖가지 생각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게 합니다. 그것이 생물이든 미생물이든 긍정의 생각은 긍정을 낳고 부정의 생각은 부정의 기운을 스며들게 합니다. 긍정과 부정으로 나누어진 생각은 뭇 생명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도 하고 저하시키기도 합니다. 사기를 진작시킬 때 진심을 담아 전하는 긍정의 말 한마디가 전체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예는 종종 보아오고 있는 사례입니다. 특히 여느 단체에서 응집된 힘을 이끌어 소기의 목적이나 성과를 이루려 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몇 달 전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무더운 토요일 오후, 필자가 운동을 하기 위해 들른 운동장에는 지역의 단체에서 주관하는 남녀 학생의 축구 시합이 열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황사 먼지가 하늘을 뒤덮는 궂은 날씨에도 게임에 몰두하는 학생들의 열기가 사뭇 진지하기만 합니다. 각 팀마다 시합에 임하는 자세로 보아 게임을 즐긴다는 차원을 넘어선 듯하였습니다. 그러한 흔적은 팀을 지도하던 감독의 목소리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수들 대부분이 아마추어다 보니 기술 등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작은 실수가 있어도 그것이 오히려 흥미를 유발할 거리인지라 그저 즐겁게 볼 요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날 따라 맞은 편에 위치한 감독은 유달리 승부에 집착하는 듯하였습니다. 전후 사정이야 어떻든 승부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감독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사람의 시선은 아랑 곳 하지 않은 채 극성스러움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잡아, 사람을 잡아야지, 좀 더 빨리 내려와, 밑으로 내려와서 제자리를 찾아야지’이렇게 소리치다 급기야는 욕설도 서슴지 않게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몸의 중심을 잡기조차 어려운 학생들에게 다그치는 것으로 보아 이 게임은 절대 질 수 없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영향에서인지 시간이 지나갈수록 선수들의 움직임이 오히려 점점 둔해지는 듯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건너편에서 지도하던 상대 팀 감독은 정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잘한다 잘한다, 정말 잘한다. 옳지 옳지, 잘한다 잘한다, 정말 잘한다.’ 종종 실수를 하여도 ‘괜찮다 힘내라’를 외치며 격려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응집력을 이끌어 내는 감독의 신바람은 구경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잘한다는 소리를 신나게 엮어대는 통에 구경하던 사람들도 덩달아 ‘잘한다 잘한다’를 합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운동장이 순식간에 ‘잘한다’라는 구호 일색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의 합창은 어느 한편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선수 모두가 잘한다며 힘을 불어 넣어 주는 쪽으로 흐름을 타기 시작하였습니다. 누가 이기고 지고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잘한다’라는 말 속에 상대방이 실수를 해도 ‘괜찮다 잘한다’라고 하고 이쪽 편에서 잘하면 더욱 잘하라며 ‘옳다 좋아 좋아 잘한다’라고 응원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부정의 말투로 학생들을 다그치던 상대방 감독의 입장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긍정과 부정 그 양단을 넘어 하나로 이을 전혀 새로운 구호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이를테면 승부에 집착한 부정적 표현과 연신 잘한다를 연발하며 사기를 진작시킨 긍정 표현 사이를 넘는 한층 진화한 긍정이라고나 할까요. 부정은 더 큰 부정을 부르고 긍정은 더 큰 긍정으로 연결됩니다. 어느 한쪽이 긍정을 이야기하면 다른 한쪽은 부정이 되고 다른 쪽이 부정을 선택하면 그 한쪽은 긍정을 수반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이 분열된 상태에서 맞이하는 긍정은 진정한 긍정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긍정과 부정은 전체적이 되어야 합니다. 
부정을 동반한 긍정이나 긍정에 반하는 부정이 아니라 이 양자를 초월한 전체로서의 더 큰 긍정입니다. 마치 축구 시합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긍정과 부정을 넘어 모두가 잘한다를 외친 긍정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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