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몸이 예쁘다 / 하루종일 물속에서 춤을 춘다 (중략) / 밤이 되면 별들이 물속의 마을에 가로등을 밝히고 / 물고기는 일주일에 한 번 손 편지를 쓴다
(곽재구 詩 ‘물고기와 나’ 중에서)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읽어주는 시를 듣고 마음이 울컥한 것은. 오글거린다고만 생각하던 시 낭독이 이렇게 눈물이 날 것 마냥 마음을 흔드는 일이었던가. 함께 듣던 몇몇 학인들은 이 구절에서 탄식을 감추지 못했다. 시인이 21세기 들어 자신이 쓴 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두 행이라며 ‘물고기와 나’를 낭독해주던 순간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지난 11일, 남해도서관 3층 강의실에서는 곽재구 시인 초청 강연회가 열렸다. 경상남도교육청이 주관하고 남해도서관이 주최한 이번 강연회의 주제는 ‘시가 꿈꾸는 세상’이다. 
곽재구 시인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시 <사평역에서>로 당선되어 시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전남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있다. 곽재구 시인은 최근에 발간한 시집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에 수록된 시 몇 편을 뽑아와 강연회에 모인 학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날 편안한 표정을 띤 곽재구 시인은 “내 영혼이 가장 사랑하는 땅의 이름이 바로 남해”라는 고백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시인이 처음 남해와 인연을 맺은 장소는 미륵이 돕는 땅이라는 미조. 수십년 전, 미조 포구의 한 여관방에서 밤을 새며 완성한 원고 이야기부터 문의, 초전, 금포, 벽련, 노도 등 한자를 풀어 가며 남해의 지명에 숨어 있는 아름답고 신비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시인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남해를 향한 말간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시인은 인도의 마날리라는 한 숲마을에서 만난 학생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낯선 이방인인 시인을 향해 환하게 미소지으며 두 손을 모으고 ‘나마스떼’하고 인사하고 있었다. 나마스떼는 ‘나를 사랑하는 내 영혼의 신이 내 앞에 있는 당신의 영혼도 사랑해 주기를’이라는 사랑과 평화의 인사말이다. 시인은 꿈에 젖은 눈빛으로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마스떼, 하고 인사한다면 거기가 바로 천국이 아니겠어요?” 시인과 우리들은 손을 모으고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었다. 
“나마스떼”

모든 시는 은유다

시인은 “모든 시는 은유”라며 운을 떼었다. 그가 말하는 착한 물고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강은 한반도이고, 동양에서 가장 위대한 에너지를 상징하는 푸른 용은 우리 한국 사람들의 선하고도 열정적인 에너지를 표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손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시인이 말하는 손은 바로 기도하고, 누군가를 잡아주는 손이다. 아픈 이들을 감싸주고 약을 나누어주는 손. 마치 천수관음상에 투영된 사람들의 소망처럼. 또 다른 시 <세수>를 들려 주며 시인은 “여기에 나오는 별은 바로 눈물이예요. 삶의 의미는 눈물을 쌓는다는 것 아닐까요. 모든 슬픔과 기쁨은 눈물 근처에 있어요. 세수할 때 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동안, 내 마음에 어떤 아픔과 슬픔이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라며 잔잔한 위로를 건넸다. 

시 속에 담긴 시인의 꿈 

“누워 있는데 발이 이불 밖으로 빠져나와 있어요. 그때 다른 누군가가 와서 자신의 발을 내 발에 대어준 적이 있나요?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발바닥은 신체 중 가장 거칠고 낮은 존재예요. 이런 발바닥을 사랑할 수 있어야 삶이 따뜻합니다. 이 시를 쓰고나서 마음이 참 좋았어요. 여러분, 예수가 인류 최초로 발명한 개념이 뭔지 아시나요? 바로 사랑이예요. 나를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인류 지성이 창조해낸 가장 아름다운 개념이예요. 우리는 가진 것을 아픈 사람들, 아픈 세상을 위해 써야 해요. 제가 대학 다닐 때 어느 날 캠프파이어를 했어요. 그 때 한 선배가 자기 시를 낭독하더니 그걸 다 찢어서 불에 태워버리는 거예요. 그 당시엔 복사기도, 컴퓨터도 없어서 태우면 끝이거든요. 얼마나 멋있었는지 몰라요. 삶이 힘든 건 버리지 못해서입니다. 좋은 일을 하고 보상을 바라지 않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나 자신이예요. 물론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하죠”
거친 존재를 돌아보고, 고물상을 드나드는 폐지 줍는 노인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북녘의 굶주리는 사람들과 다시금 하나가 되는 꿈을 꾸는 시인. 시인은 꿈이라 말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시인의 모습에는 이미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창작의 동력이 어디서 나오냐는 한 학인의 질문에 시인은 이렇게 답했다. “시는 평범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예요. 쉽게 읽히고, 따뜻한 마음을 전해줄 수 있는 글이 시가 되는 거예요. 울면서 쓴 시는 거짓이 없고, 대상과 완벽하게 교감할 수 있어요.”
쉬운 언어로 쓰여진 시들을 연민과 사랑을 담아 읽어 준 곽재구 시인. 그는 시가 재미없다면 그건 좋은 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평생 시를 잘 모르고 살았는데,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읽어 본 시는 달랐다. 오늘, 난생 처음으로 시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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