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대상에서 회사 설명 중
부산시장 표창

부산 지역 에너지 유통기업 광신석유 주식회사에서 대표이사를 역임했던 김종윤 향우가 지난 4월 30일, 46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은퇴했다.
1974년 말단 경리사원으로 입사해서 대표이사까지, 그가 살아온 인생의 3분의 2를 광신석유(주)에서 봉직한 것이다.  
이제 직장에서부터 자유인이 되어 평범한 일상을 즐기고 있는 김 향우를 만나 그동안의 소회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46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셨는데, 허전하거나 미련이 남지는 않으신지요?
=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 없다. 그래서 후회도 미련도 없다. 또 돈을 생각했다면 몇 년 더 일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겠지만 그 어떤 미련도 없다. 지난 두 달간 누님들을 비롯해 그동안 회사 일로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친구,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며 정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아내와 신혼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아내도 좋아하고 나도 좋은 것 같다.   

△광신석유(주)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 15세 때 창선에서 부산으로 올라와 물지게를 짊어 나르며 어렵게 공부해서 영남상고를 졸업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남부산 세무서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쥐꼬리만한 첫 월급봉투를 받고 보니 평생 이렇게 살 수 없다 생각되어 6개월 만에 그만두고 제약회사로 자리를 옮겨 4년 간 일했다. 당시 전국 최우수 영업사원에 뽑히기도 했다.  
군대 영장을 기다리며 고향에서 참치 배를 타서 1년 3개월간 어부로도 일했다. 광신석유에는 군대를 제대할 무렵인 1974년 9월 경, 신문모집 광고를 보고 응시하여 30:1의 경쟁력을 뚫고 말단 경리사원으로 입사해 46년을 일하게 됐다.   

△46년이라는 세월동안 이직 한 번 없이 한 직장에서 근무하기 쉽지 않은데 어떤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하셨는지요? 
= 광신석유에 입사하고부터 ‘월급쟁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다. 입사하고 3개월 만에 결혼해 신혼이었지만 항상 밤 12시를 넘어 퇴근하기 일쑤였고 집이 이사를 어디로 했는지 몰라 동네꼬마에게 물어물어 이사한 집으로 찾아 갔을 정도로 주말도 없이 회사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비록 돈도, 빽도 없는 세상물정 모르는 촌놈이었지만 남다른 ‘깡’이 있었고, 배고픔을 견딜 줄 아는 인내심이 있었다. 부산에 어디 손 벌릴 곳 하나 없는 절박함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내가 다니는 회사’가 아닌 ‘내 회사’라는 생각으로 모든 업무에 최선을 다 했고, 회사 규모가 점점 커지고 발전 할수록 더 신나게 일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광신석유에 청춘을 바쳤다.

△ 말단사원으로 입사해서 대표이사까지,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만?
= 점점 복잡하고 많은 업무를 맡게 되자 능력과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껴 회사를 다니면서 부산정보대학에서 자동차공학을, 방송통신대학에서 경영학을, 동아대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이수했다. 밤낮없이 노력한 덕분에 38세에 최연소로 이사직에 오르게 됐고 대표이사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회사도 점점 규모가 커져 부산과 울산, 경남에 LPG 등 70개의 주유소, 충전소 운영과 유류판매 및 수송 등 복합에너지 유통회사로 자리를 잡았다. 이런 공로로 인해 부산시장 표창 2회,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표창 1회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유소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매물건을 낙찰 받아 명도를 하는데 조폭세력이 개입된 일, 부지를 매입해 건축허가 받고 주유소를 다 완공하고 나니 위험시설이라고 건축 준공이 허가되지 않아 고전했던 일, 인접 주유소와 거리제한 때문에 재판까지 갔던 일 등등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렇게 바쁜 중에도 남해향우회, 동창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나는 내고향 창선 출신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비록 배고프고 어렵던 기억이 더 많지만 그런 주변의 여건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후배들을 보면 내가 겪은 경험, 시행착오를 나누고 도움을 주고 싶고 마음 붙일 곳 없는 객지에서 고향의 정으로 버텨낼 힘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바쁜 중에서도 재부창선면향우회, 적량향우회, 재부북부향우회 회장을 맡았으며 창선중·고 부산동창회, 창선산악회를 창립해 후배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이외에도 용문회 골프클럽, 부산 남해CEO 모임 삼월회, 전직 읍·면향우회장모임 향원회에서도 봉사의 기회가 주어져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 지난 46년의 세월동안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고 회사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덕이 가장 크다. 큰 딸은 서울 성모병원 수석간호사, 둘째 딸은 의사인 남편과 단란한 가정을 꾸며 다복하게 살고 있으며 막내딸은 교육공무원으로 교육부에서 일하고 있다. 장남이면서 가장 막내인 아들은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모두 무탈하게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는 것은 모두 아내의 노력과 정성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부터 아내와 함께 좋은 곳에 여행 다니며 맛난 것도 많이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 지인도 만나면서 삶의 여유를 가져보고 싶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