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18, 경남도의회에서 경남 농민수당 조례안이 어렵사리 통과되었다. 그러나 핵심적인 쟁점사항은 비껴난 반쪽짜리 조례이다. 조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지급대상과 지급시기에 대해서는 다시 규칙을 정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제대로 된 조례라 할 수 없다. 물론 그렇게라도 조례를 제정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례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당겨서 논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남해군민 2천 여명이 참여하고, 전체 45천여 경남 도민이 서명하여 제출한 주민발의형 조례에 담긴 깊은 뜻을 진정 헤아려야 한다.

사실 농민수당 이야기가 나온 지는 몇 년 되었다. 주로 선거철에 공약으로 쓰이다가 현재는 전남북과 충남은 지급을 하고 있고, 경기도도 농민 기본소득이 월 50만 원까지 되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농민수당은 농업의 다원적이고 공익적 기능에 대한 사회적 보상차원, 또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투자의 의미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어쨌건 현재로서는 농업 농촌의 지속가능성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90년대부터 시작된 농산물시장개방이 우리 농업의 구조를 확 바꿔 규모화, 기계화, 단작화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값싸게 들어오는 수입농산물에 밀려 돈 되는 농사가 없으니 몇 가지 품목으로 집중되고, 그러다 보니 점점 짧은 주기로 가격이 폭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당연지사 힘들고 돈 안 되는 농사일을 하겠다는 젊은이가 없으니 농민들의 평균연령이 65세를 훌쩍 넘어섰고, 면 단위 초등학교는 입학생 한 명 없이 줄지어 폐교되고 있으며, 마을마다 6, 70대 노인들이 8, 90대 노인들을 돌보고 있다. 거기에다 기후변화로 인해 전에 없던 겨울 온난화, 여름에 초강력 태풍 등이 잦아지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병충해가 창궐하여 농사를 포기해야 하는 농가들도 속출하고 있다. 그나마 가격이 괜찮다는 축산업도 언제 가격이 폭락할 것인지 노심초사하고 있으니 농촌현장이 일상이 재난이라는 말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농업선진국들은 시중 농산물가격은 높이지 않고, 대신 농민들에게 직접 지불되는 방식으로 농민들의 소득을 보전해 준다. 유럽은 농업소득의 110% 가량 농민들에게 직접지불하고, 일본도 50% 가량 보전한다. 우리나라는 전체 농업보조금의 9%가량만 농민들의 손에 직접 지원이 되는 형국이니, 사실 알고 보면 농관련 산업을 농업과 농민들이 받쳐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작 부가가치가 제일 낮은 산업이 농관련 기업들을 먹여 살리는 꼴이니 이 모양도 우습기만 하다.

올해부터 공익형 직불제로 직불제 지급 방식이 조금 바뀌었다. 그간 면적 단위로 지급되던 직불금이 대농들에게 유리하다는 비판을 제고하여 소농들에게도 이익이 배분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고민의 방향은 맞다만, 전체 직불금액이 늘어난 것이 아니니 온전히 농민들의 삶이나 농업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농민수당이나 농민기본소득이라는 것은 농민들에게 직접 지급액이 늘어나도록 하는 보완 장치가 요구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달라진 직불금을 핑계로 농민수당지급의 핵심인 지급시기나 대상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은 조례를 통과시킨 것은 경상남도 농정관료 혹은 도지사가 농업현실 제대로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경남도 예산이 녹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안다. 코로나 정국에 마스크 대란은 있었어도 식량대란이 없었기에 그나마 사회가 덜 혼란스웠던 것은 아닌가? 게다가 사실 돈이 넘쳐서 재난지원금을 지원한 것이 아니라 절박한 현실이 사회적 합의와 행정의 기동성을 끌어냈던 것 아닌가! 이미 일상이 재난이 되어버린 농업농촌에 대해 대대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그것도 타 산업을 부흥시키는 개발사업이나 업자들에게 이득이 되는 지원이 아니라 농민들에게 직접 지원을 앞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시급히 농민수당 지급에 관한 시행규칙을 정하여 내년부터는 최소한 농민들이 안정적인 생활이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농업과 농촌지역이 사는 지름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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