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지 않았다. 네비게이션이 알려 주는 대로 가도 가도 그저 초록 들판만 있는데 도대체 어디에 공방이 있다는 것인지. 그러다 정겨운 정류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문현-난죽-난음 정류장. 그 정류장을 지표 삼아 향하다 아주 큰 나무 하나가 안긴다. 마을 보호수에 이끌려 어딘지도 모른 채 그냥 내렸다. 네비게이션은 자꾸만 경로를 취소할 것이냐 내게 묻는다. 아니다. 취소가 아닌 쉼이다. 그 나무 아래서 눈을 조금 돌리니 정겨운 버스정류장과 함께 정류장 앞 연보랏빛 대문이 어슴푸레 보인다. 앗, 저기로구나, 본능적으로 알았다.

마을 가운데 놓인 보랏빛 풍경 
이동면 난음로 188-2. 이즈음 공방의 주소다. 공방을 발견하자마자 마음이 놓였다. 마치 예전부터 들렀던 사람 마냥 자신 있게 들어섰다. 한 엄마가 안경을 코에 걸친 채 바느질에 빠져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그녀 또한 어제 본 사람처럼 나를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신윤희. ‘윤희쌤’이라고 불리는 그녀는 ‘지족 구거리의 어미새’로 알려진 정겨운 이웃이기도 했다. 남해군에서 산지는 1년 7개월. 이 집은 그녀의 시어머니 집이라고 했다. 부산에서 쭉 살다가 이곳 난음리로 오게 되었다고. 그녀의 어머님께서 몸이 안 좋아지셔 결국 이 시골집에 혼자 살기 불가능해 부산의 요양병원에 모시고 간호를 하던 중 이 집이 너무 오랫동안 비어있는 게 영 마음이 쓰였다고. 처음엔 청소하러, 짐을 가지러 오다가다 2년 전, 부산에서 마지막 직장을 정리하며 ‘집도 살리고 나도 숨 좀 쉬어볼까’하는 마음에서였으리라. 

은모래책방 오가며 꿈꾸던 어미새
그녀가 남해로 정기적으로 왔다 갔다 하던 시절에 처음 마음에 품어온 공간은 남해 상주은모래 해변 근처에 자리한 은모래책방이었다. 자그마한 주택을 꾸며 책방으로 꾸린 이 책방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었다는 윤희 씨는 “제가 원래 궁금한 걸 감추지 못해요.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부끄러움도 없이 속사포 질문을 해댔어요. 저도 이런 공간 꾸미면서 남해에서 살고 싶은데 상주에서 이렇게 할 곳이 있을까요, 적당한 곳 보이면 제게 좀 알려주시겠어요?” 처음엔 상주바다 근처를 찾다가 그러다 지족구거리의 정 가는 가게들을 들락날락하며 마음을 두다가도 비어진 채 사람의 온기를 잃어가는 어머님 집이 못내 걸려, 차라리 소박하게 시작하는 편이 낫겠다는 용기가 섰다. 그렇게 오랜 소원이었던 자기만의 공방은 현실화되었다. 집의 창고자리가 지금의 공방이다. ‘대밭모’라 불리는 ‘난죽’마을답게 대나무로 안을 꾸몄다. 시어머니께서 사용하던 고가구들을 들여 바느질한 퀼트 작품을 올려두었다. 한 켠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집과 책, 옛 음반들이 자리하고 친구 같은 라디오는 노래한다. 손바느질로 만든 남해멸치와 여름철 남해의 기쁨이 되어주는 호박, 찔려도 결코 아플 것 같지 않은 선인장과 만인에게 사랑받는 장미가 반겨주는 여기는 ‘이즈음공방’이다.

어려운 결정일수록 기준은 행복
남해 오기 전까지는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원인 모를 실명 위기까지 겪었다는 윤희쌤. 그녀는 “늘 직장생활을 해왔다. 최근 직장에서 한 동료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한날은 ‘50이 넘은 이 나이에 한사람으로 인해 이토록 스트레스를 받을 수가 있나, 이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걸 붙잡고 있어야 하나?’싶은 회의감이 들더라. ‘결정이 어려울 때면 항상 기준을 행복한가, 아닌가로 두자’고 젊은 친구들에게 조언해주던 나를 떠올리며 문제를 직시했더니 답이 나왔다”고 했다. 아예 장님이 되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시력이 나빠 매달 눈동자에 주사를 맞았다고. 병원 생활을 반복하다 귀촌했는데 초록의 힘이었는지 점차 좋아지더니 1년 동안 안과를 가지 않아도 눈이 보이고, 바느질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윤희 씨는 “이즈음이면 노을 지고, 바람 불 듯 우리네 삶 어느 한켠에도 행복이라는 것, 평온이라는 것 또한 오지 않겠나. 어쩌면 문득, 와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나. ‘이즈음-행복주의(ism)’를 이 작은 공간에서 스스로가 찾아가길 바라는 소망에서 이름지었다”며 이름에 담긴 애정을 전했다. 
“초록이 온통이라, 매일 초록을 볼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풀마저 이쁘다. 마을 어르신들께서 내게 ‘니는 왜 풀을 키우고 있노’하면서 지청구를 날리셔도 그마저 싱긋 웃음이 난다.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손바느질,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뚝딱 재단해서 디자인해서 만드는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신윤희 씨가 찾은 이즈음의 평온이 손끝에 닿는 듯하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